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벌레의 슬기
역시 나뭇잎을 전문으로 다루는 잎벌레는 달라도 어딘가 다릅니다. 해충이니 뭐니 라는 우리 인간들의 사소한 판단은 여기서 의미를 잠시 뒤로 물리겠습니다.
이처럼 밤나무 잎새 한 장을 절반가량 돌돌 말아 붙여 그 속에 알을 낳아둡니다. 뿐만 아니라 복판의 잎맥 즉 수맥을 완전히도 아닌 살짝 접어 알집은 안전한 공중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고 잎새만 바짝 마르게 함으로써 철옹성 같은 갑옷으로 보호된 공고한 집이 완성되었습니다. 의도인즉 온갖 천적들에 의한 위험성이 가득한 땅에 떨어지지 않는 안전한 ‘잎새의 성’을 공중에 구축한 것입니다. 물론 잎이 완전히 마르는 하루 이틀 동안은 자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고 지켜줍니다. 온전히 알집이 철옹성으로 변함을 확인한 뒤에 라야 안심하고 장소를 떠납니다. 지구촌 이웃들 공존공생의 이치를 다 모르는 입장에서 단지 잎새를 해롭게 한다 해서 이를 두고 함부로 해충이란 예단을 삼갔으면 좋겠습니다.
녀석이 이번에 고른 잎은 수분과 유분이 적당히 들어있어서 말라도 쉬이 바스러지지 않고 견고한 모습이 오래 잘 유지되는 살집도 두터운 밤나무 잎새를 잘도 선택했습니다. 장구한 세월을 자연에 적응해오면서 깨우쳐지고 누적된 슬기가 유전자 속에 녹녹히 배어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보다 슬기롭고 멋을 아는 어떤 잎벌레는 이처럼 예술작품에 버금가는 가공된 잎새 속에 알을 넣어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갓 벌레, 언필칭 하찮은 미물일지언정 얼마나 지혜롭고 멋까지 겸비했는지 한번 느끼고 두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