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의 제왕' 검독수리 번식지 알타이를 찾아

김진수 2016.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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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보호단체와 3800킬로 동행…기상이변과 먹이부족으로 번식률 낮아

어린 검독수리 가락지 끼우기, 나무 타고 초원 달리는 힘겨운 노력 끝에 성공 

 

14.jpg » 갓 둥지를 떠난 어린 검독수리에 가락지를 끼워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 연구자가 붙잡고 있다.

 

지난 여름 러시아의 시베리아-알타이 지역 맹금류 탐조 여행을 했다. 거기서 검독수리를 포함해 대형 수리 다섯 종의 번식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사진에 담는 행운을 누렸다. 


맹금류의 '지존'인 검독수리와 물가를 좋아하는 흰꼬리수리, '초원의 강자' 흰죽지수리와 초원수리 그리고 '산림의 강자'라 할 만한 항라머리검독수리까지 하늘의 5대 제왕을 한 시기에 모두 본 셈이다(이들에 필적할 수리로는 참수리가 더 있지만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여행은 시베리아의 중심 도시 노보시비리스크에서 시작했다. 탐조 팀은 흰 꽃이 흐드러진 감자와 메밀이 끝없이 이어진 시베리아 평원을 지나 4000m 높이의 알타이 산맥에 둘러싸인 알타이공화국 접경지역까지 두 대의 러시아제 승합차와 지프에 나눠 타고 달렸다. 


장장 24일 동안 3800여㎞를 달린 여정엔 오랫동안 시베리아와 알타이 지역의 맹금류를 조사하고 보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러시아 맹금류 연구와 보호 네트워크'와 '시베리아 에코 센터'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640-골든이글-1.jpg » 알에서 깬 지 70일 쯤 된 검독수리. 이제 막 이소를 앞둔 새가 웅크리고 있는 둥지와 나무에 알타이의 붉은 석양이 비치고 있다.


검독수리는 날짐승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 먹이그물의 제일 높은 위치에 있다. 쥐, 토끼, 사슴, 여우와 덩치 큰 늑대도 사냥한다. 공중의 날쌘 매나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도 이들에겐 단지 먹잇감이다. 


640-골든이글-2.jpg » 차에서 내려 어른 허리 높이보다 더 자란 수풀을 헤치고 30여 분 산을 오르자 숲 안쪽 소나무에 검독수리 둥지가 보인다.


640-골든이글-3.jpg » 둥지 위 새가 잘 보이는 포인트도 있었다. 마침 이곳에 잠복할 만한 장소가 있었다.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망원렌즈를 설치한 뒤 어미 새가 오는 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알타이 서부에 속하는 말르이 바쉬락의 검독수리 둥지는 산 위 커다란 소나무 위에 있었다. 다른 곳엔 주로 외딴 산악지대 절벽이나 커다란 바위 위에서 번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둥지에선 2002년 발견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번식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매년 조사 때마다 새끼를 키워 냈으니, 검독수리 부부가 유난히 생활력이 강하거나 서식환경이 무척이나 좋은가 보다. 


사실 이곳은 이번 알타이 탐조에서 찾은 유일한 번식 성공 둥지였다. 다른 지역에서 둥지를 몇 개 더 찾았지만 대부분 비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아예 사용하지 않기도 했다. 


2015년 봄 시베리아와 알타이의 봄 날씨가 어찌나 추웠던지 대부분의 맹금류들이 번식을 포기하거나 남쪽(카자흐스탄이나 인도)으로 다시 이동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또 이들의 주식인 땅다람쥐가 서식하는 초원이 파괴되면서 점차 번식 개체가 줄고 있다고 한다.


640-골든이글-4.jpg » 시베리아의 맹금류 전문가 이고르(가운데)가 동료들과 둥지를 지켜보고 있다.


베테랑 이고르는 이때 이미 이소를 앞둔 새에게 가락지 작업 때 생길 돌발 상황도 예상하고 있었을까?


640-골든이글-5.jpg » 이날 밤 검독수리 둥지가 있는 숲(오른쪽 산) 위로 은하수가 흐른다. 탐조 대원 중 일부는 은하수 아래서 잠복해 어미 새를 기다리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640-골든이글-6.jpg » 다음날 아침, 검독수리 가락지 작업을 위한 작전회의. 따가운 해를 피해 텐트 그늘 아래로 모였다.


나무가 없는 알타이의 초원 지대는 그늘이라곤 한 뼘도 찾을 수 없다. 해가 지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다. 그러나 한 낮의 해는 외지의 여행객을 지치게 할 만큼 따갑다. 겨울이 긴 러시아 사람들은 웃옷을 벗어 가며 귀한 여름 해가 즐기지만, 한국인에겐 이곳의 여름 해는 견디기 힘들 만큼 따갑고 강렬했다. 


회의에선 이소가 이미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린 새가 둥지를 벗어나 주변 나뭇가지로 걸어 나왔고 어미 새도 이소를 유도하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둥지 주변의 어미 새도 더는 둥지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640-골든이글-8.jpg » 이고르가 어린 검독수리를 잡기 위해 나무를 오르고 있다.  


640-골든이글-9.jpg » 어린 새를 거의 잡으려는 순간, 새가 날아간다.


640-골든이글-10.jpg » 둥지가 있는 숲 아래 드넓은 초원으로 어린 새가 날아가 버렸다.

640-골든이글-11.jpg » 어린 새가 날아간 초원. 초원 가운데엔 작은 냇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도 있다.


첫 비행치곤 짧지 않은 3~4㎞를 날았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어린 새에겐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초원의 들짐승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데다, 아직 날개 힘이 약한 새는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진 새는 어미 새도 보호하기가 쉽지 않다. 최악의 경우 아직 도움이 필요한 어린 새를 어미가 포기할 수도 있다. 


새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여러 사람을 둥지 주변에 배치하고 나무에 올랐지만 겁에 질린 어린 새가 너무도 용감하게 훌쩍 날아가 버린 것이다. 당황한 알타이의 전문가들은 새가 착지한 지점을 확인하고 곧 새를 쫒아 산을 내려 초원을 내달렸다. 


640-골든이글-12.jpg » 다리에 채워진 가락지.


13.jpg » 날아 간 검독수리를 쫒아가 잡아 온 이고르와 빅토르. 은퇴한 러시아 군 출신 운전기사 빅토르도 이고르를 따라 산과 초원을 수 킬로미터 내 달려 어린 새를 잡아 왔다. 온몸에 땀에 젖어 웃옷을 벗었다.

 

날아 간 검독수리를 쫒아가 잡아 온 이고르와 빅토르. 은퇴한 러시아 군 출신 운전기사 빅토르도 이고르를 따라 산과 초원을 수 킬로미터 달려 어린 새를 잡아 왔다. 온몸이 땀에 젖어 웃옷을 벗었다. 

 
서너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땀으로 범벅이 된 이고르와 빅토르가 어린 새를 감싸 다시 산으로 올라 왔다. 두 전문가는 땀에 범벅이돼 가쁜 숨을 몰아 쉬었고, 어린 새의 다리엔 이미 식별번호가 선명한 가락지까지 채워져 있었다. 상황이 급박해 포획 뒤, 이동 중에 차안에서 가락지 작업을 마쳤다는 것이다. 

 

15.jpg » 타의로 둥지를 떠났던 알타이의 검독수리.


어린 새의 첫 비행은 생애 가장 긴장되고 위험한 순간이다. 아직 날개 근육에 힘이 붙지 않은 새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 


어미 새도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날 때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갯짓을 가르친다. 물론 어린 새도 하늘로 처음 날아오를 때는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한번 땅에 떨어진 뒤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다시는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jpg » 둥지에 새를 다시 올려놓는 작업도 쉽지 않다. 두 사람이 교대로 나무를 타면서 천으로 조심스럽게 싼 새를 주고받는다.   


17.jpg » 새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았다.


18.jpg » 이미 이소를 한 것으로 간주되는 어린 새. 바로 둥지를 걸어 나와 다시 주변을 경계한다.

 

물론 모든 촬영과 작업은 중단됐다. 새가 다시 타의로 둥지를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산을 내려오며 어린 새가 알타이 초원의 지존으로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랐다. 


19.jpg » 덩치가 작은 털발말똥가리가 바위에 앉아 있던 검독수리 유조를 공격하고 있다.  


20.jpg » 첫 번째 공격(아니면 위협)이 실패하자 다시 공격해 어린 새를 쫒아 내고 있다.

 

처음 위협 비행에 어리지만 덩치가 큰 검독수리는 움찔하는 정도로만 반응했다. 그러자 털발말똥가리는 재차 어린 검독수리를 공격해 결국 다른 곳으로 쫒아 버렸다. 아주 먼곳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차 자신에게 위험이 될 것을 잘 아는 털발말똥가리가 어린 싹을 잘라버린다는 심정으로 공격을 감행했을까? 아니면 최소 같은 서식지에서 먹이를 놓고 경쟁관계가 될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적 공격일수도 있을 것이다. 


temp_1457331687646.2022159100.jpeg » 여행 중에는 공중에서 초원수리와 싸우는 어린 검독수리도 목격되었다.


우리가 독수리라 부르고 있는 새는 사냥을 하지 않고 동물의 사체를 뜯어 먹는다. 자연의 청소부로서 하늘의 지배자다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은 흔히 ‘벌처(Vulture)’로 불린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의 용맹스러운 독수리는 ‘이글(Eagle)’에 해당한다. 희귀하지만 국내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검독수리, 흰죽지수리, 흰꼬리수리, 항라머리검독수리 등이 이에 속한다. 


맹금류는 형태나 행동 등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분류학적으로는 벌처(Vulture, 독수리류), 이글(Eagle, 수리류), 팰콘(Falcon, 매류), 버저드(Buzzard, 말똥가리류) 등의 무리로 나뉜다. 이들 중 일반인들이 독수리라 부르는 무리는 단연 수리류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세고 용맹스러우며 카리스마를 가진 지존은 바로 검독수리다. 용맹성과 머리 뒤의 황금색 깃털 색을 따라 검(劍)수리나 금(金)수리로도 불린다.

 
알타이/ 글·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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