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속살이 이랬을까, 새만금 백합의 추억

황선도 2015.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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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갯벌 사라진 새만금, 개발도 관광객도 시들하고 수질오염만 가속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최적의 조개 서식지…“바다 터야 갯벌 산다”

간월도 연합01031592_R_0.JPG » 전북 부안군 개화면 개하리 갯벌에서 전통어구인 그레를 이용해 백합을 채취하는 어민.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백합 어장은 모두 사라지고 어민들도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사진=윤운식 기자

조개의 여왕이란 별명을 지니고 있는 백합은 내게 안타까운 기억이 있는 조개다. 백합(Meretrix lusoria)은 연체동물문, 이매패강, 백합목,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로, 흔히 대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월도 연합00127617_R_0.JPG » 새만금 갯벌에서 많이 잡히던 백합. 어민의 주요 소득원인 고급 조개이다. 사진=한겨레 자료 사진  
 
백합이 가장 많이 나던 곳은 새만금 갯벌이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유입되면서 하구역에 형성된 사주로 두 강으로부터 풍부한 영양염이 유입되는 곳이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의 특징을 지녀 산업적으로도 유용한 조개류의 서식에 적합한 장소로 새만금 간척사업 이전에는 조개류 양식장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전라북도 갯벌의 90%는 새만금 갯벌이었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함께 전북의 조개류 생산량은 1990년 6만 1026t에 이르던 것이 1998년에는 2만 1103t으로 대폭 감소하였다.

s1.jpg » 방조제로 막히기 전 새만금 일대의 모습.  
 
1991년 11월에 첫 삽을 뜬 새만금지구 종합개발사업이 15년 만인 2006년 4월 우여곡절 끝에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군산-김제-부안을 있는 33㎞ 길이의 새만금 방조제가 바다 한가운데를 쭉 뻗어 있어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무려 2조를 들여 서해안에 4만 100㏊에 이르는 바다가 내해가 되고 여의도의 140배인 2만 8300㏊의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이런 엄청난 공사를 두고 갯벌을 보전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와 개발을 해야 한다는 정부·농어촌공사 사이에 격렬한 논쟁과 갈등이 빚어졌다. 시행 중단과 법정 싸움, 다시 강행이 반복되면서 지역민과 학계가 분열되고 갈등이 이어졌다.

s2.jpg » 새만금 간척개발사업 계획 도면.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당시 군산에 있는 수산연구소에 있었고, 이런 급속한 환경 및 생물상의 변화가 관측되거나 예견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개류 자원 변동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만들어 놔야겠다는 연구자의 어줍지 않은 사명감으로 생태조사를 하였다.
 
공사 시작 전인 1988년에 한 환경영향평가 조사 결과가 한 대학의 석사학위 논문으로 나왔고, 나는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0년, 그러니까 전체 물막이 공정의 50% 이상이 완료된 시점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조사를 착수하여 환경변화에 따른 생물상의 변화를 모니터링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새만금 방조제 건설 이후 조류에 따른 해저지형의 변화에 의해 퇴적물이 지역에 따라 재배치되고 있으며, 저서생물인 조개류의 군집구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용기.jpg » 방조제가 막히고 해류 변화로 떼죽음한 새만금 동죽. 사진=주용기
 
즉, 조개류의 서식환경인 퇴적물의 변화가 패류 군집구조 변화의 일차적인 요인으로 조류의 흐름만이라도 적정하게 유지된다면 조개류 자원 보존에 훨씬 효율적이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일개 연구자의 연구결과는 새만금 논쟁의 격랑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금은 정치인이 된 한 연구자의 생각도 바꿔놓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환경단체의 잘못된 투쟁 방향과 학계의 불충분한 과학적 근거 제시, 연구비에 목줄 잡히고 좁은 과학적 시야만을 가진 학자들의 작태가 개발론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 무엇보다 지역개발론에 편승한 오도된 민심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면서 천혜의 새만금 갯벌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표1. 새만금 갯벌 조개류의 변동

 

종명

거전

어은

황과 김

(2003)

안(1990)

황과 김

(2003)

안(1990)

서해비단고둥 Umbonium thomasi

*****

***

***

**

동죽 Mactra veneriformis

***

***

**

 

왕좁쌀무늬고둥 Reticunassa festiva

****

***

*

 

부리운모조개 Laternula flexuosa

*

 

 

 

가무락조개 Cyclina sinensis

*

*

 

*

민챙이 Bullacta exarata

**

***

**

**

반지락 Ruditapes philippinarum

*

***

 

 

맛조개 Solen strictus

*

**

 

 

빛조개 Nuttallia olivacea

*

 

 

 

큰구슬우렁이 Neverita didyma

*

**

*

 

백합 Meretrix lusoria

***

**

*

 

명주개량조개 Coelomactra antiquata

 

**

 

 

떡조개 Dosinorbis (Phacosoma) japonicus

*

*

 

 

개량조개 Mactra chinensis

 

***

 

 

계화도조개 Potamocorbula amurensis

***

*

***

*

새꼬막 Scapharca subcrenata

 

*

 

 

송곳실꾸리고둥 Acrilla acuminata

*

 

 

 

언덕좁쌀무늬고둥 Varicinassa varicifera

 

 

*

 

빈송곳고둥 Diplomeriza dussumieri

*

 

 

 

보리무륵 Mitrella bicincta

*

 

 

 

***, **, * 은 개체수의 크기

  
새만금 갯벌은 우리나라 조개류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양식장이 발달해 있는 곳으로서 간척사업과 함께 조개류 생산량이 급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 방조제 내부에 위치한 거전 갯벌에서의 주요 유용 조개류가 얼마나 있는지 추정했다. 앞으로 간척사업이 진척되면서 유용 조개류의 자원변동을 파악해 관리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려던 의도였다.

 

표2. 새만금 거전 갯벌 1999년 조개류 자원 현존량 

 

종명

구분

백합

Meretrix lusoria

동죽

Mactra veneriformis

반지락

Ruditapes philippinarum

가무락조개

Cyclina sinensis

단위면적당 개체수(inds./m2)

0.8

6.6

0.1

0.4

조사지역 개체수(250,000 m2)

200,000

1,650,000

25,000

100,000

어장 개체수 (8,500,000 m2)

6,800,000

56,100,000

850,000

3,400,000

평균 체중 (g)

19.8

13.8

11.5

19.7

현존량 (mt)

134.6

774.2

9.8

67.0


백합은 나에게 추억의 조개이기도 하다. 갯벌을 조사하러 가려면 자동차로는 빠져서 갈 수가 없고 걸어서 가야 하는데, 8월 한여름의 땡볕 아래 그늘도 없는 갯벌에 몇 시간씩 노출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지역에서 백합 양식을 하는 김정배 어민의 경운기를 개조한 갯벌 용 특수자동차는 구세주에 가까웠다.
 
조개 양식이라는 게 특별할 것이 없다. 갯벌에 치패라 부르는 새끼 조개를 뿌려 놓고 자라면 잡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가둘 수도 없고 먹이를 줄 필요도 없다.
 
다만, 관리 차원에서 멀리 그물을 치고, 모여 있는 놈들을 여기저기 흩뿌리는 일을 해야 한다. 수확기가 되면 어촌에서 아주머니들을 고용해 캐 오게 해야 하는데, 이럴 때 쓰는 운반용 차량이 그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도 몸빼 입고 두건 모자 쓰고 아주머니들 사이에 끼어 타야 했다.
   
여기서 조개가 사는 갯가에 관한 용어 정리를 하자면, 갯뻘이 아니고 개의 벌판이란 뜻의 갯벌(tidal field)이 맞고, 개뻘이 아니고 갯벌에 있는 흙을 뜻하는 개펄(slime, silt at tideland)이 맞다. 개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말한다. 뻘은 벌과 펄의 경음화이다. 간석지(Tideland)는 밀물과 썰물 사이에 드러나는 조간대(Tidal flat)를 말하고, 간척지(Reclaimed land)는 바다의 주위에 둑을 쌓고 그 안에 물을 빼서 만든 땅을 말한다.

 

사본 -00680803_R_0.jpg » 방대한 새만금 갯벌에 일하러 가려면 경운기를 이용해야 한다. 2003년 군산시 내초리 주민들이 조개잡이를 하러 갯벌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새만금사업 중단을 위한 전북사람들
 
조사정점에 도착해서는 장화를 신고 작업을 하는데, 이게 푹푹 빠지면 들어올리기 어렵고 발에 땀이 차서 영 불편하다. 신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맨발로 갯벌 위에 섰다.
 
발가락 사이로 삐져 올라오는 개펄이나 모래가 처음엔 간질간질하다가 이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은 현장조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연구자의 특권이다.
 
거기에 발로 갯벌바닥을 톡톡 치면 흰 그 무엇이 몽글몽글 올라오는데 그것이 바로 백합 새끼이다. 신기하면서도 경이롭다. 거무스름한 펄에 하얀 새끼 조개는 진주보석 같다.

 

간월도 연합01031572_R_0.JPG » 한겨울 백합을 캐기 위해 개조한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나온 계화리 어민들. 사진=윤운식 기자
 
그런가 하면 어민은 갯벌에서 갓 잡은 주먹만 하게 큰 대합을 칼로 푹 갈라서는 내 입속에 쏙 밀어 넣는다. 국물까지 후루룩 빨아먹으란다.
 
카∼, 그 맛이란…. 즉석에서 까먹어도 질겅거리지 않을 정도이니, 굳이 해감이 필요 없다. 백합은 자기 조가비 안에 흙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고고함이 느껴진다.
 
들어낸 흰 속살을 보면 비너스의 속살만큼이나 자태가 고혹적이다. 인제야 왜 백합을 조개의 여왕이라 부르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조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김정배 어민의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캐 온 백합을 넣고 백합 조갯국을 끓여 내온다. 무슨 조갯국이 우윳빛 국물인가. 찐하고 시원한 게, 어젯밤 먹은 술이 다 깬다.

 

s3.jpg » 백합탕. 사진=박현주 계양 도서관 과장
 
조사를 마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돌아오는 길에 부안읍 차부 옆에 있는 간판조차 허름한 백합죽 파는 식당은 지금은 안녕하신가. 이제 백합 생산도 되지 않는 동네인데.
 
새만금 간척사업이 결정되면서 양식장도 몇 푼의 보상금으로 내놓고, 김정배 어민은 새만금을 떠났다. 얼마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평생 일터를 잃은 것이다.
 
그분 역시 안녕하신가. 갯벌이 사라지니 백합도 사라지고, 어민도 사라지고, 백합죽도 사라지고, 민심만 흉흉하다.

간월도 연합01598385_R_0.JPG » 어민들이 백합을 잡아 오던 계화리 갯벌은 육지로 바뀌었다. 개발의 꿈 속에 풍요로운 어촌은 붕괴됐지만 기대한 개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김봉규 기자

   
시간은 흘러 지금은 새만금개발지구 해외투자 유치실적이 저조해 애초 청사진처럼 개발되고 있지 않고 있다. 방조제가 만들어지고 관광버스 타고 찾던 관광객도 이제는 시들해졌다.
 
더욱이 방조제 안전도 계속 문제제기가 되고 있고, 예측했던 것보다 새만금 수질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아 관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당시에 방조제 강행을 찬성했던 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책임 있는 답변을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이제라도 새만금의 길을 다시 물어야 할 처지이다.
   
나는 아직 백합, 너를 모른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조우했기에 서로 알아야 할 시간이 부족했다. 다시 돌아와라. 외치고 싶다. 서식처를 복원해야 생물자원도 회복된다. 어느 신문사에 기고했던 <시론>에서 그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wh.jpg » <한겨레> 2012년 3월28일치에 실린 필자의 칼럼. 방조제로 막힌 바다를 `역간척'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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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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