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물 붓고 불에 그슬리고…과학자들 씨앗 잠 깨우기 ‘고문’
미국 과학자들 희귀식물 미소 옻나무 씨앗 싹 틔우기 위해 백방 노력
산불 감소로 멸종위기, 결론은 야생 칠면조 위장 거치게 하는 것
▲멸종위기종 미소 옻나무.
미소 옻나무는 미국 남동부에서 가장 희귀한 나무의 하나로 연방 정부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
키가 1m가 안 되고 암·수 딴 몸인 이 나무는 특이하게도 군사기지나 철도변처럼 훼손이 심한 곳에서만 드물게 살아남았다. 산불에 적응해 진화한 이 옻나무는 주변의 다른 나무를 주기적으로 제거해 줘야만 생존한다.
산불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면서 산불이 드물어지자 미소 옻나무의 분포지도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1993년 최대 규모의 자생지가 발견됐는데, 버지니아 주의 한 군사기지 안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희귀한 관목의 하나인 미소 옻나무. 사진=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제이 볼린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 연구원 등 미국 과학자들은 이 희귀나무의 증식을 위해 씨앗을 싹 틔우는 연구에 나섰다.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이 씨앗은 물이 스며들지도 못한다.
과학자들은 먼저 산불을 재현했다. 이 지역 산불의 지속시간과 온도를 고려해 씨앗에 60도부터 140도에 이르는 여러 온도에서 5분과 10분 동안 노출하는 실험을 했다. 하지만 어떤 씨앗에서도 싹은 나지 않았다.
고열을 겪은 씨앗의 표면을 문질러 벗겨낸 뒤 씨앗이 싹트는 비율을 조사했더니 100도 이상에 노출된 씨앗은 거의 모두 죽고 60도와 80도에 노출된 씨앗만 47.8%와 56.7%의 발아율을 보였다. 이것은 고온에 노출하지 않고 표면처리만 한 씨앗의 발아율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이다. 과학자들은 혹시 진짜 산불과 더 비슷하게 고온의 화염에 짧은 시간 동안 노출되면 어떨지를 알아보기 위해 프로판 토치에 0.5초 동안 그슬리는 실험을 해 봤지만 씨앗은 100% 죽고 말았다.
▲캐나다 산림지역의 산불. 산불은 일부 식물의 생존과 번식에 꼭 필요하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다른 연구자들의 출판되지 않은 실험에서 미소 옻나무는 열파에 노출하는 것보다 황산이나 펄펄 끓는 물에 담그는 편이 발아율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이 논문은 밝혔다.
논문은 “이번 실험으로 산불을 흉내 내더라도 씨앗의 휴면을 깨우지 못하며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며 “씨앗이 좋은 여건에서 싹을 틔우기 위해 환경신호를 감지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황산과 끓는 물이 효과를 낸 것은 그 자극이 씨앗에 무언가 싹터도 좋다는 신호를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연구진이 제시한 방법은 하루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을 변화시키는 방법과 열매를 먹는 새들의 소화관을 통과시키는 방법이다.
호주의 새삼 씨앗은 35도의 고온과 20도의 건조기를 거치게 했더니 83%가 싹텄다.
▲희귀 옻나무 씨앗의 긴 잠을 깨울 것으로 기대되는 야생 칠면조. 오듀본이 그린 그림으로 피츠버그대에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연구진은 다른 옻나무 종류의 열매가 새들의 먹이가 된다는 점에 주목해 미소 옻나무 씨앗을 메추라기나 야생칠면조에게 먹여 소화관을 통과하면서 휴면에서 깨어나게 할 방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연구는 미국 학술지 <자생식물> 여름호에 실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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