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한복판, 머리 없는 타조

남종영 201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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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타조' 에뮤 도로 한가운데서 머리 몸속에 파묻고 주저앉아
동물은 자극에 반응하는 단순 기계 아냐, 공포와 혼란은 우리와 같아 

IMG_0038.JPG » 오스트레일리아 도로에서 만난 대형 육상조류 에뮤. 이 새한테도 도로는 막막한 공포였을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그때 샤크베이에서 돌고래를 만나고 하룻길을 달려 퍼스로 오고 있었다.
 
지평선을 보고 달리는 도로에 자동차는 뜸했지만, 뜸한 자동차 수만큼 도롯가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 동물의 시체가. 

여행길에서 야생 캥거루를 보지 못했지만, 피범벅된 사체는 대여섯마리 넘게 보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야간운전을 하지 않는 게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좋다는 얘기에 끄덕거리며 달려갈 즈음, 300~400m 앞에 에뮤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에뮤는 목이 길고 날개는 퇴화한 오스트레일리아 타조다. 그런데 목이 없었다. 검고 둥그런 몸덩이만 정확히 중앙선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포스러웠다. 분명 자동차가 에뮤의 긴 머리를 치고 갔고, 머리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음에 틀림없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차는 휘청하고 에뮤를 빗겨 지나갔고,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내가 도로가에 차를 세우니, 앞뒤에서 오던 여러 차도 멈추어, 하나의 전시장이 형성되어 버렸다. 어떤 이상한 로드킬이자 기괴한 광경이었으니까.
 
끔찍했지만 나는 자동차에 몸을 기대고 사냥총처럼 생긴 망원렌즈를 들이댔다. 그런 나의 모습이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때 검은 물체 밑에서 길고 긴 것이 나왔다. 머리였다. 마치 잔뜩 겁먹은 거북이가 목을 빼내듯이. 에뮤는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에뮤는 도로를 건너다가 너무 공포스러워 마저 건너가기를 포기하고 머리를 가슴 속에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공포가 에뮤를 얼어붙게 하고 말았으리라. 그렇게 몇분 동안 머리를 몸속에 처박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멈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내가 차를 멈춤으로써 다른 차들도 따라서 멈춰 이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인간은 잘 모방한다). 이때 차가 질주하는 공포의 소음이 잠깐 멎으며 평화가 찾아왔고, 에뮤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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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045.JPG » 자동차 질주음이 사라지고 조용해지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에뮤는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더니 한걸음 한걸음 도로에서 빠져나갔다.
 
대여섯살 적, 동네에서 놀던 나는 할머니에게 출입금지 구역을 구체적으로 지정받았다. 즉, 시내쪽으론 마이약국 이상은 가지 말아라, 동네쪽으론 유한문구사 이상은 넘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구획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 지점을 넘어서면 차가 쌩쌩 다니는 ‘신작로'(당시엔 그렇게 불렀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렸을 적부터 ‘탐험가’ 성향이 있던 나는 아주 가끔씩 동네를 벗어났다.
 
횡단보도는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이자, 다섯살 소년의 용기의 시험대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물살 센 강을 건너는 것과 비슷했다(신호등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언제 그 강을 건너야 할지. 지금 발걸음을 떼어야 할지, 말지. 마저 건너야할지, 아니면 되돌아가야 할지. 그러다가 나는 오른쪽에서 돌진하는 택시를 보았고 기절했다.
 
의식이 되돌아왔을 때, 택시기사는 나를 앞좌석에 태우고 ‘너희 집이 어디냐?’고 묻고 있었다. 도로 한가운데서 꼬마아이가 어찌할 줄 모르고 얼어붙어 있었고, 다행히도 택시는 가까스로 내 앞에 멈춰선 것이다.

동물도 공포를 느낀다. 동물에게 감정이 없다는 동물행동학계의 회의론자들조차 공포라는 감정만큼은 동물에게 관찰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공포는 실험실 안의 마우스처럼 단선적인 ‘자극-반응’뿐만 아니라('행동주의 학파'는 동물을 마음이 없는 자극-반응 기계로 바라본다) 이처럼 상황에 대한 통제 못함,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혼돈과 신체의 포기로도 나타난다.
 
마치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절규>의 주인공이 혼돈 속의 세계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필경 도로 한가운데 멈춘 에뮤도 어릴 적 기절한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로드킬에 희생당한 동물들의 명복을 빈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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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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