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보기 힘든 항라머리검독수리 성체 촬영 성공
‘수리의 제왕’ 검독수리 번식지 알타이를 찾아②
세계적 멸종위기종, 숲속이나 호수가 소형 동물엔 공포의 대상
휴양지 같은 자연보호구역, 밤이면 모기 공습에 눈뜨기도 힘들어
» 둥지에서 날아 나오는 항라머리검독수리. 국내에서 성체를 보기는 힘들다. 먹이를 전달한 뒤 둥지 주변을 둘러보며 한참을 경계하더니 어미 새가 제법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날고 있다.
항라머리검독수리 서식지로 알려진 러시아 서 시베리아의 자비아로브스키이 자연 보호구역(Zavyalovskiy Nature Reserve)으로 향했다.
시베리아와 알타이 지역 맹금류 생태를 연구하고 보호하고 있는 ’시베리아 에코 센터’ 엘비라 대표가 10여m 높이의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매년 둥지에 있는 어린 새에게 이동경로 파악을 위한 인식표(가락지)를 채우기 위해서다.
» 둥지에 올라간 맹금류 전문가가 어린 새 포획 순간을 노리고 있다.
» 카메라를 든 손을 둥지로 들어올려 사진을 찍고 있다.
둥지에 오른 엘비라는 먼저 능숙한 솜씨로 사진을 찍고 새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 뒤, 놀란 새가 도망가거나 저항하지 못하도록 어린 새의 눈을 가렸다. 그 뒤론 일사천리다.
날지 못하지만 덩치가 제법 크고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를 가진 맹금류를 안전하게 제압했다. 새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준비해간 인식표(가락지)를 다리에 채웠다.
나무 위 둥지는 보통 접근이 어렵고 움직일 공간이 좁아 작업이 꽤 까다로운 편이다. 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부상당할 우려도 있지만 암벽 등반도 가능한 베테랑답게 무사히 나무를 내려왔다.
» 동료이자 남편 이고르가 나무에 오르기 전 장비를 함께 점검하고 있다. 이 장비는 이고르가 학창시절 나무를 쉽게 타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
» 남편이 만든 장비를 이용해 둥지까지 올라가고 있는 엘비라. 부부가 함께 조사를 다닐 때도 부인 엘비라는 나무타기 같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 둥지에서 포획한 어린 항라머리검독수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 가락지 작업을 하는 동안 어미 새가 걱정스러운 듯 둥지 주변을 계속 선회하고 있었다.
날지 못하는 어린 새는 천적의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 새끼를 기르는 기간 동안 어미 새는 새끼와 둥지로부터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둥지를 드나들 때도 주변 천적에 들키지 않게 최대한 조심한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사람과 같은 침입자가 둥지에 접근하면 부모의 경계심은 아마 최고조로 올라갈 것이다. 위장 텐트를 이용해 아무리 잘 숨는다 해도 야생에서 어미 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로 날아드는 장면을 지켜보기가 쉽지 않게 된다.
» 어미를 기다리는 둥지의 어린 새.
» 둥지에서 좀 떨어진 나무 사이에 숨어 지켜보는 사이 어미가 둥지 반대편 쪽에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무에 가려 어미와 어린 새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 어미가 사냥해 온 먹이를 입에 물고 있다.
처음 위치에선 커다란 나무에 가려 둥지 위 새의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가지 많은 커다란 소나무가 새에겐 최적이겠지만, 사진을 찍으려니 애물단지였다.
둥지 위 새의 모습이나 먹이를 물어 주는 어미 새 찍기는 포기하고 어둠을 틈타 반대편으로 위장 텐트를 옮겼다. 새로 옮긴 장소는 나뭇잎에 가려 둥지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날아드는 통로를 지켜 어미 새의 비행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랐다.
» 먹이 사냥에 성공한 어미 새가 다시 둥지로 날아들었다. 다행히 새끼에게 먹이를 건넨 뒤 둥지 옆 나뭇가지로 옮겨 앉았다.
» 날개 길이가 꽤 길고 넓다.
날아 나올 때 예상했던 방향과 조금 다른 곳으로 날았다. 카메라가 끝까지 새를 쫒지 못했지만 어른 항라머리검독수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국내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종이었다.
항라머리검독수리는 극히 적은 수가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난다. 하지만 대부분 먹이 경쟁에서 밀린 미성숙 새이거나, 한반도를 지나가는 나그네새이기 때문에 성조의 모습은 좀체 보기 어려운 편이다.
» 올 겨울 충남 서산 천수만에서 발견된 항라머리검독수리. 어린 새라서 몸의 흰색 점이 선명하다. 사진=김신환
이 새는 몸통과 날개 윗면, 어깨 깃에 특징적인 황갈색 커다란 반점이 흩어져 있다. 깃털의 마모가 심하거나 털갈이를 하면 사라지는데 영어식 이름 ‘큰 점 수리’(Greater spotted Eagle)은 어린 새의 특이한 모습을 보고 지은 셈이다.
몸체나 부리의 크기가 검독수리나 흰꼬리수리만큼 크거나 위용이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이나 숲 주변 호수의 쥐나 토끼 같은 작은 포유류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이 종을 적색자료목록에 취약종(VU)으로 분류해 놓고 국제적으로 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 자비아로브스키이 자연 보호구역은 커다란 호수 주변으로 소나무가 울창하다. 나무 자원 확보를 위해 인공으로 나무를 심어 놓은 곳이다. 지역이 넓고 나무가 울창해 다양한 야생동물도 서식하고 있다. 광활한 풍광이 시베리아의 원시림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3일 정도 머물며 알타이 지역 맹금류 탐사 일정의 마지막 야영을 했다.
» 바닥의 고운 흙과 넓은 호수 때문에 해변의 휴양지 같은 분위기도 나지만 해가 떨어지면 상황이 바뀐다. 날이 환할 땐 꼼짝하지 않던 모기가 활동을 시작하면 ’모기 세상’이 된다. 얼마나 많이 날아다니는지 국내에서 준비해 간 모기 기피제도 무용지물이다. 모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렵게 된다. 모기의 천적인 잠자리가 활동을 중단하기 때문이란다. 해가 지고 이슬이 내리기 시작지면 잠자리는 날개가 젖어 날아다니기 어려워진다. 이때를 틈타 숲의 모기들이 모두 나온다는 것이다.
» 별이 많은 하늘에 별똥이 떨어진다.
» 소나무 숲 군데군데가 물에 잠겨 습지로 변했다. 지난해 봄 비가 많이 내려 이 지역 곳곳이 자동차로는 이동이 불가능하게 됐다.
» 여행 일정 내내 거친 알타이 지역을 거침없이 달린 러시아제 미니 버스(UAZ-2206). 생김새 때문에 일명 `빵차‘라고도 불리는데, 고장 난 속도계 유리에 금이 갔다. 차창은 작고 에어컨이 없어 불편했지만 두 번의 펑크 외엔 큰 말썽이 없었다.
알타이/ 글·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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