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구명선 이야기

안재정 2016.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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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환경읽기 6. <라이프 오브 파이> 
'더들리 스티븐 재판', 타이타닉호 침몰, 우주선 지구호 등 3가지 구조선 들여다 보기
인류는 당면한 기후변화, 불평등, 인구문제 등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05434728_R_0.jpg »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이 명화는 영국에서 벌어진 네 명의 선원이 표류한 사건을 소재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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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는 한 작가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인도인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인도인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 영화 속에서 파이로 불리는 인물이다. 
 
본명인 피신이 ‘소변을 보는’이라는 뜻의 피싱(pissing)으로 발음되면서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자 피난처로 찾은 이름이다. 파이는 골진 함석지붕을 인 오두막처럼 생긴 그리스어 알파벳(π)이자, 과학자들이 우주를 이해하는 데 사용한 신비로운 숫자이며, 원주율 즉 원주의 길이와 그 지름의 비율을 나타낸다. 
 
한때 파이는 개발되고 있는 컴퓨터의 성능을 가늠하는 잣대로 사용했을 정도로, 소수점 아래 무한대로 내려가는 비합리적인 수이다. 어떤 프랑스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파이에 대해 세계적인 기록을 세웠는데, 소수점 아래 2조 7000억 자리까지 계산한 적도 있다. 비록 데스크톱 컴퓨터로 파이를 계산한 것이지만, 그 계산을 완성하는 데 131일이 걸렸으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는 1000기가바이트 이상의 하드 드라이브 메모리를 차지했고, 그 숫자를 다운로드 하는데 만 10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 속 피신 몰리토 파텔(이하 파이)은 왜 파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될까? 이는 어쩌면 무한대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러한 확장성이 리처드 파커 같은 또 다른 내면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미지_파이01.jpg » <라이프 오브 파이>의 포스터.
 
Life & Story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은 얀 마텔(Yann Martel)이 2001년 출간한 소설 <‘파이 이야기>이다.마텔은 이 소설로 2001년 맨 부커 소설상을 필두로 2003년 남아프리카 부케상, 2001~2003년 아시아·태평양 아메리칸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텔은 1963년 6월25일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때 외교관으로 스페인에 부임해 있었다. 그 후 마텔은 부모를 따라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포트 호프에 있는 기숙학교를 거쳐 토론토 대학교를 졸업 후 인도, 터키, 이란 등지를 여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대륙과 인종 구성의 배경이 된다. 

이 소설은 커다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영화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이야기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 폰디체리 지역에서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던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원 사업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한다. 그리고 일본 국적의 배 침춘호를 타고 캐나다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 
 
배는 침몰하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승객들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겨우 구명선을 타고 살아남은 생명은 파이,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파이의 유년 시절 폰디체리에서의 추억과 함께, 파이가 네 동물과 표류한 227일간의 과정을 그린다. 
 
또 다른 이야기는 파이가 겪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사건이다. 진실 혹은 거짓일 수 있는 이 이야기에서 하이에나는 주방장, 오랑우탄은 파이의 엄마, 얼룩말은 행복한 불교신자 선원, 그리고 리처드 파커는 파이가 된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와 관객들에게 반전과 고민을 선사해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는 파이가 보험 조사관에서 들려주는 장면으로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이미지_파이02.jpg » 영화 속 파이와 함께 표류하게 된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 속 주요 내용은 살아남은 파이와 네 동물의 표류기이다. 표류 상황에서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먹고, 파이의 목숨마저 노리는 순간 리처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잡아먹는다. 
 
그 후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죽이려 하지만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든 호랑이를 조련하며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빈사 직전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미어캣이 가득한 섬에 도착한다. 
 
이 섬은 낮에는 먹을 것도 있고 살기 좋으나, 밤이 되면 호수가 산성화되어 모든 것이 녹아버리는 식인섬이다. 이 섬에서 빠져나와 한참 더 표류하던 파이는 마침내 멕시코 해변에 닿게 되고, 리처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림 속으로 떠난다. 

이미지_파이03.jpg » 파이의 “이리 와! 덤벼, 덤비란 말이야!”라는 대사가 끝난 직후 천막 속에서 리처드 파커가 달려들어 하이에나를 죽인다. 이는 파이가 리처드 파커의 본성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소설은 정확히 100장으로 끝나며, 숫자 강박이 있던 파텔이 파이(π)의 소수점 이하 227번째가 4로 끝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네 명을 등장시킨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 물론 파이까지 합치면 다섯 명이지만,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다른 내면이 있는 동일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 명으로 생각하면 꿈보다 해몽이 좋을 수 있다.
 
세 가지 구명선 이야기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해 일정 부분 이상 검색해 본 독자라면 잘 알 것이다.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복선과 해석을 담고 있는지. 
 
하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요소를 일일이 환경적으로 해석하려는 오만을 보이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능력도 안 된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이가 타고 있던 구명선에서 일어난 고민의 지점들을 환경윤리적 측면에서 세 가지 구명선의 사례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첫 번째 구명선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모티브가 되었던 ‘더들리와 스티븐 재판’의 사례이다. 1884년 여름, 영국 선원 네 명이 작은 구명선에 올라탄 채 육지에서 1600㎞ 떨어진 남대서양을 표류했다. 
 
이들이 타고 있던 미뇨넷 호는 폭풍에 떠내려갔고, 구명선에는 순무 통조림 캔 두 개뿐, 마실 물도 없었다. 토머스 더들리가 선장이었고, 에드윈 스티븐슨은 일등 항해사, 에드먼드 브룩스는 일반 선원이었다. 신문은 이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었다고 전했다. 네 번째 승무원은 잡무를 보던 열일곱 살 남자아이 리처드 파커였다. 고아인 파커가 긴 항해를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1)
  
표류 사흘째까지 그들은 순무를 정해 놓은 양만큼 조금씩 먹었고, 나흘째 되던 날은 바다거북을 한 마리 잡아 며칠을 더 연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은 줄어들었고, 선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바닷물을 마신 파커는 병이 난다. 
 
이렇게 고통스런 하루하루가 가고 19일째 되던 날, 선장 더들리는 제비뽑기를 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사람을 정하자고 했지만 결국 파커가 희생양이 되어 세 남자는 아이의 살과 피로 연명한다. 그리고 24일째 되던 날 이들은 구조되었고 이후 재판에 회부된다.
 
이미지_파이04.jpg » 미뇨넷호 사건을 실은 당시 런던 신문.
  
재판의 결과는 어땠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결말을 상상하고 있는지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래 글을 읽어 주시길 바란다.
   
1884년 11월, 배심원들은 더들리와 스티븐스에게 동정적이었기 때문에 무죄를 결정했다. 하지만 판사는 이를 무효화시키고 특별법을 이용해 더들리와 스티븐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고 교수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선원들의 관습에 제재를 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정부는 수감 6개월 만에 두 사람을 석방했다. 아래는 당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더들리가 남긴 말이다.
 
이것으로 선원들의 관습을 금지한 줄 알겠지만 진실을 감추게 됐을 뿐이다. 조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관습을 따르되 구조된 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 증언을 했던 브룩스는 떠돌이 서커스단에 스카우트됐다. 서커스단에서 브룩스는 식인마로 분장하고 관객들 앞에서 날고기를 씹어 먹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결국 브룩스는 궁핍하게 살다 죽었다. 
 
불행하긴 스티븐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의 충격으로 다시는 배에 타지 못했고 브룩스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더들리는 호주에서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페스트로 사망한 최초의 호주인이 됐다.2)
 
다수를 위한 선택은 언제나 정의로운가?
 
두 번째 구명선은 너무나도 유명한 타이타닉 호 사례이다.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에서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과 승무원, 승객 2208명 이상이 승선하였다. 그리고 북대서양 한복판에서 빙산과 충돌해 처녀 출항에 침몰한 비운의 여객선이 되었다. 
 
타이타닉 호는 2시간 40분 만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되는데, 일부 사람들은 구명정에 타려고 여자 옷까지 입고 변장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품위를 지켰으며 많은 이들은 영웅적이기까지 하였다. 
 
선장은 선교를 지켰고, 악단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으며, 마르코니 무선통신 기사들은 끝까지 계속해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승객들은 대체로 당시 에드워드 국왕 시대의 사회적 신분에 걸맞게 행동했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당시 처음에는 사람들이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하도 거대해서 별명이 불침선(The Unsinkable)이었으며, “이 배는 하느님도 침몰시킬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처음 승객 대부분은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구명선에 탈 생각조차 안 했으며, 나무로 만든 조그마한 보트보다는 260m의 강철로 만들어진 여객선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배에서 가장 부자였던 존 제이컵 아스터조차 아내에게 “여기가 저 조그마한 보트보다 안전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0시15분 첫 조난 신호를 발신한 후 30분 후에 첫 구명선이 28명을 태우고(정원은 65명) 처음으로 내렸고, 이후 구명선이 30명 전후의 인원을 태우고 배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구명선은 좌현과 우현 양쪽에서 하나둘씩 내려지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내려졌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배가 서서히 기울어지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대다수의 승객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황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탈출이 시작되었을 때도, 수많은 3등실 승객들은 여전히 배를 헤매고 있었다. 여러 구역이 철창으로 막혀 제한되어 있었고 배가 미로처럼 복잡했기 때문에 탈출에 지장을 빚었으며 일부 승무원들은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승객들의 통행을 제한하기까지 했다. 
 
거기에다가 3등실 승객들 중에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승객들도 많았다. 이 상황에서 여러 3등실 승객들은 그냥 탈출 시도를 포기한 채 자신들의 숙실이나 식당, 복도 등에 남아 지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수백 명의 승객이 식당에 남아 묵묵하게 탈출지시를 기다리거나 같이 모여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우리나라의 세월호 상황과 오버랩된다. 
 
2시5분 마지막 구명선이 배에서 내려진 후 배는 침몰을 했고, 남아있던 1500여 명의 사람은 차가운 북대서양 한복판에 버려졌다. 
 
바다에는 20척 이상의 구명선이 있었지만 결국 14번 보트의 5등 항해사 해롤드 로우가 이끄는 구명선 한 척만이 구조에 나섰다. 영하 2도의 차가운 바다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저체온증과 심장마비로 30분 이내에 사망했으며, 단 네 명만이 구조되었다.3)
 
 
영원이라는 믿음은 사라질 수 있고, 왜 그 공백은 3등실 승객들(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더 많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가?

Stöwer_Titanic (1).jpg » 스퇴버가 1912년 그린 타이타닉호 침몰의 순간 그림.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세 번째 구명선은 우주선 지구호.4) 그 동안 지구를 우주선에 비유한 사례는 종종 있어 왔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름이 1만 2800㎞에 달하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우주선이다. 이 지구호는 공간적으로 닫힌계 공간으로 볼 수 있는데,5) 닫힌계의 문제는 모든 것을 그 내부의 역량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평소 학생들에게 우주선 지구호를 비교할 때 많이 드는 사례가 아폴로 13호이다. 왜냐하면 아폴로 13호의 사례는 지구와 비교할 수 있는 닫힌계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동일 주체인 인간이 극적으로 해결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폴로 13호는 지구와 달 사이 32만 1860㎞ 지점에서 산소탱크가 폭발하는 사고를 당했다. 지구의 둘레가 3만 9960㎞인 것을 고려하면 대략 10배 정도 되는 거리이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멀다는 점이 이번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약간 놀라운 사실이다. 
 
급한대로 조종사들은 달 착륙선으로 옮겨 타고 지구로의 귀환을 시도했다. 어떤 점에서 이 달 착륙선이 구명선인 셈이다. 
 
처음 이들에게 닥친 문제는 조종사들이 호흡할 때마다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여과하기 곤란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이산화탄소를 여과하는 장비에 사용되는 수산화리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휴스턴 관제센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엔지니어들을 소집한 뒤 그 시점에서 아폴로 13호에 있던 장비들과 동일한 장비를 던져준다. 그리고 그 장비만으로 이산화탄소 여과 장비를 새로 설계하라고 명령한다. 
 
엔지니어들은 이 과제를 해결했고, 아폴로 13호 조종사들은 휴스턴 관제센터의 지시에 따라 ‘메일박스’라고 불린 이산화탄소 여과장비를 만들어낸다.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영화 <아폴로 13호>에서도 메일박스를 만들어낸 후 득의양양해 하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이 잘 묘사가 되어 있으며, 최근 개봉한 ‘마션’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익숙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귀환인데, 아폴로 13호는 자력으로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구로 바로 귀환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달을 한 바퀴 선회한 후 달의 인력을 이용해서 귀환하기로 한다. 1970년 반도체 컴퓨터가 처음 태동하기 시작한 시점을 고려한다면 이렇게 궤도를 수정했다는 점은 굉장한 일이다. 
 
마지막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는 전력이 부족해서 대기권 진입각도를 수동으로 조종하는 어려움을 겼었으나 잘 훈련된 조종사들이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다. 2011년엔 아폴로 13호의 기체 점검표가 38만 8375달러(4억 4000만원에 해당)에 낙찰되기도 했다. 소책자 형태의 점검표에는 아폴로 13호 선장인 제임스 러벨이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산출한 대기권 진입 각도 등이 손 글씨로 적혀 있는데, 이 점검표는 우주탐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실패’를 뒷받침하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선 지구호의 승무원들은 아폴로 13호처럼 지금에 처한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800px-Apollo13_apparatus_Astronaut John L. Swigert, at right, with the mailbox.jpg » 아폴로 우주인 존 스위거트가 귀환 뒤 자신이 수리한 이산화탄소 여과장치인 '메일 박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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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지구호는 긴박하지만 해결 주체들이 심각성을 못 느끼는 인구 문제, 기후변화로 대변되는 환경 문제, 빈부와 소비의 격차 문제, 평화와 평등의 파괴, 발전에 대한 다른 생각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주선 지구호의 지속가능성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 먼저 이러한 상황의 지구에서 우리는 아폴로 13호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아니”이다. 물론 아폴로 13호도 인류가 이룩한 위기 극복의 사례인 것은 분명하나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기체 점검표도 이를 통제하는 휴스턴 관제센터도 아직 없다. 어찌 보면 아폴로 13호 구조는 위기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훈련받은 조종사들의 임무 수행 능력 그리고 이를 통제해 줄 수 있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위 필자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두 번째 질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46억년 동안 존재했고, 앞으로 40억년 이상을 버텨야 하는 우주선 지구호에 문제가 생겼고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타이타닉 호에서 일어났던 사례를 통해 필자의 생각을 전하면, 초기의 인류들은 아마 이러한 예고를 무시할 것이다. 인류는 현재 역사상 가장 고도로 발달하여 있는 침몰할 수 없는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의 차디찬 구명선에 몸을 맡기는 무모한 선택보다 안정적인 타이타닉 호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징후는 앞으로 있을 침몰에 대해 시그널을 주고 있으며, 어느 시점부터는 현실적인 변화로 그 악마적 속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류가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바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과 기술로 약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급작스런 붕괴를 맞이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장면은 물론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에 비만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대략 10억 명 정도인데, 빈곤으로 시달리는 사람도 그와 비슷한 숫자이다. 현재의 인류는 문제의 해결책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빠진 1500명의 사람이 서서히 가라앉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구명선의 원리’이다.6) 우리가 현재 이러한 구명선의 원리가 적용되는 우주선 지구호에 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마지막 질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과연 ‘더들리와 스티븐 재판’에서처럼 다수를 위한 선택에 대해 묵과할 것인가? 어쩌면 다수라는 표현은 수적인 표현이 아닌 지구를 지배하는 기득권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지구상의 인구로 보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제3세계 사람들인데, 위기 상황에서 의사결정자는 기득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죽여 세 사람을 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누군가를 죽여서 먹지 않으면 네 사람 모두 죽었을 것이고, 그 중 죽을 사람은 부양할 가족도 없는 나약하고 병에 걸려 어차피 죽을 파커가 가장 적절하다는 판단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정의란 이름으로 행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들 교수는 이 재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윤리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첫 번째는 전체적으로 볼 때, 파커를 죽여서 얻은 이익이 희생보다 정말로 더 컸는가? 
 
살아난 사람의 숫자나 생존자와 가족의 기쁨을 고려한다 해도, 그러한 죽음을 허용한다면 사회 전체로 보아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살인에 반대하는 기준이 약화하거나, 법을 멋대로 해석하려는 성향이 늘어나거나, 다른 선장들이 배에서 일할 사환을 구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 지금의 국제협약에 참여하거나 지키는 선진국들의 행태로 대입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지_파이07.jpg » 1990년 밸런타인데이에 보이져 1호가 태양계 경계에서 지구를 바라본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진. 지구의 존재는 우주에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다.
 
두 번째는 그 이익이 희생이라는 비용보다 더 크다 해도, 무방비 상태의 남자아이를 죽여서 먹는 행위는 사회의 비용이나 이익을 계산하기에 앞서 용납될 수 없다는 정서가 있지 않은가? 상대의 나약함을 빌미로 본인의 동의도 없이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해도 잘못이란 것이다. 
 
이러한 예는 현대 세계에서는 너무도 많다.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 공단의 라나플라자가 붕괴해 의류산업 노동자 1127명이 목숨을 잃었던 참사가 벌어졌다. 
 
상업용 건물에 불법으로 의류 제조 공장이 들어서면서 건물이 무거운 기계들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자라, 유니클로 등 대표적인 SPA(제조, 유통 일괄형) 브랜드 생산기지이다. 누군가의 예쁜 옷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피눈물로 그 옷을 만들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해석한 윤광은은 침춘호가 침몰하면서 하나의 구명보트(하나의 세계 혹은 공동체)에 프랑스인(제국주의 지배자)과 동양인과 인도인(제3세계 식민지)을 동승시켰다고 보았다. 하이에나가 얼룩말(동아시아)을 죽이고, 파이의 엄마(인도)의 목숨을 뺏은 것은, 제국주의 식민시대의 은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7)
 
“You must be thirsty”
 
다시 우리의 출발지인 <라이프 오브 파이>로 돌아와 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라이프 오브 파이>로 보면 어떤 배역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영화 속 주인공인 파이 겸 리처드 파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수 있다. 우리 중 일부는 현실을 직시하며 이기적 합리성을 행사하는 프랑스 요리사인 하이에나이며, 부상당한 일본인 불교 신자인 얼룩말이고, 얼룩말을 지킬 의지는 있지만 나약함으로 희생되는 엄마인 오랑우탄일 뿐이다.

이미지_파이08.jpg » “You must be thirsty” 성수를 마시러 온 파이에게 목사가 건넨 말이다. 이는 리처드 파커의 본명이 “thirsty”임을 고려할 때,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동일인임을 암시한다.

불의에 저항할 일말의 용기를 보인 파이로 본인을 투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자위를 선물해줄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파이도 이후 끊임없이 리처드 파커와의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 것처럼 고뇌의 시간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자연은 도덕 이전에 존재했으며, 파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 그러한 그 무엇인가의 존재일 뿐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주는 교훈 중 하나는 삶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소한 교훈이나 도덕, 가치나 율법 따위보다 항상 상위에 있다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마지막으로 다소 말장난 같지만 고뇌에 빠진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를 포함한 무수히 많은 파이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에 답하는 법을 소개하며 마치고자 한다. 이는 도형이나 컴퓨터 등 복잡한 연산을 거치지 않고 확률을 이용해서 구하는 방법인데, 몬테카를로 방법8)이라고 한다. 아래 그림처럼 정사각형과 내접원이 그려진 종이 위에 종이 눈송이를 골고루 충분히 뿌려지도록 적당히 높은 곳에서 뿌린다.

이미지_파이09-1.jpg
 
그럼 위의 그림처럼 정사각형에 올라가 있고 원 안에도 있을 것이다. 종이 눈송이를 많이 떨어뜨릴수록 값이 정확해 진다. 만약 원 위에 떨어진 종이 눈송이가 79장, 정사각형 위에 떨어진 종이 눈송이가 100장이라면 값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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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_파이11.jpg » 밤이 되면 거대한 식인 섬으로 변해 버리는 섬은 전체적으로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파이와 리처드 파커 사이에서 그저 매 순간 일어나는 사건들의 확률 속에서 ‘신의 구원’이라는 식인섬을 찾아 면죄부를 받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어찌 보면 세상은 그저 확률의 산물일 뿐이다.
 
안재정/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장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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