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 기후변화로부터 산벚나무 구한다

조홍섭 2016. 04. 26
조회수 45590 추천수 1
버찌 먹으며 산 위로 올라 산벚나무 자생지 연 300m 상승 효과
온대지방 높은 산에만 적용, 가을 결실 나무엔 역효과 한계도

사본 -19-Formosan_Black_Bear.jpg » 버찌는 반달가슴곰이 가장 즐겨먹는 열매의 하나다. 산 위로 오르며 버찌를 따먹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산벚나무를 기후변화로부터 지켜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Formosan,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구의 기온 상승에 맞서 식물이 살아남는 전략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날씨가 서늘한 고위도 지역으로 삶터를 옮기거나 마찬가지 효과가 있는 높은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위도를 높이는 것보다 고도를 높이는 방법이 100~1000배 쉽다. 산 위로 100m 올라갈 때마다 기온은 0.65도 낮아지지만 북쪽으로 이동해 그런 효과를 보려면 엄청난 거리를 가야 한다. 게다가 그 사이에 숲이 단절되거나 강이 가로막으면 북상은 좌절된다.
 
문제는 식물이 산 위로 오르는 속도보다 기후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다는 것이다. 식물에 생사가 걸린 문제다. 그런데 반달가슴곰이 그 해결사로 떠올랐다. 온대지방의 봄과 여름에 열매를 맺는 식물에만 해당하고, 반달곰이 충분히 많다는 조건이 달려있지만 말이다.

반달곰.jpg » 반달가슴곰과 산벚나무 씨앗 확산 방향을 보여주는 도표. 그림=나오에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2016. 

나오에 쇼지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연구원 등 일본 연구자들은 2010년부터 3년 동안 반달가슴곰의 배설물에 든 씨앗을 조사했다. 반달가슴곰은 씨앗을 퍼뜨리는 ‘숲의 농부’로 알려져 있다(■ 관련 기사: 변비 일으키는 열매, 씨앗 멀리 보내려는 전략).
 
그 결과 반달곰은 산벚나무의 씨앗을 수백m 높은 고도로 이동시키는 경향이 한결같이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25일치에 실렸다.
 
나오에는 “이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씨앗 확산 방향이 비대칭이라는 점”이라며 “지구온난화로 식물분포가 어떻게 될지를 다룬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씨앗 확산이 제한 없이 이뤄지고 그 방향에 어떤 편향도 없을 것이란 가정 아래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식물의 이동을 결정하는 씨앗 확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장래의 식물 분포를 예측하는 것이 아주 힘들 것임을 보여준다.”라고 셀 출판사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고도에 따라 씨앗 속 산소 동위원소의 분포 비율이 일정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배설물 속 씨앗이 어느 고도에 있던 나무에서 왔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반달가슴곰의 주요 먹이인 산벚나무 씨앗이었다.

TOSHIO KATSUKI.jpg » 반달곰의 주요 먹이인 산벚나무. 사진=TOSHIO KATSUKI
 
분석 결과 반달곰은 산벚나무 씨앗을 평균 307m 높은 고도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값은 800m였고 가장 흔한 이동 고도는 300~400m였다. 
 
이 정도의 고도 상승은 기온이 2도가량 하강하는 효과를 산벚나무에 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산벚나무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반달곰이 도와주는 셈이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이유는 점점 높은 고도의 산벚나무가 열매를 열고 반달곰이 이를 따라 산을 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버찌가 반달곰 뱃속에 머무는 시간은 45시간 정도인데 그 사이에 산벚나무의 개화가 300m 상승할 리는 없다.
 
연구자들은 산벚나무의 개화고도 상승과 함께 반달곰이 어린 잎, 풀, 새싹, 꽃 등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요인도 작용했다고 보았다. 또 봄에 버찌가 열리면 높은 곳의 반달곰이 내려와 열매를 먹은 뒤 다시 높은 곳의 꽃과 어린 싹 등을 먹기 위해 오르는 행태도 이런 씨앗 이동에 기여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seed1.jpg » 어린 순을 먹는 지리산에 복원된 반달가슴곰.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그러나 연구자들은 반달가슴곰의 씨앗 확산이 산벚나무에서처럼 늘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논문에서 지적했다. “씨앗의 수직 확산이 식물의 (기후변화) 도피에 끼치는 효과는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 산의 높이에 따라서는 수직 확산이 단기적인 완화에 그칠 수 있고 산이 충분히 높지 않다면 사실상 덫이 될 수도 있다.”
 
온대지역에서 봄과 여름에 열매를 맺는 식물만 반달곰의 수직 확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한계다. 가을에 열매를 맺는 대부분의 식물에 대해서는 산 위에서 아래로 씨앗을 퍼뜨리는 반대 결과를 낳는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일본담비도 반달가슴곰과 비슷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정도는 훨씬 떨어졌다.
 
한편,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에 복원한 반달가슴곰의 배설물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산벚나무 열매는 가장 중요한 먹이의 하나로 나타났으며, 반달곰은 단지 씨앗을 퍼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소화과정을 거친 산벚나무 씨앗의 싹트기를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Naoe et al. Mountain-climbing bears protect cherry species from global warming through vertical seed dispersal. Current Biology, 2016 DOI: 10.1016/j.cub.2016.03.00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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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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