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로 박쥐 유인하는 식충식물, '여관 공생'

조홍섭 2015. 0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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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충식물은 박쥐에 낮잠 터 제공, 박쥐는 배설물로 보답

접시 안테나 같은 벌레잡이 통 반사판으로 박쥐에 전파 신호

 

Ch'ien C. Lee_Bat_Pitcher-990x823.jpg » 보르네오의 식충식물 벌레잡이 통으로 박쥐가 낮잠을 자러 들어오고 있다. 사진=Ch'ien C. Lee

 

보르네오에는 토탄이 쌓인 습지가 열대림에 뒤덮여 있다. 산성에 영양분이 너무 부족한 이곳 토양에 사는 일부 식물은 벌레를 잡아 질소를 얻는다.
 
피처 잔처럼 생긴 통을 지닌 네펜테스는 대표적인 이곳 식충식물이다. 향기에 유인된 벌레가 미끄러운 벽에서 미끄러져 통 안에 빠지면 소화효소가 분비돼 영양분을 흡수한다.
 
그런데 보르네오의 희귀한 일부 네펜테스(학명 Nepenthes hemsleyana)의 통 속에서는 종종 박쥐(학명 Kerivoula hardwickii)가 발견된다. 이 박쥐는 먹이가 아니라 통속에서 낮잠을 즐기는 것이다.
 

F1.large-s.jpg » 박쥐가 들르는 네펜테스(a)와 겉껍질을 벗겨낸 모습(B). 박쥐가 깃들지 않는 다른 네펜테스(C). 사진=그라페 외, <바이올로지 레터스>


울마르 그라페 브루나이대 생물학자 등은 이 박쥐가 식충식물과 공생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2011년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발표한 바 있다.
 
박쥐는 식충식물의 벌레잡이 통속에서 낮잠을 자면서 배설을 하는데, 그 속에 든 질소가 이 식물의 질소 섭취량을 평균 34% 늘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식충식물은 박쥐에 기생충 없고 비바람 걱정 없는 낮잠 터를 제공한다.
 
통속에는 박쥐 한 두마리가 쉴 자리가 있는데, 식물은 소화액 수위를 낮추고 박쥐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독특한 내부구조를 갖췄다. 박쥐는 이 식충식물 속에서만 자는 반면, 식물은 곤충도 잡으니 이들의 공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박쥐 쪽이다.
 
BAZILE Vincent_800px-Nepenthes_rafflesiana_var__elongata_upper_pitcher.jpg » 박쥐와 공생관계인 보르네오 네펜테스의 일종. 사진=BAZILE Vincent, 위키미디어 코먼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독일과 브루나이 연구자들은 박쥐가 어떻게 식충식물을 찾아오는지 궁금했다. 시각이 아닌 초음파를 내쏘아 반사파로 사물을 파악하는 박쥐로서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밀림에서 희귀한 식충식물을 찾는 건 매우 힘들다. 게다가 이 식충식물과 모습이 비슷하지만 내부구조가 박쥐의 잠자리로는 부적합한 식충식물은 흔하다.
   
연구의 단서는 열대 아메리카에서 왔다. 그곳의 일부 식물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초음파를 반사해 박쥐를 끌어 모은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식충식물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연구자들은 실험 결과 과연 아시아의 식충식물도 초음파를 반사해 박쥐를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20일치 <커런트 바이올로지> 인터넷판에 실렸다.

 

bat.jpg » 박쥐가 식충식물의 반사판에 반사된 초음파를 따라 벌레잡이통에 들어가는 과정. 그림=<커런트 바이올로지>

 
이 식충식물의 벌레잡이 통에서 노출된 뒷벽이 반사판 구실을 했는데, 상당히 넓은 각도 범위로 박쥐의 초음파를 반사했다. 벌레잡이 통과 뚜껑을 연결하는 부위에 있는 이 반사판은 특별히 넓고 길쭉하며 굴곡이 져 마치 접시 안테나처럼 생겼다.
 
연구자들은 반사판을 확대하거나 잘라내고 박쥐가 얼마나 빨리 찾아오는지를 실험했는데, 박쥐는 반사판을 늘이거나 자연상태 그대로였을 때 더 쉽게 찾아왔다. 논문은 “반사판이 클수록 더  빨리 박쥐가 찾아와 자연선택이 식충식물의 반사판을 키우는 쪽으로 이뤄진 것 같다.”라고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열대 아메리카의 박쥐 꽃가루받이 식물과 아시아의 식충식물이 모두 박쥐의 초음파 신호를 반사하도록 수렴진화했음을 보여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choener et al., Bats Are Acoustically Attracted to Mutualistic Carnivorous Plants, Current Biology (2015), http:// dx.doi.org/10.1016/j.cub.2015.05.054

 

T. Ulmar Grafe et. al., A novel resource?service mutualism between bats and pitcher plants, Biology Letters, 12 May 2011.DOI: 10.1098/rsbl.2010.114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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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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