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붕괴하자 흰죽지수리가 줄었다

김진수 2016.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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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의 제왕’ 검독수리 번식지 알타이를 찾아 ③
가축 방목 포기하자 초원 사라지고 주 먹이 땅다람쥐 부족
유일한 먹이터는 고속도로 주변, 교통사고와 밀렵이 새 위협

흰죽지-2-1- 먹이싸움-2.jpg » 둥지 위 흰죽지수리 어린 새가 전날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서로 당기며 다툼을 벌이고 있다. 부화한 지 50여일쯤 된 새끼들은 날개와 몸통의 솜털이 빠졌고 둥지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넓은 러시아 땅에는 얼마나 많은 수의 흰죽지수리가 살고 있을까? 동행한 ’시베리아에코센터‘ 맹금류 전문가 이고르가 2009년 조사한 수치를 제시했다. 
 
러시아에 3000~3500쌍이 번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아쉽게도 최근 5년 동안 계속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체수가 줄어드는 이유가 흥미롭다. 유럽 같은 서방에서는 농업의 발달과 집중화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러시아는 ’농업의 붕괴’가 흰죽지수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흰죽지-5-3 흰죽지-2.jpg » 둥지 위를 날고 있는 흰죽지수리.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우리나라 보호종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뒤 소비에트에 기반을 둔 농업(특히 초원에 적합한 가축 방목)이 붕괴했고 흰죽지수리의 번식지도 대규모로 파괴되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러시아에서 기르는 가축 중 소는 53%, 말은 40%, 돼지는 60%, 양과 염소는 75%나 감소했다. 2000년에서 2008년 사이 소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어서 수많은 땅이 버려졌고 경작지에는 나무와 갈대가 웃자라 무성하게 됐다. 
 
버려진 땅에서는 땅다람쥐도 사라졌다. 뒤따라 땅다람쥐를 주식으로 해 번식하던 흰죽지수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흰죽지-1-4-땅다람쥐-2.jpg » 땅다람쥐. 초원의 풍부한 땅다람쥐 덕분에 러시아에 많은 맹금류가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햄스터가 사라져 버린 곳에서는 흰죽지수리가 햄스터나 쥐 종류의 먹이를 사냥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번식하던 흰죽지수리도 사라져 버렸다.  
 
떼까마귀, 들쥐 종류, 토끼나 마못을 사냥하기도 하지만 러시아에서 흰죽지수리는 땅다람쥐나 햄스터가 주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러시아 농업의 붕괴가 차츰  멈추고 있다는 점이다.  
 
흰죽지수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기 감전, 고속도로 주변 교통사고와 밀렵이다. 고속도로에서의 교통사고도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도로가 늘고 차량이 증가해서가 아니라 도로를 따라서 땅다람쥐가 서식할 수 있는 숲-초원 지역이 유지되기 때문이란다. 노동자들이 정기적으로 풀을 잘라주는 도로 주변에서 흰죽지수리가 땅다람쥐를 성공적으로 사냥할 수 있게 되자, 자주 이곳을 찾는 새의 교통사고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흰죽지-1-2-건초더미위-2.jpg » 건초더미에 앉아 있는 흰죽지수리. 어깨 죽지에 흰색이 보인다

흰죽지-1-3-배설-2.jpg »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일까. 맹금류는 날기 전에 배설을 하는 습성이 있다. 앉아 있던 새가 배설을 하면 곧 날아오른다는 신호다.
 
지난여름 흰죽지수리가 번식하던 러시아 알타이공화국 중서부 우스트칸도 그런 곳이다. 넓은 초원은 푸른 융단처럼 풀이 깔려 있고, 땅다람쥐도 많았다. 
 
가장자리는 ’초원과 산의 경계’처럼 작은 바위 언덕이 시작되면서 사방으로 뻗어가고 있다. 언덕 위 곳곳에 작은 숲이 만들어졌고, 숲 가운데 소나무 가지에 둥지가 있었다.  
 
맹금류는 주변이 잘 보이는 높은 자리를 좋아한다. 흰죽지수리도 초원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 소나무에 앉아 사냥감을 물색했을 것이다. 

흰죽지-1-1--2.jpg » 먹이 사냥에 성공한 흰죽지수리가 먹이를 사냥해 둥지에 내려앉고 있다.
 
굴 밖으로 나온 땅다람쥐는 풀이 짧아 숨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쉽게 수리의 표적이 된다. 어미 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이를 물어와 둥지의 새끼를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한눈에 봐도 흰죽지수리가 번식하기 정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다. 전형적인 러시아 풋힐(작은 언덕) 지형이다.
 
덩치와 깃털 색으로 봐 둥지의 새는 부화한 지 50일쯤 된 건강한 형제였다. 한참을 지켜보니 날갯짓이 힘찬 게 이제 막 날개에 힘이 붙기 시작했나 보다. 맹금의 후예답게 먹이를 먹을 땐 서로 물고 당기며 다툼도 벌인다. 

흰죽지-2-2-날개짓-2.jpg » 날개 근육에 힘이 붙으면서 날갯짓이 힘차다.

흰죽지-2-3-날개짓--2.jpg »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일까. 맹금류는 날기 전에 배설을 하는 습성이 있다. 앉아 있던 새가 배설을 하면 곧 날아오른다는 신호다.
 
몇 해 전에 시베리아 지역에서 번식하고 있던 126개 둥지를 찾아 연구했던 이고르에 따르면 번식 성공률은 약 85%였고, 번식에 성공한 둥지에서 부화한 새끼 수는 평균 1.6마리였다고 한다. 서식 조건이 좋아 보이는 이곳에서 평균 이상의 부화율을 보였다.  
 
알타이 지역은 여름에 일찍 날이 밝아 새벽 4시만 돼도 주위가 이미 환하게 밝아 온다.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카메라와 음식, 위장막을 챙겨 다음날 새벽 2시에 둥지가 보이는 산을 향했다. 
 
흰죽지-3-1-일출-2.jpg » 새벽 4시45분. 러시아의 전형적인 풋힐 지형 위로 해가 떠오른다. 위장막에서 보이는 광경이다.

무거운 장비를 메고 어둠 속에서 전날 답사했던 길을 기어가듯 차근차근 되짚어갔다. 어둠 속에서 목표로 했던 장소에 위장막을 치고 촬영 준비를 끝내니 3시30분이었다. 어둠을 틈타 ’쥐도 새도 모르게‘ 둥지에 접근했으니 어미 새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며 숨을 죽였다.  
 
주위가 밝아 오자 둥지 근처에서 어미 새가 날아갔다. 밤새 둥지를 지키다가 이른 아침부터 사냥터로 나가는 수컷이다. 빨리 땅다람쥐를 물고 들어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흰죽지-3-2 -둥지 여명-2.jpg » 새가 엎드려 있던 둥지에도 아침 여명이 비추고 있다.
 
위장막 안에서 어둠이 가신 주변을 살펴보니 둥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새가 앉아 있다. 수컷이 사냥을 나간 사이 암컷이 둥지의 어린 새와 침입자를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흰죽지-3-4-망보는 암컷-2.jpg » 둥지가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산에 암컷이 나무에 앉아 둥지를 지키고 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어미 새가 날카로운 경계음을 내자 놀란 어린 새는 둥지에 바짝 엎드렸다. 다른 침입자가 나타났을까? 
 
사냥에서 돌아온 암수 한 쌍이 둥지 주변으로 날아왔다. 잠시 뒤 어린 새가 둥지에서 일어나더니 어미를 부르듯 커다란 소리를 냈다. 어미 새가 곧 둥지로 날아든다는 신호였다.
 
어미 새 한 마리가 둥지 왼쪽 숲 속에서 별안간 나타났다. 왼발에 땅다람쥐를 움켜쥔 어미가 둥지로 날아들어 먹이를 건넸다. 새끼에게 먹이를 건넨 어미는 바로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흰죽지-4-1.jpg » 왼발에 사냥한 먹이를 움켜 쥔 어미 새가 둥지로 날아들고 있다.

흰죽지-4-2-어미새-2.jpg » 위장막에서 가장 기다렸던 장면이었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아쉬움이 많았다.

흰죽지-4-3-2.jpg » 먹이를 건넨 어미 새가 곧바로 둥지를 나가고 있다. 새끼와 깃털색이 차이가 많이 난다.
 
새벽 2시에 산을 올랐으니 7시간30분 만이었다. 맹금류는 어린 새가 어느 정도 자라면 먹이를 건네 줄 때만 잠시 둥지로 날아오는데 와서도 먹이만 건네줄 뿐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한다.  

흰죽지-5-2 둥지 너머엔-2.jpg » 둥지가 있던 산 바로 너머에서 아이들이 멱을 감으며 알타이의 짧은 여름을 즐기고 있다.
 
흰죽지수리는 자생지에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분류해 보호를 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국제적 거래가 제한되고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알타이(러시아)/ 글·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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