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1천배, 초파리 거대 정자의 비밀
암컷이 거대 정자보관기관 진화시켜 수컷의 ‘정자 전쟁’ 유발
거대 정자는 극단적 장식, 큰 깃털 공작처럼 유전적 우월 과시

대부분의 동물 수컷은 난자보다 작은 정자를 아주 많이 만든다. 복권을 많이 사면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수정에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람이 한 번 사정에 방출하는 정자 세포 수는 수억 개에 이르지만 정자 하나의 길이는 0.05㎜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큰 정자를 가진 동물이 있다. 초파리의 한 종(Drosophila bifurca)은 수컷의 몸길이가 3㎜가량이지만 정자는 그 20배인 6㎝에 가깝다.

이런 거대한 정자를 만들려면 에너지가 많이 들고 만드는 세포 수도 적어 수정에 유리할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생식방법이 진화한 이유는 수수께끼였다.
스테판 뤼폴드 스위스 취리히대 진화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네이처> 26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한 가지 답을 내놨다. 사슴의 뿔이나 공작의 꼬리처럼 이 초파리의 거대정자는 성 선택의 결과란 것이다. 큰 정자를 만드는 수컷이 암컷으로부터 선택받는다는 얘기다.
주도권을 쥔 쪽은 암컷이다. 이 초파리 암컷은 수컷 못지않게 특별하다. 길이가 무려 8㎝에 이르는 거대한 정자 저장기관을 지니고 있다. 연구자들은 암컷 생식관이 정자를 받아들이고 저장해 생식에 쓰는 방식이 거대 정자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자들은 먼저 암컷의 정자 저장 기관 길이와 수컷의 정자 길이 사이에 유전적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저장 기관이 길어지면서 정자의 길이도 길어졌다.
정자가 커지면 수컷은 많은 수를 만들 수 없게 된다. 난자의 수정을 위해 암컷은 더 자주 짝짓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암컷의 생식관 속에서 정자끼리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진다. 뤼폴드는 “정자 경쟁에서 긴 정자는 짧은 정자를 생식관 안에서 잘 밀어내고 생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결국 성 선택은 긴 정자 쪽으로 기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큰 정자를 생산하는 초파리 수컷은 작은 정자를 만드는 수컷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할까. 정자가 커지면서 만드는데 많은 에너지가 들고, 따라서 그런 정자를 비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작고 허약한 수컷은 몇 번의 짝짓기로 정자의 재고량이 동나는데 견줘 크고 건강한 수컷은 그런 부담을 너끈히 질 수 있다. 마치 공작 수컷이 포식자로부터 달아나는데 불리한 큰 꼬리를 유지하는 ‘능력’을 암컷에 과시하는 것과 같다.
뤼폴드는 “(공작 같은) 다른 동물 수컷의 여러 가지 과장된 성적 형질 가운데서도 초파리의 정자는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초파리 암컷은 다른 동물의 암컷처럼 현란한 장식과 춤 등을 복잡하게 인지할 필요도 없이 단지 더 긴 정자 보관 기관이라는 해부구조를 통해 성 선택을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정보:
Stefan Luepold et. al., How sexual selection can drive the evolution of costly sperm ornamentation, Nature, Vol 533, 26 May 2016. doi:10.1038/nature1800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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