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마애석불, 운곡습지 뿌리는 거대화산

조홍섭 2016. 04. 14
조회수 32460 추천수 1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6-2> 고창
8000만년 전 거대 화산활동 결과로 다량의 응회암과 유문암 형성
구하기 쉽고, 단단하고 무늬 아름다워 고인돌·불상으로 제격

s병바위-오른쪽.jpg » 고창 선운산 일대에는 기암괴석이 많다. 거꾸로 꽂은 병 또는 사람 얼굴로 보이는 병바위는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이런 암석이 형성된 것은 용암이 굳은 유문암의 특성 때문이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전북 고창군은 전남 신안군과 함께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드문 곳이다. 관광자원을 잘 지켜 지역개발로 연결하겠다는 의욕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고인돌 유적과 운곡 습지, 선운사는 고창군의 대표적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지질공원 후보지이기도 하다. 언뜻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 화산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고창 고인돌 유적은 3000년 전 청동기 인의 무덤이자 제의 장소로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거석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은 약 8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 이 일대에 화산재를 날리고 용암을 흘려보낸 활화산 덕분이다. 당시 고창에는 선운산을 중심으로 큰 화산이 활동했고 현재 최대 지름 13㎞의 화산암체가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s고창동양최대고인돌1.jpg »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서 가장 큰 고인돌. 아시아 최대로 알려져 있다.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 재료이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조규성 전북대 과학교육학부 교수(암석학)는 “고인돌의 재료로는 이 지역에 흔한 뜨거운 화산재가 두껍게 쌓여 굳은 응회암과 점성 높은 용암이 굳은 유문암을 주로 썼다.”라고 말했다. 청동기인들은 암반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언덕 위 채석장에서 잘라낸 화산암을 끌어와 고인돌을 제작했을 것이다.
 
유적지 인근에는 채석장이 20~30곳에 이른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응회암을 쓰다가 필요하면 언덕 위 유문암을 끌어내 고인돌 제작에 썼을 것이다. 

sP3220453.JPG » 고인돌로 쓰기 위해 잘라 썼던 것으로 보이는 언덕 위 채석장 바위. 가로 세로로 금이 가 자르기 쉬운 형태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용암이 식은 유문암이 땅속에 묻혀 있다가 지상에 노출되면 압력이 감소해 표면이 팽창하고 금이 생긴다. 이런 틈에 물을 부어 넣어 얼리는 등의 방법으로 커다란 암석을 잘라 썼을 것이다.
 
고인돌을 형성한 화산재는 8700만~84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의 결과이다. 당시 한반도는 해양판이 유라시아판으로 파고들던 곳에서 가까이 위치해 곳곳에 분지가 형성됐고 화산활동이 왕성했다.
 
고인돌 유적지와 연결된 운곡 습지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대표적 생태관광지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저층 산지습지인 이곳은 영광원전이 쓸 용수를 대기 위한 저수지를 지으면서 1982년 5개 마을 158가구를 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 
 
sP3220464.JPG » 고인돌 유적지와 연결돼 있는 운곡 습지.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저층 습원으로 생태적 가치가 크다. 사진=조홍섭 기자

김동식 전북도 자연해설사는 “애초 물이 나오던 곳이어서 논 농사를 지었는데 주민이 이주한 뒤 30여년이 흐르면서 습지로 복원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운곡 습지는 원전이 낳기 훨씬 전 화산이 토대를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권창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운곡 저수지 주변은 선운산 화산이 마지막으로 용암을 분출한 화구였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분출된 유문암은 물이 잘 빠지지 않는 특성이 있어 한라산 백록담처럼 습지를 이룰 기초를 마련했고 화산암이 풍화된 점토가 바닥에 깔려 물이 고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s병바위-오른쪽3.jpg » 병바위(왼쪽)와 절벽. 유문암으로 이뤄져 잘게 부숴지지 않고 큰 절리로 쪼개지기 때문에 절벽이 많다. 사진=곽균섭 선임기자

선운산 일대에는 쥐바위, 사자바위, 배맨바위, 탕건바위, 선바위, 안장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갖가지 이름만큼이나 얽혀있는 전설도 많다. 
 
거꾸로 꽂은 병처럼 보인다고 해서 병바위란 이름이 붙은 아산면 반암리의 바위가 대표적인 예이다. 술에 취한 신선이 술병을 땅에 거꾸로 꽂아 놓은 것이란 얘기가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영락없는 사람 얼굴이다.
 
독특한 형상의 바위가 우뚝 남은 이유는 암질이 단단한 유문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창우 박사는 “화산재와 암석 조각으로 이뤄진 주변 암석은 쉽게 부스러져 완만한 동산이 된 반면 유문암은 균질해 큰 덩어리로만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절벽을 형성하는 일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s선운산 마애불2.jpg » 유문암은 재질이 단단하고 색과 무늬가 아름답지만 화강암보다 단단해 세부적인 표현은 어렵다. 유문암을 특성을 잘 살린 선운산 도솔암의 마애볼.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유문암은 종종 화산 분출의 마지막 단계에 나오는 규산질이 많고 점성이 높은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쉽게 흐르지 않고 경사진 화산체를 이루곤 한다. 유문암이 가파른 화산체를 이루고 그것이 절벽으로 남은 대표적 장소가 선운산 도솔암의 마애불이다. 
 
미륵신앙의 왕생처인 도솔암 마애불은 병바위처럼 절리로 떨어져 나간 유문암의 반듯한 단면에 불상을 새긴 것이다. 마애불의 붉은 기운과 부드러운 물결무늬는 유문암의 고유한 특성이기도 하다. 점성 강한 유문암질 마그마가 미끄러지면서 흐른 결이 그대로 굳은 것이다.

s고창 용암돔 부분.jpg » 고창 소요산의 용암돔. 땅속에서 마그마가 꽃봉오리 모양으로 굳은 것으로 여러 차례 분출한 마그마가 양파처럼 켜를 이루고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에 있는 해발 444m인 소요산을 오르다 보면 길가에서 양파껍질처럼 층을 이루면서 크게 휘어진 독특한 지층을 만나게 된다. 백악기 말 이 지역에서 벌어진 화산활동이 어땠는지를 짐작게 하는 드문 용암 돔이 드러나 있다.
 
점성이 높은 마그마는 화구를 통해 서서히 상승했다. 미처 땅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지하 수백m 지점에서 마그마가 멈췄다. 또 한 차례 다른 마그마가 화구를 타고 올라와 앞선 마그마 안쪽에 자리 잡았다. 마그마는 상승하면서 지층의 압력이 줄어들자 꽃망울 모양으로 팽창했다. 마그마 방에 여러 차례 마그마가 들어차면서 그때마다 조성이 약간씩 다른 마그마가 켜를 이뤘다.
 
마그마가 굳고 난 뒤 지층이 침식돼 사라지자 마그마 방의 독특한 모습이 지상에 드러났다. 마그마가 상승하면서 굽이치던 물결이 고스란히 지층에 남아있다.
 
고창/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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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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