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개국 4만명 회의 어떻게, 파리 기후회의 관전법
듣기 좋은 정상 연설 뒤 피 말리는 실무회담과 정치적 결단 고위급 회담
온도상승 2도냐 1.5도냐, 개도국 자금지원 방안과 보상 체계 마련도 쟁점
» 지난달 30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21차 당사국 총회 전체 회의 모습. 중요한 협상은 보이지 않는 무대 뒤에서 벌어진다. 사진=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
파리 기후회의에는 대통령부터 시민단체 활동가까지 196개국에서 4만 명이 참가한다. 그런 회의는 대체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굴러갈까.
회의는 3중 구조로 이뤄진다. 각국 대표단의 핵심 협상장은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루 한두 번 기자들에게 하는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뜨거운 쟁점이 뭔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 당사국 총회 부대행사로 7일 열린 세계 원주민들의 '적도 상' 시상식 모습. 사진=아에프페 / 연합
협상장 밖에는 각 나라와 단체별로 부스가 마련돼 수천 명의 기업인,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 과학자 등이 북적인다. 각종 부대행사와 기자회견, 워크숍이 열려 축제를 연상시킨다.
다른 대규모 회의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 엄청난 규모의 기자실이다. 전 세계에서 온 3천 명 이상의 기자들이 줄지어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의자에 기대어 피곤한 눈을 붙이고 있다.
»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인을 관심을 반영해 파리 당사국 총회에는 3천여명의 언론인이 모여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
기후변화가 정치와 과학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문제임을 회의장에서 실감한다. 정치인은 대의와 의지를 말하고, 공무원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 힘쓰며, 시민단체는 원칙과 정의의 눈으로 이들을 감시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일’ 가운데 절반이 지났다. 과연 무슨 성과가 있었고 남은 걸림돌은 뭘까. 기후회의의 진행과정을 짚어보자.
기후회의 역시 정상, 실무, 고위급 등 3중 구조로 진행된다. 지난달 30일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를 구하는 데 나서자’는 각국 정상의 말 잔치로 시작했다.
»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 모습. 사진=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
배턴을 넘겨받은 각국 실무자들은 밤샘 협상 끝에 지난 토요일(이하 현지 시각) 합의문 초안을 마련했다. 양보할 줄 모르는 이들은 협상문의 단어 하나 쉼표 하나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국익에 도움이 될지를 따진다.
그러다 보니 회의는 늘 길어지고 상반된 견해가 부닥친다. 그 결과 협상문은 수많은 괄호로 얼룩진다. 애초 유엔은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제이다.
초안은 36쪽인데 다른 견해를 괄호로 묶어 나열한 곳이 700개에 이른다. 잔뜩 기대를 모았다 실패로 끝난 2009년 코펜하겐 총회에선 이맘때 협상 초안이 300쪽이었으니 비관할 것만도 아니다.
이번 초안에는 지구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몇 도 상승으로 억제할 것이냐는 목표에 ‘1.5도 이하’와 ‘2도 훨씬 아래’ 등 2개의 괄호가 있다. 2011년 더반 총회 때 이 조항에는 ‘2도 이하’ ‘1.5도 이하’ ‘2도 훨씬 아래’ ‘2도 또는 1.5도 이하’ ‘1.5도 또는 2도 이하’ ‘가능한 한 2도 이하’ 등 괄호가 6개나 있었다.
각국 장관급 고위대표가 나서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는 고위급 회의는 어제 시작돼 사흘간 계속된다. 예정대로라면, 9일까지 합의문 협상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금요일인 11일 짐을 꾸릴 수 있다.
하지만 밤샘 협상과 폐회 미루기는 기후회의의 오랜 ‘전통’이다. 2011년 더반 총회는 폐막을 36시간 넘긴 마라톤회의 끝에 일요일 새벽에야 끝났다.
» 영장류 동물학자이자 환경보호활동가인 제인 구달이 7일(현지시각) 파리의 모가도르 극장에서 진행된 '에쿠에이터 상'(Equator Prize) 시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 시상식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행사의 하나이다. 이 상은 인간, 자연, 기후를 위한 업적을 칭송하고 보존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사진=에이피 / 연합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은 경제성장과 비례한다. 따라서 책임과 부담을 논의하는 기후회의는 기후를 매개로 한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의 전쟁터가 된다.
1주일 동안의 실무협상을 지켜본 최재철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이번 회의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조심스럽지만 낙관한다”라고 답했다.
여기엔 온실가스 감축을 위에서 강제하지 않고 각국이 알아서 ‘기여’하도록 한 상향식 방식이 주효했다. 북한, 시리아, 리비아 등을 뺀 185개국이 낸 2020년 이후 자발적 감축계획량은 세계 총배출량의 90%에 가깝다.
목표를 지키지 않아도 처벌하지 않으니 나름 최대한 목표를 세웠다. 이전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선진국만 감축의무를 졌고, 감축 할당량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았다. 이번 기후협상의 가장 큰 특징은 온실가스 감축 방식을 하향식에 상향식으로 바꾸어 모든 나라가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자발성에 더해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이 전향적으로 나서고 저탄소 경제의 붐이 일고 있는 것도 낙관론에 힘을 보탠다. 태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이미 화석연료에 대한 경쟁력을 얻고 있고, 지난해 새로 지은 발전소의 절반이 재생에너지였다.
중국이 지난해 청정에너지 분야에 새로 투자한 액수는 미국, 영국,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새로운 기후체제가 나오기도 전에 세계는 이미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넘을 산도 높다. 각국의 감축계획을 모두 합쳐도 기후재앙을 막을 지구온도 2도 상승을 훨씬 웃도는 2.7도에 이른다. 각국의 감축계획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강화해 나가야 하지만 개도국은 선진국이 감축의무를 덤터기 씌우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돈 문제는 가장 험난한 협상 주제이다. 이미 2020년까지 해마다 1천억 달러 규모의 재원을 조성해 개도국의 기후대응에 쓰자고 합의했지만 누가 어떻게 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개도국은 자칫 기존의 공적원조가 기후재원으로 둔갑할지 걱정한다. 파리 합의문에 얼마나 야심적인 감축목표와 개도국 지원책이 담길지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가장 책임이 없고 가장 복구능력이 없는 나라를 중심으로 이미 벌어지고 있다. 그런 최빈국 개도국은 기후변화 적응과 별도로 ‘손실과 손해’에 대한 국제적 보상체제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닥친 집단이주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합의문에 이 조항이 별도로 마련될지도 관심사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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