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기 수백마리 떼지어 방정, 말짱 도루묵될라

황선도 2016.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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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유래 수수께끼, 임금 무관하게 어민이 쓰던 이름인 듯
복원과 조업부진, 갯녹음 겹쳐 해변에 알더미 떠밀려와 썩어

 

do5.jpg » 해조류 위애 포도송이 같은 알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도루묵.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FIRA)   
  
어떤 일을 죽을힘을 다해 했다가 한순간의 실수 따위로 허사가 되었을 때, “에이~ 말짱 도루묵 됐네…”라고 곧잘 말한다. 거기에 왜 이 말이 나왔는지도 친절하게 설명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유래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북쪽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배가 고팠던 그가 수라상에 올라온 생선을 맛있게 먹은 후 그 이름을 물었다.
 
‘묵’이라는 생선이라고 하자 맛있는 생선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라며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 환궁한 선조가 피난지에서 맛보았던 은어가 생각나 다시 먹어보았더니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형편없는 맛에 실망한 임금이 역정을 내면서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라고 해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do1.jpg » 도루묵을 바람에 꾸들꾸들 말리는 모습. 사진=정은경 작가

 
과학자는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 도루묵은 주로 강원도와 함경도 그리고 경상북도의 동해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 바닷물고기이다.
 
그런데 선조는 도루묵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피난을 간 적이 없다. 한양을 떠나 임진강을 건너 평양을 거쳐 의주로 갔으니, 실제 피난길에서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난리 통에 생물을 동해에서 잡아 진상했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러니 그 주인공이 선조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동해안 쪽으로 피난을 가서 도루묵을 먹은 임금은 과연 누구일까? 조선시대 사람인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도루묵 이름의 유래에 관련해서 이전 왕조의 임금을 거론했으니, 그 주인공이 고려 때의 어느 왕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런 연유로 탐문 대상의 폭을 고려와 조선 시대로 넓혀보면, 수도인 개성이나 한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 왕은 모두 다섯 명이다. 고려 시대에는 11세기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을 간 적이 있다.
 
고종은 몽고의 침입에 대비해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14세기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상도 안동으로 피신했다.

 

do8.jpg » 식감이 별미인 도루묵 알. 사진=정은경 작가  
 
조선시대에는 16세기 선조가 임진왜란 때 평안도 의주로 피난을 떠났다. 인조가 세 차례에 걸쳐서 한양을 비웠는데,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그리고 이괄의 난 때는 충청도 공주로 몸을 피했다.
 
이러하니 고려와 조선 시대에 도루묵이 잡히는 동해안으로 피난 간 왕은 한 명도 없다.   과학적 사고로 근거를 찾아보니 도루묵은 선조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판명 났다.
 
그렇다면 도루묵과 관련하여 선조 임금이 왜 누명을 썼는지 궁금해진다. 굳이 짐작하자면, 왕이 전란을 대비하지 못하고, 종묘사직과 백성을 버리고 피신하는 것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을 도루묵 이야기와 연결 지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에이~ 말짱 도루묵 됐네…”라는 자조 섞인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더 심증이 간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반복되고 있으니, 이러한 민담은 계속될 것이다.


do2.jpg » 어물전에 놓인 도루묵. 사진=노한욱, FIRA  

도루묵의 다른 이름을 살펴보면, 한자로는 ‘목어(木魚)’, ‘은어(銀魚)’, ‘환목어(還木魚)’, ‘도로목어(都路木魚)’라고 하고, 함경도 지방어로 ‘돌묵어’ 또는 ‘돌목어’, ‘도루무기’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모래바닥에 산다고 해서 ‘샌드피쉬(Sand fish)’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하타하타(ハタハタ)’로 ‘펄럭펄럭’의 뜻도 가지고 있다. 짐작하건데 은어와 하타하타는 도루묵이 물속에서 은빛의 배때기를 뒤집으며 노니는 모습을 연상하면 이름 붙여진 연유가 이해될 듯하다.
 
도루묵 이름의 유래를 기록한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동해에서 나는 생선으로 처음에는 이름이 목어였는데, 이전 왕조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왕이 있어 이름을 은어라고 고쳤다가 너무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쳐 환목어라고 했다.”고 했다. 한자 ‘환목어’를 우리말로 풀이한 것이 바로 ‘도루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담에는 배고팠던 임금이 너무나도 맛있었던 생선에게 은빛이 도는 물고기라는 뜻에서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지만,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에는 이름의 유래가 다르게 적혀 있다. “물고기의 배가 하얀 것이 마치 운모 가루와 같아 현지 사람들이 은어라고 부른다.”고 했으니, 은어는 임금이 하사한 것이 아니라 현지 백성들이 이미 불렀던 이름이었다는 결론이다.
 
결국, 도루묵 이름의 유래에는 민담과 음절의 변화가 함께 섞여있어 내 능력으로는 그 진위를 밝히기가 어렵다. 다만, 도루묵이 어떤 것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고, ‘돌묵어’가 변해 ‘도루묵’이 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생선은 백성들 사이에서 이미 도루묵이라고 불리고 있었고, 어느 잘난 식자께서 소리가 비슷한 한자로 바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do3.jpg » 어민들이 그물에서 잡힌 도루묵을 떼어내고 있다. 사진=정은경 작가
 
도루묵(Arctoscopus japonicus)은 수심 100~200 m의 모래가 섞인 펄 바닥에 산다. 서식분포를 보면, 알래스카, 사할린, 캄차카반도 해역과 일본 북부 해역, 그리고 우리나라 동해의 북부 해역 등의 찬물에 사는 냉수성 어류이다.
 
도루묵은 몸길이가 30㎝ 정도로 머리 부분은 높으나 점차 가늘어지며 옆으로 납작하다. 등지느러미는 2개로 완전히 분리되었고, 뒷지느러미가 배에서 꼬리까지 길게 연결되었다.
 
등에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황갈색의 무늬가 있고, 옆구리와 배는 은색이다. 몸에 옆줄과 비늘이 없으며, 주둥이와 눈은 큰 편이다. 우리나라에 1속 1종, 세계적으로는 2속 2종으로 종의 분화가 잘 되지 않았다.
 
초겨울이 되면 수심이 얕고 해조류가 무성한 곳으로 모여들어 산란을 한다. 도루묵은 태어난 지 3년이 지난 11~12월에 큰 무리를 이루어 모자반과 청각 등의 해조류에 점착성 알을 낳아 붙인다.
 
도루묵이 먼바다와 연안을 회유하는 시기에 따라 저층트롤, 정치망, 자망 등으로 어획하며, 11㎝ 이하의 개체는 포획이 금지되어 관리하고 있다.

 

03808537_R_0.jpg » 강원도 강릉의 한 어부가 자망에 걸린 도루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윤운식 기자
 
2015년 12월, 동해 최북단 고성과 강릉 해변이 도루묵 알로 뒤덮였고, 떠밀려온 알은 켜켜이 쌓여 썩어갔다. 해변뿐만 아니고, 바다에도 많은 도루묵 알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게다가 바다에 쳐놓은 그물에도 도루묵 알이 달라붙어 있다.
 
1970년 2만5천 톤에서 1990년대 1천~2천 톤으로 급감하였던 도루묵 어획량이 2006년부터 도루묵 복원사업이 시작된 이후에는 5천~6천 톤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이와 같은 도루묵 복원사업이 성과를 본데다가 최근 어가 하락으로 도루묵 조업이 저조하면서 산란할 어미가 급증하였다.
 
거기에다 바닷속 암반에 붙어 있던 해조류가 녹아나는 갯녹음 발생이 심해지면서 알을 낳아 붙일 바다숲이 충분치 않으니 산란장소를 차지하지 못한 도루묵들은 그물이나 심지어는 수중에 마구잡이로 산란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05467840_R_0.jpg » 지난달 17일 강원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해안에 엄청난 양의 도루묵 알이 파도에 밀려나와 백사장을 뒤덮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do4.jpg » 해변에 밀려온 도루묵 알. 산란처 부족이 주 원인이다. 사진=하희정, FIRA
 
지난 12월10일 강원도 양양 동산리 바닷속에서 암컷 도루묵이 모자반에 산란하여 알록달록한 꽃망울 덩어리를 만들었다. 수백마리씩 떼를 지은 수놈들은 그 주위를 맴돌며 방정의 기회를 엿본다.
 
때가 됐다 싶으면 앞을 다투어 알 덩어리를 덮친다. 입을 벌리고 몸을 떨며 정자를 방사한다. 마치 흰 분가루를 뿌린 듯하다. 신비로운 장면이다. 생명은 아름답다. 

 
동영상=노한욱,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FIRA) 


이름의 유래로 인해 도루묵은 으레 맛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도루묵이 강원도와 함경도의 동해안에서 잡히는 생선으로 조정에 공물로 바치는 지역 특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맛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도루묵은 구이나 찌개로 주로 조리된다. 산란을 준비하는 초겨울에는 살이 오르고 기름지지만, 그렇다고 비리지 않고 담백하다. 그래서 저칼로리 다이어트 생선이다.
 
특히, 산란을 앞두고 알이 가득 찬 암컷은 그 맛을 최고로 친다. 사람들은 도루묵 알이 맛있고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우득우득 씹어 먹는데, 씹을 때의 식감은 독특한 경험이다.
 
do6.jpg » 도루묵 찌개. 사진=정은경 작가

 

do7.jpg » 도루묵 구이. 사진=정은경 작가


20여 년전, 초임 발령으로 동해수산연구소에서 새벽 같이 정치망 물보러 나갈 때였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추운 바닷가에 화톳불을 피워놓고 생 도루묵 위에 막소금을 뿌려서 구워먹었던 추억이 아련하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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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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