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등쌀에 숨을 곳 잃은 수리부엉이 새끼

김정수 2016.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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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방해된다' 절벽 둥지 가리던 나뭇가지 베어내

플래시 터뜨리며 야간 촬영도, "일시적 시력 상실 우려"

 

owl1.jpg » 28일 낮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한 섬 절벽에 위치한 둥지에서 큰 눈을 뜬 채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수리부엉이 둥지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대체로 나뭇가지 등으로 엄폐된 절벽 등에 위치하나, 사진가들이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둥지 주변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내 둥지가 훤하게 드러나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커다랗게 뭉쳐진 먼지 덩어리나 회색 솜 뭉치처럼 보이는 물체 안 쪽에서 주황색 테두리의 부리부리한 눈동자 4개가 빛났다. 부화한 지 3주도 채 안 된 수리부엉이 새끼 두 마리였다.


28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간척지에 있는 12~13m 높이의 바위 절벽 중턱. 카메라를 들고 몰려든 취재진을 피해 어미가 날아가버린 둥지에서 놀란 눈으로 절벽 아래를 굽어보던 새끼들은 마치 숨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감고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약간 튀어나온 평평한 바위 위에 흙이 조금 덮여 있을 뿐인 둥지랄 것도 없는 둥지는 관찰자의 시선으로부터 그들을 감춰주지 못했다.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 위치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라도 새끼 때는 언제든 다른 맹금류나 족제비, 삵 등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어미가 소중한 새끼들을 키울 보금자리로 어떤 은폐물도 없는 곳을 고른 것일까?

 

 

owl2.jpg » 28일 낮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한 섬 절벽에 위치한 수리부엉이 둥지 주변으로 나무가 잘려있다.수리부엉이 둥지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대체로 나뭇가지 등으로 엄폐된 절벽 등에 위치하나, 사진가들이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둥지 주변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내 둥지가 훤하게 드러났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그것은 아니었다. 둥지 앞에 둥지를 가리고 섰던 나무들은 윗 부분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였다. 둥지 바로 옆과 위에서 둥지를 가려줬을 나무들에도 톱날에 잘린 단면이 선명했다. 잘려진 나무들은 절벽 아래 쪽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현장을 안내한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안산시청 환경정책과)씨는 “2주 전 부엉이 새끼가 부화한 것을 처음 확인했을 때는 둥지가 나뭇가지와 마른 덩굴들로 가려져 있었는데, 지난 23일 밤 다시 현장에 가보니 나무와 덩굴들이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사진가 5~6명이 강한 플래시 조명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며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부엉이가 좀더 잘 찍히게 하려고 둥지 주변을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owl5.jpg » 수리부엉이 둥지에 플래시를 터뜨리며 촬영을 하는 사진가들. 최종인 안산시 환경지킴이가 23일 촬영한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조류 전문가들은 번식기에 있는 새 둥지를 천적의 눈에 띄기 쉽게 노출시키고, 야간에 플래시를 터트리며 촬영하는 것은 해당 조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야간 촬영을 위한 강한 순간 조명이 조류의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체계적 연구 결과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특히 약한 빛에도 민감한 수리부엉이 같은 야행성 조류와 시신경이 다 발달하지 않은 어린 새에게는 어떤 형태로는 악영향이 불가피하리라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훼손 전 둥지.JPG » 이 절벽은 지난 20년 동안 해마다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고 번식을 해 온 곳이다. 훼손되기 전에는 이처럼 나무가 무성해 둥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2011년 올해 번식지 인근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사진=최종인 안산시 환경지킴이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조류팀장은 “눈동자에 강한 빛을 쪼인 새는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하면서 움직일 수 없게 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먹이 사냥과 새끼의 정상적인 양육·성장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부엉이류 새 가운데 가장 큰 수리부엉이는 특히 보호해야 할 가치가 높아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로 겹치기 지정돼 있다. 그럼에도 대부도에 서식하는 수리부엉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부 사진가들의 몰지각한 행위는 관련 규정이 미비한 탓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어미와 함께.JPG » 둥지에서 새끼를 돌보고 있는 수리부엉이 어미. 2010년 이 절벽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사진=최종인
  

멸종위기종 보호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대부도 간척지와 같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의 서식지 훼손은 규제할 근거가 없어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노희경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보호구역 밖이라도 생물종에게 직접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처벌할 수 있지만 둥지 주변의 나무를 자른 것과 생물종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며 “앞으로 보호구역이 아닌 곳의 서식지 훼손도 규제할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허가 없이 국가지정문화재 보전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촬영을 하는 경우 처벌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허가를 받아야 하는 둥지 주변 훼손의 정도와 야간 조명의 밝기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놓지 않아 실제 고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사법기관에 고발하더라도 무혐의 처리돼 고발한 공무원들만 피고발자들에게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owl3.jpg » 28일 절벽 아래에서 발견한 펠릿. 어미 수리부엉이가 소화하지 못한 동물 뼈 등을 토해낸 것이다. 사진=김성광 기자

 

박진영 팀장은 “다양한 사진 컨테스트를 주관하는 기관들이 둥지 안의 새를 찍은 출품작을 아예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주기만 해도 둥지 가까이 접근하려는 사진가들에 의해 보호종 조류들이 위협받는 상황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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