‘핵 고행길’로 이끌 파이로프로세싱

조홍섭 2015.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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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타당성, 경제성, 핵확산 저항성 모두 불확실한데다 고속로도 미지수

핵폐기물 없애기는커녕 수많은 재처리공장, 핵연료 공장, 고속로 지어야 유지

 

 pyro2.jpg » 한국원자력연구소의 파이로프로세싱 실험 모습. 핫 셀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로봇으로 조정하고 있다. 2007년 실험 모습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2007년 대전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특별한 시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의 ‘핫 셀’이란 매우 민감한 연구시설이었다. 전기로 안에 사용후 핵연료를 넣고 두꺼운 납유리 밖에서 노란 작업복을 입은 연구원이 로봇 팔을 이용해 실험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그때 만났던 기술자들은 건식 재처리로 사용후 핵연료의 부피를 200분의 1로 줄이고, 독성이 줄어드는 기간을 1000분의 1로 단축해 핵폐기물 처분장을 100배나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기존 습식 재처리 공장과 달리 플루토늄이 다른 초우라늄 원소와 섞여 나와 핵확산 우려도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렇게 처리한 사용후 핵연료에는 1%의 플루토늄과 93%의 타지 않은 우라늄이 들어있기 때문에 새로 고안하는 고속로에서 태우면 우라늄 자원의 활용률을 100배 늘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pyro1.jpg » 파이로프로세싱의 과정. 그림=한국원자력연구원

 

pyro3_uranium product after refinery_argon lab.jpg »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의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에서 우라늄을 재활용한 모습. 사진=아르곤연구소  

 

그렇게 좋은 기술을 왜 여태 개발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2년 한국의 건식 재처리 추진에 동의했던 부시 행정부는 2008년 돌연 허가를 취소하고 사용후 핵연료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이 기술에 핵확산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최근 타결되면서 건식 재처리의 전 단계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됐다. 포화 위기인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할 해결책이 나왔다는 원자력계의 장밋빛 전망이 넘친다. 과연 그럴까.
 
건식 재처리는 1960년대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실험실 기술이다. 한국의 집요한 요구로 미국은 2011년부터 10년 동안 이 기술을 공동연구하기로 했다.
 
연구 주제는 기술적 타당성, 경제성, 핵 비확산성이다. 핵심 요건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건식 재처리가 골치 아픈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해 줄 묘책인지도 의문이다. 건식 재처리에서 나온 핵분열 물질은 핵연료로 만들어 전용 고속로에서 태우게 된다.

 

pyro4_Nife_monju_fukui.jpg » 일본의 고속증식로 원형로 몬쥬. 천문학적인 건설비를 들였지만 잦은 사고로 사실상 폐쇄 상태이다. 가동을 하지 않지만 냉각재인 나트륨을 액체로 유지하기 위해 온도를 200도로 유지하고 있다. 사진=NIFE, 위키미디어 코먼스
 
고속로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건식 재처리를 잘해도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일본의 고속증식로 몬주가 18조원 이상의 사업비를 들이고도 잦은 사고로 사실상 폐쇄 단계에 놓인 것이 고속로 기술의 현주소다. 고속로는 냉각재로 액체 나트륨을 쓰는데, 물과 격렬하게 반응해 폭발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고속로가 상용화되더라도 핵폐기물이 대폭 주는 것이 아니다. 고속로는 중성자가 빠른 원자로이지 핵폐기물을 고속으로 태우는 장치가 아니다. 새로운 핵폐기물이 생길뿐더러, 고준위 핵폐기물을 변환하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
 
미국 에너지부의 2008년 보고서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25% 줄지만 다른 폐기물이 늘어 전체 핵폐기물은 7배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미국 전력회사들이 만든 전력연구소(EPRI)의 연구에서는 고속로를 이용해 핵물질인 플루토늄과 초우라늄 비축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는 70년, 90%를 줄이려면 632년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핵폐기물을 단시일 안에 태워 없애기는커녕 수많은 재처리 공장, 핵연료 성형공장, 고속로를 지어 오랜 세월 돌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용하던 시설 자체가 또 다른 핵폐기물이 되는 멈추지 못하는 ‘핵 고행길’에 접어든다는 얘기다.
 
건식 재처리의 산물이 핵무기 원료가 될 가능성은 가장 민감한 문제다. 이번 협정에서 연구의 후반부는 미국에서만 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원자력계는 건식 재처리가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이라고 보지만 미국 국무부의 공식 입장은 ‘재처리’이고 “핵확산 측면에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2011년 리처드 스트래드포드 미 국무부 핵협력 책임자는 “파이로프로세싱은 분명히 재처리다. 5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핵확산 측면에서 위험하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국 안보담당 부국장을 지낸 프랭크 폰히펠 프린스턴대 교수는 “건식 재처리는 기존 재처리에 견줘 핵확산 위험을 아주 조금 줄일 뿐”이라고 말한다. 습식이든 건식이든 재처리 자체가 핵확산을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용후 핵연료 자체는 방사능이 너무 세 취급이 어렵다. 그러나 재처리로 플루토늄 혼합물을 분리하면 방사선 세기가 0.1%로 준다. 차폐와 원격조작 없이도 혼합물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테러리스트의 접근도 가능하게 된다. 미국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포기하고 직접 깊은 땅속에 묻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pyro4_NRC_San_Onofre_Nuclear_Generating_Station_spent_fuel_pool,_2014.jpg » 원자력발전소의 수조에 보관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 강한 방사선과 고온 때문에 수조에서 일정 기간 보관한 뒤 외부로 옮겨진다. 효과적인 최종 처분 방법은 아직 없는 형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 오노프레 원전의 모습이다. 사진=미국 핵규제위원회,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나라에서 가동중인 23기의 원전에서 한 해에 750t의 사용후 핵연료가 쏟아져 나온다. 저장 간격을 촘촘하게 하고 여유 있는 발전소로 옮겨도 2024년부터는 저장능력에 한계가 온다.
 
이런 상황에서 건식 재처리가 해법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는 2010년 다학문적인 분석을 토대로 작성한 <핵연료 주기의 미래> 보고서를 통해 “미래의 선택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 지상이든 지하든 관리된 상태로 중간 저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장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후 핵연료와 핵폐기물을 무작정 늘려가는 지금 방식의 원자력 확대 방식이야말로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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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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