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에 20억년 시간여행…그 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조홍섭 2016. 01. 27
조회수 20109 추천수 0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3-1> 영덕 24억년 부정합

 

 단세포 생물이 주인이던 원생대
 공룡 포효가 울려 퍼지던 백악기
 편암과 역암 두 지층 맞붙어
 
 20억년 오르내리던 원생대 지층
 수억년 전 마지막 융기
 그 위 모든 지층들 침식돼 사라지고
 
 백악기 때 다시 가라앉아
 그 위에 돌 쌓여 역암으로 굳고
 다시 땅위로 솟아올라
 
 역암층에 박힌 녹색편암 조각
 두 지층이 만났던 증거


un1.jpg » 오랜 세월에 걸쳐 땅은 움직이고 윤회한다는 사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경북 영덕의 부정합 지층의 모습. 왼쪽은 약 20억년 전 녹색편암이고 오른쪽은 1억년 전 공룡시대에 쌓인 역암이다. 두 지층이 맞닿기까지 수많은 지각변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② 녹색편암 조각(가운데 점박이 돌)이 다른 돌과 함께 굳은 역암. 두 지질시대가 만난 증거이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산꼭대기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모래가 바다 밑에 쌓여 굳은 뒤 땅 위로 솟아 다시 산 위의 사암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까. 까마득한, 적어도 수천년 이상이 걸릴 것은 분명하다.

 

‘현대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코틀랜드 박물학자 제임스 허턴(1726~1797)은 18세기 말 이런 통찰을 했다. 당시로서는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주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기원전 4004년 탄생했고 생물 화석은 대홍수의 증거였을 뿐이다.
 
“까마득한 시간의 심연에 현기증”

 

허턴은 땅덩어리가 한순간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에 걸쳐 순환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를 찾아다녔다. 바로 부정합이었다.

 

전혀 다른 시기에 형성된 지층이 서로 맞닿아 있는 곳이다. 여기라면 지층이 깎이고, 가라앉고, 휘고, 꺾이고, 솟아오른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un7.jpg » 허턴이 답사했던 스코틀랜드 시카 포인트 부정합. 바다 쪽인 고생대 실루리아기 지층이고 위의 지층이 부정합으로 맞닿은 고생대 데본기 사암층이다. 사진=Lothian and Lothian and Borders GeoConservation

 

허턴이 1788년 답사한 에든버러 동쪽 64㎞ 지점에 있는 시카 포인트는 그런 부정합 가운데 하나였다. 답사에 동행한 수학자 플레이페어는 “까마득한 시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현기증이 났다”고 당시의 감동을 적었다. 이곳에는 6500만년 격차를 둔 고생대의 두 지층이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카 포인트보다 시대 간격이 수십배 더 큰 부정합이 발견됐다. 지구에 단세포생물밖에 없던 원생대 지층과 공룡의 포효가 울려 퍼지던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 20억년 이상의 세월을 건너뛰어 맞붙어 있다.

 

경상북도의 포항·경주·영덕·울진 등 동해안 4개 시·군이 지난달 26일 환경부에 국가지질공원으로 신청한 동해안권 지질공원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24억년 부정합’이 그곳이다.
 

un2.jpg » 영덕 부정합. 왼쪽이 중생대 역암층이고 오른쪽이 원생대 녹색편암이다.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14일 경북 영덕군 영해면 사진리 해안도로에서 바닷가로 내려서자 모래 대신 암반이 펼쳐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두 종류의 지층이다. 하나는 크고 작은 자갈과 암석이 콘크리트를 비벼놓은 것 같은 역암이고 다른 나라는 푸른 기를 띤 오래돼 보이는 변성암이다.
 

두 지층을 나누어 디딘 장윤득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가 “한 발은 중생대 역암층, 다른 발은 원생대 녹색편암층에 서 있으니 20여억년을 시간여행하고 있는 셈”이라며 “국내에서 이렇게 연대 차이가 많이 나고 생생하게 드러난 부정합은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당시 한반도는 여러 조각 나뉘어


Rodinia_reconstruction.jpg » 7억5000만년 전 초대륙 로디니아의 모습. 약 20억년 전 초대륙 콜럼비아는 11억년 전 새로운 초대륙 로디니아가 됐다. 대륙은 이합집산을 하며 지각 위를 떠돈다. 그림=위키미디어 코먼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지층은 북한의 낭림육괴와 경기육괴, 영남육괴인데 이곳의 녹색편암은 영남육괴의 동북쪽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20억년은 얼마나 먼 시기였을까.

 

지구가 46억년 전 탄생한 뒤 바다는 44억년 전, 최초의 대륙은 30억년 전에 비로소 출현했다. 산소가 거의 없었던 시생대가 끝나고 25억년 전 원생대에 접어들자 단세포생물인 남세균이 대기로 산소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20억년 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포핵을 가진 진핵생물이 바다에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지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한반도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다른 대륙의 일부였다. 그러나 영덕의 녹색편암을 조사하면 20억년 동안 어떤 풍상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un5.jpg » 김정훈 박사가 원생대 녹색편암을 가리키고 있다. 약 20억년 동안 온갖 지각변동을 겪은 지층이다.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경북도 지질공원 담당자인 김정훈 박사는 “당시 영덕은 지금의 일본처럼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섭입대에 가까웠는데 화산활동과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암석이 여러 차례 지각변동을 받아 변형돼 편암이 된 뒤 땅 위에 솟아 드러나면서 긴 세월의 칼날에 침식돼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생대 편암 위에 쌓인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 역암이다. 약 1억년 전 한반도는 현재와 비슷한 꼴을 이뤘다. 대륙충돌 등 지각변동과 가까이 있던 섭입대의 영향을 받아 영남 일대에는 화산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분지가 형성됐다. 영덕은 이 경상분지의 북쪽에 위치한다.

 

un4.jpg » 원생대 편암 위에 쌓인 중생대 백악기 역암. 여러 크기의 돌이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경사가 급한 산지에서 형성됐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조홍섭 기자
 
주변은 경사 급한 골짜기였을 것


그렇다면 원생대 지층이 왜 중생대 지층과 붙어 있는 걸까. 그 사이에 낀 20여억년의 역사는 어디로 갔나. 장 교수는 “땅의 역사는 소멸돼 버렸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부정합 형성 과정

 

제목 없음.jpg

 

그 과정을 장 교수는 이렇게 추정한다. 지층은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긴 시간대를 고속촬영한 필름처럼 돌려보면 서서히 오르내린다. 올랐을 때는 물과 바람에 깎여 나가고 가라앉으면 그 위에 퇴적물이 쌓인다. 원생대 편암층도 몇 차례 침강과 융기를 거듭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억년 전에 마지막 융기가 일어났다. 가장 밑의 원생대 편암층을 빼고 그 위의 모든 지층이 침식돼 사라졌다.
 

마침내 중생대 백악기 때 이 지층은 가라앉았다. 아마도 주변은 경사가 급한 골짜기였을 것이다. 홍수 때마다 크고 작은 돌멩이가 쏟아져 편암층 위에 쌓였다. 오랜 세월 쌓인 돌들은 역암으로 굳었고, 어느 시점에선가 다시 땅 위로 올라왔다.

 

un3.jpg » 지표에 드러난 녹색편암의 조각들이 쓸려내려가 역암을 구성한 모습. 두 시대 지층이 맞닿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시멘트 표면의 녹색 유리는 군부대가 경계를 위해 설치한 흔적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흥미롭게도 역암층에는 녹색편암 조각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녹색편암 기반암이 땅 위에 드러나 여기저기 그 돌조각이 굴러다니던 중생대 백악기 때 다른 돌들과 섞여 쌓였던 흔적이다. 원생대와 중생대가 만났던 증거인 셈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는 10억년

un8.jpg » 영덕 부정합 위치도. 사진2리와 사진3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사진=경북도

 

부정합이 위치한 사진리의 녹색편암과 역암이 정확히 언제 형성됐는지는 아직 모른다.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연구자들은 녹색편암이 속해 있는 평해 화강편마암의 생성 연대를 약 21억년 전, 영양소분지 역암층의 나이를 약 1억년으로 측정한 바 있다. 두 지층의 시차가 약 20억년이다.

 

그러나 부정합층 지점의 절대연령을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 교수팀은 원생대와 백악기 시작 지점의 연대 차를 들어 ‘24억년 부정합’으로 표기하고 있다.
 

장 교수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동하면 시간상으로는 10억년 이상 과거로 여행하는 셈인데 이곳에서는 한 발짝으로 20억년도 전의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며 “지구 역사의 광대함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덕/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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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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