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아 고맙다, 쌀 빼고 생태계 서비스 연 13조원

이은주 2015. 09. 17
조회수 12824 추천수 0

환경상식 톺아보기-벼농사의 가치

전국 논의 홍수조절량 춘천댐 24배, 지하수 함양 소양댐 8배

여름철 냉각효과와 오염물질 정화, 산소 생산, 습지 생태계 구실도 

04453621_R_0.JPG » 경기도 김포의 가을 들판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논은 단지 식량뿐 아니라 수많은 가치있는 환경적 기능을 한다. 사진=김명진 기자


이제 열흘 뒤면 추석이다. 추석에 우리는 햅쌀로 밥을 지어 조상께 올린다. 밥은 우리나라 사람의 주식이다. 밥은 쌀에 물을 부어서 조리해 먹기 좋게 만든 것이다.
 
그 쌀을 생산하기 위해 벼를 재배하는 곳이 논이다. 그런데 벼농사는 단순하게 쌀을 생산하는 농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오창과학단지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가 관심을 끌었다. 이 볍씨가 나온 토탄층의 연대가 1만 3000여 년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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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볍씨가 묻혀있던 토탄층과 연대가 같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중 하나가 된다. 현재까지는 중국 허난성에서 출토된 약 1만 년 전 볍씨가 가장 오래되었다.
 
토탄층에 묻힌 볍씨가 토탄층보다는 나중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매우 오래전에 시작됐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04061996_R_0.jpg » 경기도 파주의 교하신도시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논. 벼는 열대작물이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온대 몬순에 맞게 개량한 작물이다.
 
동아시아 중심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6~7월이 되면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일 년 강우량의 60%가 넘는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이러한 기후에 잘 맞는 농작물이 바로 벼이다.
 
벼는 원래 아열대 및 열대지역이 원산지이므로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우리 선조는 이런 벼를 온대기후에 잘 맞게 순화시키고 선발해서 우리의 주식 작물로 정착시킨 것이다.
 
벼농사란 우기에 강우량이 집중되고, 고온다습해서 물가 잡초가 잘 자라는 몬순지대에서 진화해 발달한 농업이다. 이 때문에 유럽과 달리 아시아지역은 밀 대신 벼농사를 짓게 되었으며, 지금도 전 세계 쌀 생산량의 90%가 이곳에서 생산돼  대부분의 국가에서 주식으로 먹고 있다.
 
그러면 미국이나 호주는 어떨까? 그런 나라들은 수출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벼를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쌀 생산 방식 역시 생태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우기 때 몬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비나 눈 녹은 물을 인공적으로 저수해 이용하고 있다. 이런 벼농사 방식은 인위적인 물대기, 기계화 농법 및 화학물질 투입에 의존한다.

00934967_R_0.JPG »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전남 나주평야의 논. 흔히 홍수피해의 전형적 사례이지만, 논이 홍수로 불어난 물을 가두어 주는 구실을 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볍씨를 뿌리고 수확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리지만 이 기간 동안 벼는 기후에 적응하면서 우리의 주식을 제공해 주고 동시에 기상재해 방지, 환경 보전 등 공익적인 기능을 한다. 만약 벼농사를 짓지 않고 그 자리에 골프장이나 공장이 들어선다면 장마철에 쏟아지는 그 많은 빗물은 어디로 가며, 무엇으로 홍수를 조절할 것인가?
 
장마 때 전국 논에 가둘 수 있는 물의 양은 춘천댐 저수량의 24배(36억 톤)이며, 논에서 지하수로 스며드는 물의 양은 전 국민이 사용하는 수돗물 양의 2.76배(소양댐 저수량 8.3배)가 된다고 한다.
 
벼농사는 수질정화 기능이 있다. 논에 가두어 놓은 빗물의 45%는 지하로 침투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수된 맑고 깨끗한 지하수 물이 된다. 논의 지하수 함양기능은 전 국민의 전체 물 사용량의 약 80%에 해당한다.
 
수질정화 능력은 어떤가? 생활하수가 논에 들어오면 질소는 52~66%, 인산은 27~65%가 제거된다고 한다. 논만으로 전체 생활하수의 36%를 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논에는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기능도 있다. 논에 있는 물이 증발할 때마다 주위의 열을 빼앗는데 이러한 증발 잠열에 의해 우리나라 논에서 하루에 조절되는 열량은 원유 543만㎘에 해당한다.
 
이렇게 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여름에 논 주변을 시원하게 만든다. 호수에 둘러싸인 마을을 생각해 보라. 여름철 물에 잠긴 논이 호수 구실을 한다.
 
또한 식물은 광합성 작용에 통해 대기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우리가 호흡할 때 필요한 산소를 방출하는데 그 효과가 다른 작물에 비해 높다. 우리나라 벼농사에서 방출되는 산소의 양은 연간 1019만 톤에 이른다.

 

03036378_R_0.JPG » 강화도 길상면 초지마을 논에 분포하는 멸종위기 식물 매화마름. 논의 습지로서 생물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이밖에 논은 습지로서 수많은 곤충, 갑각류, 물고기, 개구리 등의 서식지이고 이들을 먹이로 삼는 새들이 몰려드는 생물다양성의 터전이기도 하다.
 
물론, 논의 물에 잠긴 토양에서 세균이 메탄가스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지구온난화에 상당히 기여하는 점은 부정적 요인이다. 세상에 모든 것이 좋은 일이란 없다.
 
이처럼 벼농사를 지속함으로써 얻어지는 논의 홍수조절, 수질정화, 토양 유실방지, 공기와 수질의 정화, 유기물의 재순환, 여름철 냉각 효과, 습지생태계의 유지 효과 등 공익적인 기능을 모두 합치면 그 가치가 연간 13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05400261_R_0.jpg » 16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한 논에서 벼베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쌀은 논이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선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철원/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우리 선조가 오래전부터 지어 온 벼농사기 주는 이런 엄청난 혜택에도 그 고마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논은 그저 쌀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벼의 재배면적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이런 농업생태계의 변화는 경제적인 논리와 맞닿아 있다.
 
벼농사가 환경에 기여하는 공익적인 효과는 대략 쌀 생산액 10조 원보다 훨씬 크다. 논이 공짜로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를 장기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를 지어 쌀을 소비하는 하는 것이 반드시 비싸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건강을 해치는 주범 중 하나인 콜레스테롤 함량이 가장 낮은 곡물이 바로 쌀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은가.
 
벼농사를 단순한 시장경제 원리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국토 환경과 건강까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벼농사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이은주/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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