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기준 이내라고 안전한 건 아니다

이수경 2015. 05. 28
조회수 12735 추천수 0

환경기준은 과학 아닌 정책상의 기준, 기준 이내라고 가해자 책임 못 면해

발암물질에 유아는 10배, 어린이는 3배 더 민감, 취약집단 특별배려 추세

 

04687938_R_0.jpg » 어린이와 유아는 어른에 견줘 같은 유해물질에 3~10배 더 취약하다. 환경기준이 모든 이들에게 안전한 기준은 아니다. 사진=김봉규 기자 bog9@hani.co.kr

 

이제 뿌연 봄은 그저 일상이다.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가운 것도 봄이면 으레 겪는 일이겠거니 하고 넘긴다. 
 
미세먼지의 위력은 날로 거세지는데도 주의는 점점 게을러진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30살 이상 사망자 중 한두 명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사망이라는 연구까지 나온 걸 보면 귀찮다고 마스크 챙기는 일이나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하는 일을 소홀히 할 건 아니다.
 
en1.jpg »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우리 동네 대기질' 모바일 화면
 
분명히 미세먼지 예보에서 안전을 확인했는데도 목이 따갑고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다. 미세먼지 예보가 오보가 나기도 하지만 80%가 넘는 예보 적중률을 고려한다면 예보가 잘못되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미세먼지뿐 아니다. 환경기준 이하인 환경인데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신체적 불편을 호소하고 심하게는 병에 걸리는 일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05245985_R_0.jpg » 지난 2월11일 미세먼지에 휩싸인 서울 올림픽대교 북단의 모습. 사진=김봉규 기자
 
먼저, 환경오염 측정값이 환경오염 수준을 잘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측정을 보면, 측정소도 충분치 못하고 측정위치도 사람이 체감하는 위치와는 다른 경우가 많다. 또 기술이나 경험의 한계로 인해 관리되지 않는 오염물질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995년에는 PM10(지름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을 환경기준으로 설정하고 측정해왔다. 그러나 오염물질의 입자가 작을수록 건강 피해가 더 심각한 것이 알려지고 이를 측정할 기술이 발전하면서 2015년 환경기준에 입자 크기가 PM10의 4분의 1인 PM2.5(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를 추가하게 됐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환경은 평균적이지 않다. 
 
측정값은 일정한 공간과 시간 동안 오염물질의 평균값을 표시한다. 이를테면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70㎍/㎥”라는 측정값은 평균값일 뿐이고 위치, 고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마시는 공기의 질은 다 다르다. 따라서 설사 측정값이 옳고 측정값이 안전을 표시한다고 해도 언제나 어느 곳이나 안전한 건 아니다.

 

05261103_R_0.jpg »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관계자가 3월6일 서울 중구 명동네거리에서 초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리고 초미세먼지의 발생원 가운데 하나인 낡은 석탄화력발전을 줄여갈 것을 강조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평균적인 성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측정값이 정확하고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환경에 모두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성인보다는 어린이, 남자보다는 여자, 건강한 사람보다는 노약자 등이 같은 환경에서도 더 많이 피해를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보고서를 보면,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에 발암물질에 노출되면 2세 이하의 유아는 성인에 비해 10배, 2~16세 어린이는 3배 정도 더 영향을 입는다고 한다.1) 따라서 최근의 유해물질 위해성 평가에서는 평균적인 성인 외에 어린이와 같은 민감 집단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따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또 사람에 따라 더 민감한 물질이 있을 수 있다. 안전한 환경이라고 모두에게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환경기준은 과학 기준이 아니라 정책 기준이다.
 
환경기준의 정의2)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국가가 달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환경상의 조건 또는 질적인 수준”이다. 과학적인 기준보다는 정책적으로 정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환경기준은 국가나 국제기구마다 다 다르다.
 
환경기준은 환경오염의 예방뿐 아니라 때로는 비용이나 기술적 수준도 더불어 고려해 정한 기준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안전기준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생활환경, 작업장 환경을 막론하고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환경기준을 지켰다는 것이 책임을 벗어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3)

 

en2-1.jpg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 피해를 예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적게 든다는 점은 환경기준을 정하는 중요 요소이다. 따라서 환경기준 이내에서 발생한 피해자는 가해자나 사회가 기준을 정할 때부터 예방에 드는 비용을 아껴 그 피해를 감당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합리적이다.
 
2014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7년여를 버텨오던 삼성전자가 드디어 사과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4) 삼성전자는 작업장 환경이 기준치 이하였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황유미씨 등 노동자의 백혈병이 삼성전자의 책임이라는 판결을 거듭 내렸기 때문이다.

 

05257437_R_0.jpg » 3월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삼성전자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백혈병 투병 끝에 세상을 뜬 손경주씨의 아들 손성배씨가 휴대전화에 저장한 아버지의 투병 사진을 기자한테 보여주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공단주변 주민이 환경오염으로 고통을 받는데도 환경조사 결과 오염은 기준치 이하라고 하고, 어린이 천식환자가 늘고 있는데도 초미세먼지는 기준치 이하라고 한다.

 

기준치 이하가 안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피해자가 속속 증거하고 있는데도 기준치 이하가 무슨 면죄부 인양 들이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기준치 이하인데도 피해자가 생기면 피해자의 주장만 의심할 게 아니라 기준치를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환경기준을 준수했다는 것은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 뿐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기준은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물질을 규제하기도 하고 규제 기준을 강화하기도 한다.
 
환경기준은 늘 뒤늦고 불충분한, 그러나 사회가 감당하기로 약속한 최소한이다. 따라서 환경피해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그 최소한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이수경/환경 활동가·환경과 공해 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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