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까치집 철거에도 예의가 있다

김봉균 2016. 05. 12
조회수 30751 추천수 0
정전 막는 일 중요하지만, 땅바닥 떨어진 새끼들 뻔히 두고 가서야
인근 상인이 구조 신고, 야생동물과 공존은 생명 존중에서 시작돼

local_news_f_1168948268.jpg » 정전사고를 막기 위한 한전의 까치 둥지 철거 작업 모습. 사진=한국전력공사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여름은 정신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구조되는 동물들과 어미를 잃은 새끼 동물이 끊임없이 구조되기 때문입니다.
 
새끼 동물이 들어오는 경우는 정말로 어미를 잃었거나, 어미를 잃은 줄로 잘못 판단하고 구조하는 ‘납치’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10일 구조된 까치는 조금 다른 사례였습니다.

DSC04360.JPG » 새끼 까치들이 안타까운 사고를 겪고 구조되었다.
 
처음 신고전화를 받았을 때 신고자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된 상태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앞에 있는 전봇대에서 까치 새끼들이 추락했으니 구조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둥지에서 새끼 새가 추락하는 것은 종종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이기에 추락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다시 둥지에 올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 이유를 들은 순간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에 사로잡혔습니다.

00842087_R_0.JPG » 까치 둥지 철거는 둥지를 짓기 시작하는 늦겨울과 이른봄에 주로 이뤄지지만 정전 위험이 예상될 때는 어느 때라도 벌어진다. 사진은 지하철 철탑에서의 둥지 철거 작업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봇대에 나뭇가지 등을 엮어 둥지를 만드는 까치는 안타깝지만 종종 정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둥지 재료가 고압전선과 접촉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전력공사에서는 까치의 둥지를 철거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은 둥지를 짓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산란기 이전에 집중되지만 정전 등의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시기에 국한하지 않고 철거작업을 벌입니다.

신고를 받은 까치의 둥지는 이와 같은 이유로 ‘철거’되었습니다. 아래에서 불쑥 솟아오른 장대가 둥지를 부수기 시작했고, 새끼들이 다 자랄 때까지 튼튼하게 보듬어줄 것 같던 둥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끼들이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이었죠.
 
DSC04345.JPG » 부서져 버린 둥지의 모습.
 
DSC04347.JPG » 떨어진 둥지의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습.
 
모두 5마리의 어린 까치가 둥지와 함께 추락했습니다. 한 마리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머지 세 마리는 비교적 건강하지만 앞으로의 삶이 불투명해졌지요.
 
DSC04341.JPG » 떨어진 5마리의 새끼 까치. 이미 한 마리는 추락 과정에서 죽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 누구의 탓일까요? 전봇대 위에 둥지를 튼 까치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새끼들이 자라고 있는 둥지를 철거한 한전 탓일까요?
 
아마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을 겁니다. 까치도, 한전도 마찬가지겠지요. 어쩌면 모두가 피해자일지 모릅니다.
 
새끼를 안전하게 기를 수 있을 거라 판단해 전봇대에 둥지를 튼 까치는 자신들의 선택이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리 만무하지요.
 
그렇다면 한전은 어떠할까요. 그들도 전봇대 위의 둥지를 치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만약 이 둥지를 치우지 않아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이의 경제적, 정신적 피해는 누가 보상하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그들의 행동은 잠재적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피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그들이 할 일을 했습니다.
 
결국 서로에게 상처와 수고로움을 남기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이기에 더욱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둥지가 파괴된 뒤 전선으로 피한 새끼 동영상

 

신고자이자 당시 상황을 수습했던 목격자 이야기를 들어 보면, 둥지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새끼 까치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오가는 인도와 자동차가 달리는 차도의 경계선에 떨어진 새끼들을 직원이 확인했음에도 본체만체하고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과정을 지켜보던 일반인이 새끼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저희에게 신고해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죠. 철거 이후의 수습과 미안함이라는 마음의 짐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고 자리를 떠난 셈입니다.
 
둥지를 철거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새끼들을 안전한 위치에 이동시킨다든지,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기관에 연락이라도 해주었다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그들에겐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어서 구조에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무덤덤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꽤 무책임해 보였고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 역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DSC04358.JPG » 철거된 둥지의 바로 옆 전봇대에서 하염없이 둥지와 새끼들을 바라보던 부모 까치의 모습.
 
한전은 최근 조류로 인한 정전 예방 전략의 이름을 ‘조류 공존, 철거, 구제’ 전략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 그들의 전략에는 철거와 구제만 있지 조류 공존의 마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공존의 의미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될까요. 책임감과 생명 존중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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