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사고, 작업자 책임 타령은 책임 떠넘기기

이동수 2016. 0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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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가 다루는 물질 위험성 모르거나 장시간 노동 등 작업여건 나쁜 경우 많아

사고 예방하려면 위험정보 알리는 실효성 있는 교육 절실, 영세 사업장 상황 심각


04669309_R_0.jpg » 정부 통계는 화학물질 누출사고의 3분의 2는 작업자 과실 때문에 발생한다고 돼 있다. 과연 그럴까. 과실 뒤편의 제도적인 문제는 없을까. 사진은 한국중부발전 서울화력발전소에서 2013년 열린 염산누출 사고 대응 훈련 모습. 사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근래 들어 화학물질 사고가 자주 언론의 주목을 끈다. 국내에서는 2012년 구미 불산사고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염소, 염산, 불산, 황산, 황화수소, 페놀수지 등 다양한 화학물질의 누출 혹은 폭발 사고로 큰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사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고의 예방도 중요하고, 사고 후 장단기적인 피해의 최소화를 위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이미 일어난 사고의 주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사고의 원인과 관련하여 2016년 삼성과 엘지 등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메탄올 중독사고1)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사고에서 대기업 휴대전화 부품회사에서 파견근로자로 일하던 작업자들이 부품의 절삭과 검사 과정에서 사용된 메탄올로 인해 의식불명, 중추신경계장애와 실명위기를 겪었다. 


이는 휘발성이 큰 메탄올을 부적절하게 취급하여 작업장이 고농도로 오염됐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이다. 그러나 작업자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화학물질이 메탄올인지도 몰랐으며 메탄올이 어떤 건강상의 악영향을 끼치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작업장 사고는 그간 사업장 밖으로까지 확대된 화학물질 누출사고와 발생 원인에서 공통점이 있다. 즉 작업자가 자신이 다루는 물질의 특성과 위험성에 대해 기초적인 정보조차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루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마땅한 작업자가 그러지 못했으니 이는 언뜻 작업자의 책임처럼 보인다.


05201051_R_0.jpg » 2014년 12월 10일 대구 달서구의 한 공장에서 화학물질인 차아염소산염이 누출돼 근로자 16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방당국이 구미화학센터의 장비와 인력을 출동시켜 현장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화학안전정보공유시스템을 보면, 2008~2015년 사이에 접수된 총 436건의 사고의 원인을 작업자 부주의 177건, 시설관리미흡 155건, 운송차량사고 113건, 기타 2건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자료의 정확성이나 적절성을 그대로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에 따르면 작업자 부주의와 운송차량사고를 합친 290건의 사고가 일종의 현장 작업자 과실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 된다. 즉 사고의 2/3가 작업자 개인의 과실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또한 환경부의 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원인의 88%를 작업자의 책임으로 파악하고 있다.2)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작업자 개인의 과실로 파악하는 것이 과연 정확한 진단일까? 작업자의 과실이 없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니 겉으로야 그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왜 작업자가 책임을 다 하지 못했을까를 묻는 일이 진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더 중요하다.

 

만일 사고의 대부분이 작업자 개인의 책임이라면 주의 깊은 작업태도의 강조 등에 대한 대책만으로도 사고가 대폭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대책은 설비의 개선이나 관련제도를 고치는 등 다른 대책에 비해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우리는 큰 돈 들이지 않고 비교적 쉽게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상황에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충격을 주었던 구미 불산사고 이후에도 상주의 웅진폴리실리콘공장 염산 누출사고, 화성의 삼성전자 불산용액 누출사고, 청주 에스케이 하이닉스의 염소가스 누출사고, 오창산단 내 유독가스 누출사고, 울산 삼성정밀화학의 염소가스 누출사고, 파주 엘지 디스플레이의 질소 누출사고 등 크고 작은 누출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실제로 갈수록 사고빈도가 늘어가고 있다. 


05224644_R_0.jpg » 2015년 1월12일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질소 가스가 누출돼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은 LG디스플레이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로 공장에서 설비를 점검하던 중 가스가 누출돼 변을 당했다. 사진은 질소 가스 누출 사고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대부분의 사고가 역시 작업자의 부주의와 과실 때문인 것으로 결론이 났고 작업자에 대한 관리감독의 개선책에 대한 제안도 봇물을 이뤘다. 그런데도 사고가 줄기는 커녕 사고횟수와 빈도가 늘고 있다면 화학물질사고가 단순히 작업자 개인의 과실에 의한 것이라는 진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어 겉보기는 작업자의 과실이라 하더라도 장시간의 노동에 따른 피로와 집중력 저하 등으로 자칫 실수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라면 그 조건을 개선해야지 사람을 바꾸거나 정신 똑바로 차려 일하라고 훈육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화학물질 운송차량사고 이후 대처가 늦어지게 되는 원인으로 메탄올 중독사건 때처럼 운전기사가 자신이 운송하는 물질과 그 위험성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종종 지목된다. 이에 대해 흔히 운전기사의 무지를 탓하는 소리는 있어도 사업자가 운전기사가 위험물 수송의 준비가 됐는지를 제대로 확인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을 탓하는 목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사실 화학사고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는 있다. 안전을 위한 제반 장비와 시설 규정도 있으며, 사고가 나면 초동조치, 현장대응, 사후관리 등 단계적 대책과 각 단계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도 명시해 놓았다. 더불어 각자 역할 수행을 위해 필요한 지침과 매뉴얼 등도 어찌 보면 너무 여러 가지라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대응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책상 위에서만 머문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러저러한 화학물질 사고 대응책을 마련해도 작업 현장의 사정은 현재의 제도나 대책을 잘 이행할 수 있는 형편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1차적으로 필요한 위험성에 대한 정보와 교육이 제공되고 있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사업주는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독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확보해서 근로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즉,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작업장 내 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라벨의 부착,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위해설비/공정 표지판, 경고표지 부착, 안전보건교육 등을 제공해야 한다. 아마 이 제도만 좀 더 충실히 이행돼도 사고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있음에도 현장 작업자들은 자신이 다루는 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알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작업장에서는 사업경고표지와 같은 정보를 제대로 부착하지 않거나 부착했다 하더라도 작업자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한 목적보다 법이나 제도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식적이고 소극적으로 작업장의 위험정보를 알리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영세한 사업장에서는 원청 사업자로부터 위험성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전달 받지 못하며 작업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기 쉬울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작업장에 임시로 배치되어 일하다 보니 단순히 그때그때 필요한 작업요령만 배우게 되기 쉽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사업주들도 교육의 필요성이나 실효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사업주 스스로도 위험성을 몰라서 안전교육 기회 자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러니 안전을 위한 지침을 따르기 어렵고,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도 않거나 갖추어 놓아도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렇듯 작업자의 과실이 사실은 그 개인만의 과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여타 다른 사회문제에서도 그렇듯 사고의 책임을 최말단의 작업자에게 떠 넘겨 묻어버리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적절한 사고예방과 관리체계가 있는지, 있다면 현실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여 문제의 체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동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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