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20741의 '고난의 행군'

남종영 2011.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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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동안 687㎞ 헤엄쳐, 새끼 잃고 체중도 22% 감소

아이슬란드엔 그린란드 북극곰 종종 '불시착', 기다리는 건 사살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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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미국 알래스카 보퍼트해에서 본 북극곰. 이 지역 북극곰은 과학자들에 의해 많이 연구됐는데, 서식 환경의 악화로 동족 포식이 보고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숲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면 돼죠?"

"응. 그냥 일어서면 돼."

정말이다. 그냥 일어서면 된다. 아이슬란드에는 숲이 없다. 끝없는 풀밭과 드문드문 있는 키 작은 나무가 전부다. 바람이 세고 북극의 추위가 엄습하는 아이슬란드에 나무가 숲을 이뤄 살기 쉽진 않다. 그나마 버틴 나무들은 바람을 맞아 모두 다 누워야만 했다.
 
아이슬란드에 또 하나 없는 것, 바로 포유류다. 목장 안 말과 양 그리고 소를 제외하곤 포유류를 본다면, 매우 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이슬란드의 토종 육상 포유류는 북극여우가 유일하다.
 
섬 동부에 순록이 살긴 하지만, 이들은 18세기에 노르웨이에서 건너 온 놈들이다. 북극곰이 살지 않느냐고? 안타깝지만 아니다. 북극곰도 이 황량한 땅에 살지 않는다. 다만, 길 잃은 북극곰들이 이따끔씩 아이슬란드를 방문한다.
 
길 잃은 북극곰이 가끔 들르는 땅 

지난 여름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 그림지 섬에 가는 배를 탔다. 순전히 북극선을 한번 밟아보기 위해서.
 
아이슬란드는 대략 북위 63도에서 66도까지 자신의 몸뚱아리를 북대서양에 걸치고 있다. 북동쪽으로 바다를 건너가면 거대한 그린란드 대륙이 나오고, 그린란드 남부는 아이슬란드보다 위도가 낮은 곳도 있다.
 
그래도 그린란드는 '북극'이라고 부르는데, 아이슬란드는 북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 국토가 북극선, 그러니까 북위 66.5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곳, 아이슬란드 북부 해안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그림지 섬엔 정확히 북극선이 지나간다.

그림지 섬과 주변 바다는 간혹 북극곰이 떠내려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당연하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북쪽에 있으므로.
 
그럼, 북극곰은 왜 아이슬란드에 올까? 아이슬란드에 주로 내려오는 북극곰들은 그린란드에서 오는 친구들이다. 그린란드와 그린란드 주변에서 매년 얼기와 녹기를 반복하는 바다얼음이 북극곰의 물범 사냥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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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얼음판 위에서 물범을 찾아 돌아다니는 북극곰. 캐나다 마니토바 와푸스크 국립공원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안스가르 워크, 위키미디아 커먼스.  
 
그런데 바다 얼음은 항상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큰 덩어리가 쪼개져 나가기도 하고 다시 얼음조각으로 잘게 부서지거나 큰 바다얼음 판에 붙기도 한다. 이런 북극의 바다환경에 적응한 북극곰은 뛰어난 '수영 선수'다. 지금까지 기록에 따르면, 한 번도 쉬지 않고 687킬로미터를 헤엄친 북극곰도 있다.

다음은 미국 국립지질조사국(USGS)의 조지 뒤너 박사와 북극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스티븐 암스트럽 박사 등이 2008년에 한 기록이다. 지난 7월 <극지 생물학>(Polar Biology, 통권 34호)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간추려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20741은 우리가 추적하고 있는 북극곰이었다. 2008년 8월23일,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단 20741은 새끼 한 마리와 함께 알래스카 북부의 에스키모 마을 배로를 헤엄쳐 출발했다. 여름이었기 때문에 바다는 아직 얼지 않았다. 20741인 북쪽으로 북쪽으로 헤엄쳐 갔다. 하루, 이틀, 사나흘을 헤엄쳤다. 하지만 얼음은 나타나지 않았고 차가운 북극의 바다뿐이었다. 687킬로미터를 헤엄치고나서야 이윽고 북극곰은 쉴 수 있었다. 수영을 시작한 지 232시간째였다. 9월4일 북극곰은 보퍼트해의 바다얼음 판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얼음조각에 올라갈 수 있었다.


북극곰 20741이 먼 여정을 떠난 알래스카 배로는 2006년 취재 차 갔던 마을이었다. 당시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9월초. 20741이 출발했을 때 즈음이었다. 늦여름이었지만 꽤 추웠고 이따금씩 눈이 내렸다. 이틀 전 북극곰 한 마리가 마을로 들어와 생포됐고, 아침이면 얼음조각이 마을 앞바다를 메우곤 했다.
 
일반적으로 암컷 북극곰은 한번에 50킬로미터 안팎을 헤엄친다. 새끼의 수영 최대거리가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라 북극 바다얼음이 줄어들면서, 북극곰은 더 뛰어난 수영 능력이 필요하게 됐다. 바다얼음과 바다얼음, 바다얼음과 육지 사이를 오가야 하는데, 이 간격들이 점차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 20741은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9일 가까이 쉬지 않고 헤엄쳤지만, 이건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아쉽게도 20741을 따라 간 새끼는 중간에 사라졌다. 암스트럽 박사 등은 헤엄치다가 결국 죽었을 거라고 추정했다. 20741도 10월26일 과학자들이 다시 발견됐을 때, 몸무게가 226킬로그램에서 177킬로그램으로 22% 줄어 있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고난의 행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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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741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 2008년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687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헤엄쳤다(a). 9월4일부터 9월6일까지 얼음조각을 타고 움직였다(b). 9월7일부터 8일까지 다시 80킬로미터를 헤엄쳤고(c), 얼음조각들을 건너다니며 큰 바다얼음 판에 도착했다(d). 여름이 지나가면서 바다얼음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20741은 바다얼음을 맘대로 걸어다니며 먹이사냥을 했고 10월26일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왔다(e~g).
 
북극곰 20741이 초인적인 북극곰이라면,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북극곰들은 일반적인 북극곰에 가깝다.
아이슬란드에 북극곰이 오는 이유는 우연에 가깝다. 그린란드에서 떨어져 나온 바다얼음 조각을 타고 있다가, '아차' 하는 사이 내릴 때를 놓친 것이다. 모험을 무릅쓰고 헤엄쳐 그린란드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북극곰은 이미 늦은 걸 안다.
 
얼음조각은 계속 남쪽으로 떠내려 오고 이윽고 아이슬란드 주변에 이른다. 북극곰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수영을 결정하지만, 수영해서 도착하는 곳은 고향 그린란드가 아니라 미지의 땅 아이슬란드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는 북극곰들은 피로하고 지친 상태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얼음조각에서 빠져나와 먼 거리를 헤엄쳤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아이슬란드, 먹을 게 없다

그럼 북극곰이 아이슬란드에서 살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심심찮게 화산이 폭발하는 황량한 이 땅엔 북극곰이 먹고 살 만한 육상 및 해양 생태계가 구성돼 있지 않다.
 
아이슬란드 동부에 물범이 서식하고 있지만, 북극곰이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물범은 그리 많지 않고 그밖에 먹을 건 없는 것 같다. 애초 북극곰이 아이슬란드에 살 수 있다면, 이미 이 땅을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북극곰 표류 사건'은 아이슬란드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바이킹들이 섬에 정착한 직후인 890년이다. 그뒤 지금까지 약 500마리의 북극곰이 아이슬란드에 표류해 도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웬만한 동물이 살지 않는 황량한 아이슬란드에서 '북극곰 출현'은 비일상적인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북극곰 출현에 대해 이야기해댔고, 각종 역사 기록에도 북극곰 출현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그림지 섬으로 향하는 배가 떠나는 북부의 항구 달빅의 민속박물관에는 '표류 북극곰'의 박제가 전시돼 있다. 아이슬란드 지역 박물관에는 이렇게 북극곰 박제를 해놓은 곳이 더러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08년과 2011년에 북극곰이 아이슬란드에 닿았다. 하지만 최근의 표류 북극곰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유는 아이슬란드에 도래한 북극곰을 아이슬란드 정부가 즉각 사살한다는 데 있다. 어민들이 생포해 사살하기도 하고, 경찰이 사살하기도 한다.
 
2008년과 2011년의 북극곰 사살은 동영상으로 공개돼, 전세계 환경단체와 동물복지단체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북극곰을 구조해 그린란드에 다시 돌려주는 데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아이슬란드 정부의 입장이다.

 
▲2008년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경찰의 의해 사살된 북극곰. 

1973년 미국, 노르웨이,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등 북극곰 서식국가들은 '북극곰 보호 협약'을 맺어 북극곰 사냥을 금지했다. 북극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등재돼 있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거래금지에 관한 협약(CITES)에도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돼 있다.
 
2008년 미국은 북극곰을 기후변화에 따른 멸종위기종으로 세계 처음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가 국내에서 북극곰을 사살하는 것은 국제협약에 위배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이슬란드 국내에서 북극곰을 구조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레이캬비크 북극곰 프로젝트'는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북극곰에게 임시 우리를 지어주고 이들을 그린란드에 보내주자는 것이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전세계적인 멸종위기를 겪고 있는 북극곰을 사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아이슬란드의 '동물보호법'상 북극곰을 사살하는 건 불법이지만, 사람이나 가축에게 위협을 줄 경우 보호 대상의 예외로 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북극곰을 사살하는 명목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동물보호운동가들은 "아이슬란드에 오는 북극곰들은 거의 다 녹아가는 얼음조각에서 뛰쳐나와 며칠 동안 헤엄쳐 육지에 닿기 때문에, 사람이나 가축을 해칠 정도로 힘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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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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