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도 ‘유기농 전기’ 사는 녹색가격제, 핵발전 줄일 수 있다

김정수 201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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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기 사용 약정하면 추가 지불한 돈 재생에너지 생산·보급에 투자

전기연구원 8년전 이미 구체 시행 방안까지, 바뀐 정부 10년째 ‘검토 중’

 

gr1.jpg » 유기농 농산물을 조금 비싸게 구입하는 것은 친환경적으로 생산됐음을 알기 때문이다. 풍력, 태양 등 재생에너지를 제 값 내고 구입할 수 있는 녹색가격제가 선진국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다.


“당신들은 전기 없이 사나, 당신들도 집에서 원자력으로 만든 전기 쓰고 있지 않나?”
 

지난해 신고리 3호기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전달할 송전탑 공사에 맞서 싸우는 경남 밀양 할매들을 응원하겠다고 달려간 사람들 등 뒤에 무수히 꽂혔던 비아냥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철저한 반핵론자라도 원전 전기의 신세를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고기를 먹기 싫으면 채식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선택이 전기 소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원자력, 화석연료,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발전원에서 만들어진 뒤 뒤섞여 콘센트까지 도착한 전기에서 원전에서 온 부분만 걸러내고 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목숨을 건 반대에도 밀양 송전탑은 지난해 말 결국 완공됐다. 신고리 3호기는 지난주 핵연료를 장전하고 7개월 동안의 시험운전에 들어갔다.

 

시험운전이 끝나고 상업운전이 시작되면 수도권에 공급되는 전기에 신고리 3호기 원전 전기가 섞이게 된다. 밀양 할매들과 한목소리로 ‘송전탑 건설 반대, 원전 반대’를 외쳤던 이들도 밀양 송전탑을 거쳐온 원전 전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핵폐기물을 남기지도 않고 온실가스를 내뿜지도 않는 재생가능 에너지로 생산된 이른바 ‘녹색전기’를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녹색가격제도’ 도입은 이런 상황에 마음이 불편한 이들에게 대안일 수 있다.
 

국내에서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녹색전기를 생산하는 데는 원자력이나 화석연료로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때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한국전력의 전기 판매는 발전원을 고려하지 않은 단일 가격으로 이뤄진다.

 

gr2.jpg » 태양전지판 설치 공사 모습. 태양전기는 화석연료 전기보다 생산비가 더 들지만 한전에서는 모든 전기를 섞어 같은 가격에 판다.

 

녹색전기를 실제 생산비에 견줘 싼 가격에 파는 것이다. 녹색가격제도가 시행되면 원하는 소비자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전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일반 전기보다 비싼 녹색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내고 살 수 있다.
 

이들이 추가 지불한 돈은 재생에너지 생산과 보급에 투자돼 원자력이나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데 사용된다. 에너지양으로는 동일한 전력을 자발적으로 더 비싼 금액을 치르면서 이들이 사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짐이 되는 핵쓰레기를 줄이고 기후변화의 원인인 지구 대기의 온실가스 농도 증가를 막는 데 참여한다는 자부심이다.

 

이를 위해 녹색가격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에서는 녹색전기 요금 고지서를 일반 전기요금 고지서와 색깔을 다르게 하거나, 녹색전기 라벨을 제작해 녹색전기를 쓰는 집에 붙여주기도 한다.
 

녹색가격제는 국내에서 도입 논의가 본격 시작된 지 10년이 넘지만 관련 정부 부처 안에서는 계속 공식적으로는 ‘검토 중’인 상태에 머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신재생에너지과 최보선 서기관은 “녹색가격제와 관련해 아무것도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검토는 이미 충분히 이뤄졌고 이제는 결정만 남았다고 말한다.
 

이미 2007년에 당시 산업자원부에 제출된 한국전기연구원의 제도기반 구축 연구 용역 보고서에 녹색가격제도를 전기사용량과 무관한 기부금 형식으로 내게 하는 것에서 시작해 전기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과 함께 내는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2009년부터 시행한다는 시행 일정까지 제시됐을 정도다.

 

이 연구 책임자였던 조기선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 1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 신·재생에너지학회와 기후변화센터가 공동 주최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녹색가격제도 도입 방안 정책세미나’에서 “녹색가격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어서 임기 마지막 해에 방안을 수립해 놨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시행이 안 되고 묻혔다. 준비가 많이 돼 있어 사실 언제 시행하느냐 하는 시점을 결정할 일만 남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정부 안에 관심들은 있었지만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손 치더라도 결국 전기요금이 인상되는 형태가 된다는 점과 현재 송배전·판매만 허용되는 한전이 전기요금 형태로 확보된 재원을 가지고 발전사업 참여도 가능할 수 있어 전력산업 구조의 틀이 깨질 수 있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기 수용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일반 대중 사이에도 녹색가격제에 대한 수용성은 최근 크게 증가한 상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불의사액 추정 및 사회적 수용성 제고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쓰기 위해 한 달에 평균 3456원을 추가로 치를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건부가치측정법(CVM)을 통해 파악된 이 추가 지불 의사액 규모는 기존 연구들에서 제시됐던 약 1500원 수준보다 2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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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특히 사고 때 대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고 미래 세대에게 핵쓰레기를 남기는 원자력 전기 대신 신재생에너지 전기를 쓸 수 있다면 월평균 4554원을 더 부담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의 연구책임자였던 이철용 에너지경제연구원 신재생에너지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지불 의사액이 과거 조사 때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아진 이유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구글 등이 데이터센터 소비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고 공약한 뒤 네이버 등 동종의 국내 기업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늘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녹색전기 사용에 대한 인증과 연결되는 녹색가격제도는 이런 기업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날 세미나 사회를 본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정부에 의지가 있었다면 지금 녹색가격제도 도입 방안이 아니라 개선 방안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녹색가격제, 해외에서는

 

미국, 녹색가격제 등 490만명 동참

독일, 일본, 캐나다, 호주 등서도 시행

 

녹색가격제도는 1990년대 초 미국의 일부 전력회사가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요금 옵션 상품의 하나로 등장한 뒤 점차 확산돼 현재 독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의 2014년 미국의 녹색전기 현황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는 지난해 491만 6000여 소비자가 녹색가격제도, 재생에너지인증서(REC) 구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력량 7400만㎿h(메가와트시)의 녹색전기를 사용했다. 이 녹색전기 구매량은 지난해 미국 전기 소비량의 2%에 이르는 규모다.
 

1996년부터 녹색가격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특히 환경단체의 적극적 참여가 주목된다. 독일 그린피스는 1999년 회원 협동조합 형태로 그린피스에너지를 설립해 2015년 현재 11만 고객에게 자체 보유한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와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한 수력·풍력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구입할 수 있는 녹색전기 최소 비율을 전체 전력 사용량의 10% 이상으로 정해놓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과 이와 별도로 기부금을 내는 형식을 혼용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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