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에 분노하지 않는가

김찬국 2015. 12. 28
조회수 17421 추천수 1

확인된 피해자 530명 사망자 143명, 불매운동은 잠잠

800만 사용자 중 어떤 피해 나올지 몰라, "분노하고 행동하라"

가습기 살균제 사태, 그 시작과 현재

05323593_R_0.JPG » 지난 5월2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강나래 어린이가 영국 런던 근교 슬라우의 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촛불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2011년 임신부와 영유아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시작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3년과 2014년 정부의 1~2차 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총 530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143명(27%)에 이른다. 올해 12월31일까지 3차 피해접수가 진행되는데, 올 1월부터 12월11일까지 접수된 3차 피해자는 모두 310명이고, 이 중 38명(12.3%)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전국적으로 약 800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들 중 증상이 경미해 피해 사실을 모른 채 넘어가지만 시간이 지나 피해가 나타나는 잠재적 피해자가 많이 있을 수 있다.1)

 

04102807_R_0.jpg » 2011년 11월9일 백도명 서울대보건대학원 원장(왼쪽)이 서울 중구 정동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가습 살균제 20개 상품의 명단과 상품별 피해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정아 기자
 
2012년 피해자들이 책임 기업들을 고소했지만 수사를 하지 않고 검찰이 기소중지 결정을 내린 것도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2014년 우리 정부가 폐 손상 의심 사례 공식 조사 결과2)(거의 확실 127명)를 발표하고 나서도 1년 반이 지난 올 10월에야 해당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기보다는 피해신고 기한을 12월 말로 정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을 편든다거나 사건을 축소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지난 1~2차 조사를 통해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4등급으로 분류하고 이 중 피해 원인이 명확하게 확인된 1~2등급만 장례비와 폐 손상 관련 의료비 일부를 지급받게 되었다. 이 경우도 폐 이외의 치료비나 정식적 고통에 따른 피해보상은 개별소송을 하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거나 고통 속에 살아가는데 돈으로 보상하는 것이 중요한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고, 원칙적으로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치료비와 소송비용 등이 부담스러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을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숨지고 현재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4년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이 받은 처벌은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과징금 5000여만 원이 전부라는 점에서 보면 어쩌면 누군가에게 중요한 것이 돈일지도 모른다.3)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15곳 가운데 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8개 회사의 대표가 기소되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책이나 의미 있는 사과가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들 업체는 가습기 살균제에 인체 유해성이 의심되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제조·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람을 숨지게 할 의도는 없어 살인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가습기에 이용하였을 때 나타날 독성물질의 위험성을 모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ga2.jpg » 2015년 5월 피해자와 시민단체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와 영국 국회의사당 등을 방문하여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과 살균제로 사망한 아기의 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어떤 물질 때문인가? 위험한 염소 화합물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은 살균제나 부패방지제로 사용하는 구아디닌 계열의 화학물질이다. 이들은 피부독성과 경구독성이 다른 살균제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살균력이 뛰어나며 특히 물에 잘 녹아 가습기 살균제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들 물질은 샴푸 등에 첨가되어 현재도 유통되고 있지만 최근 동물실험에서 심혈관 급성 독성, 피부 세포 노화 촉진 등이 밝혀져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이런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되도록 허가받았을까? 올해 9월24일 국회 장하나 의원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을 잘못 이해해 경구독성만 심사하는 바람에 피해를 미리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4)
 
제조사가 제출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서’를 바탕으로 피지에이치(PGH)의 경구독성만 심사하고,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것처럼 제품에 첨가되어 분무 형태로 폐에 흡입되거나 피부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쳐 흡입·피부 독성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이다. 흡입 노출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흡입독성 평가를 하지 않고 이 물질의 사용을 허가한 셈이다.
 
피지에이치는 우리에게 낯설지 몰라도 위험한 화학물질 중에 익숙하게 들은 염소 화합물이 적지 않다. 쓰레기소각장 등에서 나오는 다이옥신, 페놀 유출 사건에서 발생한 발암물질 클로로페놀 등도 염소가 포함된 유독성 물질이다.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으로 부르는 1991년 ‘두산전자 페놀유출사건’의 경우, 불법방류된 페놀과 수돗물의 소독제인 염소가 반응하여 클로로페놀이라는 발암물질을 만들어 내었다. 락스와 유사한 냄새가 나는 클로로페놀은 악취발생뿐만 아니라 중추 신경장애를 유발하기도 하며 구토와 경련 등 급성중독을 일으키고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ga4.jpg » 환경보건시민단체가 집계한 가습기 피해자 최근 실태. 12월28일까지 3차 접수한 결과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무책임한 기업과 화학물질 관리에 실패한 우리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하자. 그럼 우리 시민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 
 
그들은 왜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나?
 
지금은 더는 판매되고 있지 않지만 당시 가습기 살균제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인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은 옥시레킷벤키저 사가 제조·판매하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자사 제품이 어린이와 임신부 등을 죽게 만들었다는 우리 정부의 조사결과를 부정하고 곰팡이나 레지오넬라균 등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사과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이 업체는 세탁표백제 ‘옥시크린’과 습기제거제인 ‘물 먹는 하마’ 브랜드로 우리 소비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국내업체였으나 외환위기 직후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인 영국의 레킷벤키저에 매각되고 회사 이름을 옥시레킷벤키저로 변경하였다. 이후 옥시의 브랜드 효과에 막강한 자금력 등을 발휘하여 살균제, 세제, 탈취제 등 국내 각종 생활화학용품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매우 다양하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한번 이상 사용했을 제품들이다.
 
옥시크린, 옥시싹싹 등의 표백제나 세제뿐만 아니라 물먹는 하마 등 하마란 이름이 들어간 제품, 손 세정제인 데톨 제품 등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많이 사용하는 제품이다. 최근에는 ‘스트렙실’, ‘개비스콘’과 같은 기관지·소화기계 질환 치료제에서도 입지가 있다.5)
 
옥시 제품 불매운동 서명 고작 1천명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은 가장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 제품을 제조·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를 상대로 직접 국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옥시레킷벤키저를 포함한 제조·판매사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생명이 죽은 상황에서 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일까?
 
책임 있는 자세를 요청하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여전히 이 회사의 충실한 소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ga3.jpg » 다음 아고라 ‘옥시레킷벤키저 불매운동’ 청원 결과 (2015년 12월 22일 화면)  
 
작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13년 10월부터 작년 초까지 인터넷포털 다음의 아고라 청원광장에 “살인기업(가습기 살균제) 옥시레킷벤키저 불매운동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서명이 시작되었다. 2014년 2월10일까지 1000여명만 서명에 참여하였다고 한 온라인매체가 보도하기도 하였다.6)
 
해당 온라인 서명은 그해 4월14일까지 이어졌으나 500만 명의 서명 목표 중 1049명의 서명에 그치고 말았다.7) 가장 보호받아야 할 임신부와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믿고 구매한 제품에 의해 고통받다 죽어야 했을 때, 우리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상식 있는 시민,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 환경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주곤 한다. 내가 사용하는 석유가 쏟아져서 피해본 태안 주민, 내가 사용하는 전기를 나르는 송전탑으로 피해를 보는 밀양 주민,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까지.
 
이런 점에서 나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피해자들과 함께 활동해온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든다.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내가 내 삶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내 마음과 눈길이 가 있는 그곳에서 대신 수고해주는 분들이 참 고맙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환경사건 중 상당한 기간 동안 해당 문제를 붙잡고 끈질기게 다루는 시민단체나 환경단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현실 속에서 더욱 그렇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비극은 언제 끝나게 될까? 아니 시간이 흘러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될 때면 더는 화학물질로 인한 고통은 생겨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가로부터 허가받은 물질은 모두 안전한가? 800만명이나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나와 내 가족에게 나중에 그 피해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침 나와 내 가족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무 피해가 없다고 안도하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너무 위험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일이 언제 다시 생겨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기업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점잖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다시 생겨나지 않을지 곰곰이 복기해 보아야 한다. 비극적인 사고는 한 번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 타계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베테랑이자 세계인권선언의 주역인 스테판 에셀이 자신의 책 <분노하라>에서 강조하였듯이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고 지금이 바로 분노하고 행동할 때일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그 모든 것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김찬국/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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