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꼼장어의 끈끈한 신무기

조홍섭 201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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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옆 200개 구멍에서 점액 뿜어 포식자 질식시켜, 이 없어도 점액으로 사냥도

뉴질랜드 과학자 심해 비디오 촬영 분석, <네이처> 논문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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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장어의 입 부분 확대 사진. 턱과 이빨이 없지만 톱처럼 날카로운 치열을 가지고 있다. 사진=<네이처> 

 

먹장어는 흔히 '꼼장어'라는 안주로 인기 있는 낯익은 바닷고기이지만, 그 생태는 베일에 가려 있었다.

 

먹장어는 깊은 바다 밑바닥에 많이 살며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바다의 청소부'로 알려져 있다. 얼핏 갯장어 등 다른 뱀장어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생물이다.

 

먹장어는 턱이 없는 무악류에 속하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지녔다. 약 3억년 전 고생대부터 지금의 모습을 지닌 이 원시 물고기가 현재까지 살아남은 한 가지 비밀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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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의 꼼장어 집 수족관에 보관중인 먹장어.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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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밑바닥 구멍 속에 숨어있는 먹장어. 사진=린다 스누크, 미국립해양대기국(NOAA). 

 

뉴질랜드 박물관의 빈센트 진첸 등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들은 27일 과학전문지 <네이처> 온라인 판에 실린 논문에서 심해에서 직접 촬영한 먹장어의 알려지지 않은 생태를 보고했다. 연구진은 미끼를 담은 망과 함께 비디오를 수심 97~1162m 바다 밑바닥에 내려보내 495시간 동안 먹장어의 행태를 촬영해 분석했다.

 

깊은 바다에 고래나 물개 또는 다른 바다 생물이 죽어 가라앉았을 때 가장 많이 모이는 생물이 바로 먹장어이다. 이들은 턱과 이빨은 없지만 흡반이 달린 입을 먹이에 부착한 다음 톱처럼 생긴 치열로 먹이를 분쇄해 먹는다. 사체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먹는 행동도 두드러진다.

 

과학자들은 먹장어가 해저에 풍부하게 서식하는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사체만으로 집단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 이번 조사로 그 궁금증이 풀렸다. 먹장어는 훌륭한 청소부일 뿐 아니라 적극적 사냥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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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장어의 먹이 사냥 행동. 물고기가 숨어있는 곳을 활발하게 뒤지다(a) 먹이를 찾으면 구멍 속으로 들어가 흡반을 붙인다(d). 점액을 배출해 먹이를 질식시킨 뒤(e) 먹이를 물고 나와 자신의 은신처로 향한다. 그림=<네이처>.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먹장어의 뛰어난 방어 기술이다. 연구자들은 먹이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나 대형 물고기 등이 먹이망에 머리를 박고 먹느라 정신이 없는 먹장어를 손쉬운 먹이로 보고 공격했지만 소스라치게 놀라 뱉어내는 모습을 종종 관찰했다.

 

비디오 화면을 분석해 보니, 먹장어의 깨물린 부위에서 허연 점액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와 0.4초 안에 포식자의 입과 아가미를 채웠다. 공격자는 숨이 막혀 캑캑거리며 먹장어를 놓았고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먹장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먹이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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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와 커다란 포식성 물고기가 먹장어를 공격하다 점액 공격을 받고 토해내는 모습. 사진=<네이처>

 

먹장어의 몸 양옆에는 90~200개의 점액 방출구멍이 줄지어 나 있어 적의 공격을 받으면 다량의 점액을 분출한다. 특히 이 점액은 바닷물과 만나면 물을 빨아들여 수백배로 팽창하는 성질을 지녀 유력한 방어무기가 된다. 실제로 먹장어 자체도 자기 점액 속에 가둬놓으면 질식해 죽는다.

 

먹장어는 적을 물리칠 때 뿐 아니라 모래 굴속에 숨어있는 먹이를 잡을 때도 점액으로 상대를 질식시킨 뒤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 논문은 밝혔다.

 

점액을 분석한 결과 독성물질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논문은 "점액에 우리가 모르는 독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점액으로 포식자를 격퇴하는 먹장어의 행동 동영상(자료=유튜브) 

 

 먹장어는 이밖에 다른 청소동물이 먹이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때도 점액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먹장어가 지난 3억년 이상 살아남은 비결은 이처럼 독특한 여러 기능을 복합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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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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