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1000번 독물 발사, 폭탄먼지벌레의 ‘기관총 분사’

조홍섭 2015. 05. 06
조회수 44056 추천수 0

위협받으면 화학물질과 효소를 결합해 폭발시켜, 밸브가 연속폭발 자동 조절

엑스선 화상 이용 산 먼지벌레 분사 촬영 성공,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방어 수단"

 

bomb1_arndt1HR.jpg » 핀셋으로 다리를 쥐자 위협을 느낀 폭탄먼지벌레가 독물질과 증기를 단속적으로 분사하고 있다. 사진=Charles Hedgcock

 

어릴 때 잘못 만졌다가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딱정벌레를 본 기억이 난다. 독물질 분사를 마친 딱정벌레의 꽁무니에선 기관총 총구에서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번 겪으면 다시는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는 이 딱정벌레를 누구나 방귀벌레라고 불렀다. 영어권에서는 ‘폭격수 딱정벌레’라고 부른다. 공식 명칭은 폭탄먼지벌레다.
 
이 벌레는 사람은 물론이고 새나 개구리 등 다른 포식자들을 물리치는 효과적인 화학무기를 장착해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과학적으로도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조그만 뱃속에서 기관총처럼 빠르게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내연기관의 연료 분사를 향상시키는 새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Brachinus_spPCCA20060328-2821B.jpg » 북미산 폭탄먼지벌에의 모습. 사진= Patrick Coin, 위키미디어 코먼스
 
폭탄먼지벌레가 위협을 느끼면 꽁무니의 분비샘에서 화학물질과 효소를 분비한다. 반응실에서 두 물질이 만나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먼지벌레는 이렇게 생긴 100도 가까운 뜨거운 수증기와 퀴논 계열의 화학물질을 배끝의 노즐을 통해 상대를 겨냥해 단속적으로 내뿜는다.
 
그런데 이 벌레가 화학물질을 어떻게 정확한 비율로 결합해 규칙적으로 뿜어내는지는 대충만 짐작할 뿐 정확한 얼개는 수수께끼였다. 에릭 안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재료공학과 박사과정생 등 연구진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싱크로트론 엑스선 화상 기법으로 살아 있는 폭탄먼지벌레의 독물 발사 과정을 정밀하게 조사해 그 비밀을 밝혔다.


폭탄먼지벌레의 유독물 분사 MIT 동영상



초당 2000개 화면을 찍을 수 있는 초고속 촬영으로 알아낸 먼지벌레 반응실에서의 폭발 과정은 이랬다. 먼지벌레가 분비샘에서 반응실에 보낸 화학물질과 효소가 만나 폭발을 일으키면 큐티클로 만들어진 반응실이 팽창하면서 화학물질 투입구를 밸브가 막는다. 증기가 빠져나가 압력이 떨어지면 다시 밸브가 열려 폭발물질이 들어와 폭발반응이 되풀이된다.

 

이런 폭발은 초당 300~1000회까지 일어나는데, 역겨운 화학물질과 증기가 초속 10m의 속도로 수㎝ 거리로 퍼져나간다. 연구자들은 이를 ‘생물학적 펄스 제트’라고 불렀다.

 

bomb4.jpg » 폭탄먼지벌에의 독물 연속 분출 얼개. (A) 평상시 (B) 분출 시작. 반응성 용액이 밸브를 거쳐 반응실로 들어간다. (C) 폭발로 막이 팽창해 밸브가 닫힌다. (D) 폭발이 끝나고 팽창했던 막이 수축해 밸브가 열린다. 이를 통해 새로운 반응물질이 들어온다. (E) 분사 중단. 분사구가 막히고 증기는 반응실 안에 남는다. 그림+아른트 외 <사이언스>
 
기관총을 쏘는 것 같은 이런 분사를 이제까지는 근육의 수축으로 일으킨다고 짐작했으나 이번 연구에서 유연한 막의 팽창과 수축을 통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했다. 폭탄먼지벌레는 반응실의 구조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 새로운 근육을 진화시킬 필요 없이 뛰어난 방어장치를 진화시킨 것이다.

 

bomb2.jpg » 반응실을 둘로 나누는 밸브(가운데 보라색)의 전자현미경 사진. 색깔은 입힌 것임. 사진=아른트 외 <사이언스>
 
연구자들은 먼지벌레가 독물질을 이처럼 펄스 형태로 방출하는 이유를 “짧고 빠른 펄스를 내보내야만 먼지벌레의 작은 몸을 폭발 열로부터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에 참여한 웬디 무어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는 “(폭탄먼지벌레는) 이제까지 기록된 것 중 진정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방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폭탄먼지벌레과에 큰목가는먼지벌레와 꼬마목가는먼지벌레가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ric M. Arndt et. al., Mechanistic origins of bombardier beetle (Brachinini) explosion-induced defensive spray pulsation, Science 1 May 2015: Vol. 348 no. 6234 pp. 563-567. DOI: 10.1126/science.126116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1%가 낳은 ‘편견’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1%가 낳은 ‘편견’

    조홍섭 | 2018. 10. 16

    녹지·공원 늘면서 급증…도심선 파리가 주 먹이, 사체 청소도생태계 건강 입증, 병해충 막는 기능도…피해 줄이는 관리 필요우리나라에서 사람에게 가장 큰 신체적 손해를 끼치는 동물은 말벌일 가능성이 크다. 반려동물 급증과 함께 개 물림 사고...

  • 바다 천덕꾸러기 해파리, 생태계 기초 식량 가능성바다 천덕꾸러기 해파리, 생태계 기초 식량 가능성

    조홍섭 | 2018. 10. 12

    펭귄, 다랑어, 뱀장어, 해삼…다양한 포식자가 먹어칼로리 낮지만 쉽게 잡고 소화 잘돼…’보릿고개’ 식량보름달물해파리만 잔뜩 걸린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민은 ‘바다는 비어가고 해파리가 그 자리를 채운다’고 한탄한다. 남획과 수질오염 등으로 물...

  • 고래처럼 턱 부풀려 사냥하는 심해 ‘풍선장어’고래처럼 턱 부풀려 사냥하는 심해 ‘풍선장어’

    조홍섭 | 2018. 10. 11

    아래턱에 펠리컨 닮은 자루 풍선처럼 부풀려 사냥태평양과 대서양서 잇따라 살아있는 모습 촬영 성공온대와 열대바다에서 가끔 어선에 잡히는 풍선장어는 수수께끼의 심해어이다. 75㎝ 길이의 몸은 길쭉한 뱀장어이지만 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 멸종 위기 수원청개구리, 5곳서 ‘지역 절종’ 사태멸종 위기 수원청개구리, 5곳서 ‘지역 절종’ 사태

    조홍섭 | 2018. 10. 11

    이대 팀, 3년 간 첫 전국조사 결과북부와 남부 서식지 분단, 멸종 재촉전국서 울음 확인 2510마리뿐, “논 지켜야”우리나라에는 두 종의 청개구리가 산다. 흔한 청개구리는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에 널리 분포하며 낮 동안 ...

  • 곤충계 최고 포식자 사마귀, 물고기도 잡아먹는다곤충계 최고 포식자 사마귀,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조홍섭 | 2018. 10. 02

    하루 2마리씩 구피 사냥, 닷새 동안 이어져척추동물 중 새 이어 물고기도 먹이 목록에체온을 높이려고 농로나 등산로에서 나와 아침 햇살을 쬐는 사마귀가 많이 눈에 띈다. 커다란 집게발을 가지런히 앞에 모으고 뒷발로 선 이런 모습을 보고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