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관광? 4대강 삽 이젠 산 노린다

조홍섭 2015. 07. 23
조회수 44709 추천수 0

산악관광 활성화에 경제계와 정부 의기투합, 규제완화해 '절경에 호텔' 추진

문화와 지역참여가 대세인데 시설에만 관심…다음달 설악산 케이블카 '신호탄' 

 

Zainubrazvi.jpg » 눈쌓인 미국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 전경. 칼데라호 화구 테두리에 오래 된 산장이 있어 현재도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산장은 국가역사유적이기도 하다. 사진=Zainubrazvi,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은 해마다 50만명 이상이 찾는 유명 관광지다. 백두산 천지처럼 생겼지만 규모는 그 2배쯤 되는 고산 칼데라 호수인데, 코발트빛 물과 가파른 절벽이 빚어내는 절경이 구경거리다. 게다가 화산 꼭대기에는 제법 큰 산장이 있어, 객실 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편안히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다.

 

Gary Halvorson.jpg » 크레이터 레이크 산장 바로 앞에 의자를 놓고 호수를 관망하는 탐방객들. 경제계와 정부는 보호구역에 이런 시설의 놓아야 관광이 활성화 한다고 본다. 사진= Gary Halvorson,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난해 8월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을 발표하면서 산지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산악호텔의 보기로 든 곳이 바로 이 산장이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이나 설악산 정상에도 규제를 풀고 이런 시설을 지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 산장은 꼭 100년 전인 1915년 지은 시설로서 국가역사유적으로 등록돼 있다. 집을 고쳐 객실이 71개인 고급 숙박시설인 것은 맞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유산이어서 유지하는 것이지 지금이라면 결코 허가를 얻지 못할 시설이다. 요즘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 때문에 산장 쪽은 숙박객에게 텀블러에 물을 채워 오도록 요구하고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산악관광 활성화 정책을 제안하자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착착 제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풍부한 산악자원을 보유하면서도 규제가 너무 심해 관광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선진국처럼 산장, 산악열차, 케이블카, 레스토랑 등을 ‘놀고 있는’ 산악에 적극 도입해 관광산업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Manfred Werner _Ronda_La_Ciudad2004.jpg » 정부와 재계가 우리나라에도 절경에 호텔을 허용해야 한다며 예로 든 스페인 론다 지역 절벽 위에 들어선 호텔들. 로마시대 때부터 이어온 문화유산이지 최근 개발된 건물이 아니다. 사진=Manfred Werner,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우리가 본받을 사례로 든 선진국의 산악관광 시설 상당수는 우리와 자연적, 문화적 맥락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전경련은 ‘산악관광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에서 외국에선 산과 절벽의 절경에도 호텔을 짓는데 우리는 불법이라며 스페인 파라도르 론다 호텔과 이탈리아 포시타노 지역 호텔을 들었다.

 

그러나 120m 절벽 위에 자리잡은 론다 호텔은 로마시대 때 개발된 곳이고 가파른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들어선 포시타노 건축도 16세기 중세 때 유적이다. 사실,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져 수백년을 내려온 시설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국립공원 안 사찰이 그런 곳이다. 휴양시설을 무분별하게 보호구역 안에 짓기에 앞서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휴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Annwvyn _1280px-Vue_de_Positano_depuis_la_plage.jpg » 이탈리아 포시타노의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들어선 건물들. 경사면 개발의 사례로 들었지만 16세기 역사 유적이다. 사진=Annwvyn, 위키미디어 코먼스
 

산악관광의 미래상처럼 정부와 기업이 치켜세우는 알프스 산악도 마찬가지다. 알프스는 유럽 한가운데 위치해 연간 1억명이 찾는 100년 이상의 관광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런데 절경에 들어선 숙박시설과 케이블카, 산악열차 등 하드웨어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알프스를 공유하는 8개국이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 1991년 맺은 알파인협약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리조트를 새로 짓는 식의 시설 위주 개발에서 지역사회의 참여와 문화를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시설보다 문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에선 한계에 부닥친 한 세기 전의 관광전략을 답습할 것인가.

 

04003044_R_0.jpg » 수백년 동안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고찰이 그런 곳이다.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위치한 천년 고찰 내소사 숲길에서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트레킹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정부는 지난 8일 발표한 산악관광 활성화 대책을 통해 전국 산지의 70%를 산악관광진흥구역으로 지정해 골프장은 물론 위락·숙박·휴양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자에게 각종 혜택까지 주기로 했다. 사업지역 면적을 3만㎡ 이상으로 해 대기업에만 허용하겠음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중심으로 한 핵심구역 외곽지역인 완충구역을 비롯해 보전산지, 요존국유림, 산림보호구역 등이 모두 개발 대상이 됐다. 이들은 이제까지 공공재이자 미래세대에 물려줄 자연유산으로서 철저히 보호받던 지역이다.

 

03882338_R_0.JPG » 강원도 옥계면 백두대간에 위치한 자병산. 석회석 광물 채취로 심하게 훼손됐다. 이제 리조트와 골프장이 백두대간에 들어설 것인가. 사진=녹색연합

 

백두대간 능선이나 국립공원, 유전자원보호구역 코앞에까지 골프장이나 리조트가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국립공원 안에 들어서지 않게 돼 다행이라 할 것인가. 시민사회단체들이 ‘4대강의 아픔이 아직도 선명한데, 강으로 향했던 삽은 이제 산으로 향했다’고 개탄할 만하다.

 

05356838_R_0.jpg » 난개발의 삽질이 강에서 산으로 옮겨갈 신호탄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 허가가 될 것이다. 한국환경회의와 자연공원케이블카반대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기자회견을 열어 케이블카 설치의 부당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양양군이 추진하는 오색케이블카는 양양군 서면 오색그린야드 호텔 인근의 하부정류장에서 설악산 끝청의 상부정류장 간 3.5㎞ 구간에 설치될 예정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다음달 열리는 국립공원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을 표시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승인한다면, 이를 신호탄으로 정부의 산악개발은 한반도의 중추를 흔들 것이다. 산의 신음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

    조홍섭 | 2017. 04. 10

    빙하기 시베리아서 남하, 아무르강 거쳐 2만년 전 한반도로최남단 서식지 낙동강 상류에 고유 집단 잔존 가능성 커북극해서 놀던 ‘시베리아 연어’한강과 낙동강 최상류 찬 개울에는 커다란 육식성 민물고기가 산다. 한여름에도 손이 저릴 만큼 차...

  • 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

    조홍섭 | 2016. 07. 01

    파리협정 이행 갈길 먼데, '기후 리더' 영국 빠진 유럽연합 동력 상실 우려기록적 가뭄→시리아 난민사태→브렉시트→기후대응 약화 악순환되나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통적인 견...

  • 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

    조홍섭 | 2016. 06. 03

    `가정 독물'인 살생물질 관리에 특별한 대책 필요…디디티 교훈 잊지 말아야과학적 불확실성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예상되면 조기경보 들어야  아침에 쓴 샴프나 손에 든 휴대전화, 금세 썩지 않는 나무의자에는 모두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 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

    조홍섭 | 2016. 05. 06

    IUCN 취약종 지정, 체계적 조사 없이 우리는 매년 15만마리 죽여세계서 중국과 한국이 자생지, 중국은 멸종위기에 복원 움직임  야생동물을 맞히는 퀴즈. 수컷의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삐져나와 “흡혈귀 사슴”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가장 원...

  • 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

    조홍섭 | 2016. 04. 08

    중추신경계 없지만 잎, 줄기, 뿌리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고등기능 수행 미모사는 30일 뒤까지 기억…공동체 이뤄 햇빛 못 받는 나무에 양분 나누기도     봄은 밀려드는 꽃 물결과 함께 온다. 기후변화로 개나리 물결이 지나기도 전에 벚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