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1천배, 초파리 거대 정자의 비밀

조홍섭 2016. 05. 27
조회수 57708 추천수 0
암컷이 거대 정자보관기관 진화시켜 수컷의 ‘정자 전쟁’ 유발
거대 정자는 극단적 장식, 큰 깃털 공작처럼 유전적 우월 과시

sex1.jpg » 수컷의 정자가 자기 몸 길이의 20배에 이르는 초파리의 일종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수컷이 성선택을 위해 진화시킨 과시 장식 거윤대 가장 극단적 사례이다. 사진=뤼폴드, 취리히대  

대부분의 동물 수컷은 난자보다 작은 정자를 아주 많이 만든다. 복권을 많이 사면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수정에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람이 한 번 사정에 방출하는 정자 세포 수는 수억 개에 이르지만 정자 하나의 길이는 0.05㎜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큰 정자를 가진 동물이 있다. 초파리의 한 종(Drosophila bifurca)은 수컷의 몸길이가 3㎜가량이지만 정자는 그 20배인 6㎝에 가깝다.

sex4.jpg » 초파리의 거대 정자. 코일을 감은 공 모양이며 길이가 5.8㎝에 이른다. 사진=Romano Dallai
 
이런 거대한 정자를 만들려면 에너지가 많이 들고 만드는 세포 수도 적어 수정에 유리할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생식방법이 진화한 이유는 수수께끼였다.
 
스테판 뤼폴드 스위스 취리히대 진화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네이처> 26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한 가지 답을 내놨다. 사슴의 뿔이나 공작의 꼬리처럼 이 초파리의 거대정자는 성 선택의 결과란 것이다. 큰 정자를 만드는 수컷이 암컷으로부터 선택받는다는 얘기다.
 
주도권을 쥔 쪽은 암컷이다. 이 초파리 암컷은 수컷 못지않게 특별하다. 길이가 무려 8㎝에 이르는 거대한 정자 저장기관을 지니고 있다. 연구자들은 암컷 생식관이 정자를 받아들이고 저장해 생식에 쓰는 방식이 거대 정자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sex2_Scott Pitnick_fruit-fly-sperm-storage-tubule.jpg » 거대 정자를 지닌 초파리 암컷도 거대 정자 보관 기관을 갖고 있다. 이 저장 기관이 거대해지면서 거대 정자에 유리한 생색관 환경이 조성됐다. 사진=Scott Pitnick
 
연구자들은 먼저 암컷의 정자 저장 기관 길이와 수컷의 정자 길이 사이에 유전적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저장 기관이 길어지면서 정자의 길이도 길어졌다.
 
정자가 커지면 수컷은 많은 수를 만들 수 없게 된다. 난자의 수정을 위해 암컷은 더 자주 짝짓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암컷의 생식관 속에서 정자끼리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진다. 뤼폴드는 “정자 경쟁에서 긴 정자는 짧은 정자를 생식관 안에서 잘 밀어내고 생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결국 성 선택은 긴 정자 쪽으로 기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sex3_Stefan Lüpold, UZH.jpg » 거대 정자를 지닌 초파리가 사과 위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다. 실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사진=뤼폴드
 
그렇다면 큰 정자를 생산하는 초파리 수컷은 작은 정자를 만드는 수컷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할까. 정자가 커지면서 만드는데 많은 에너지가 들고, 따라서 그런 정자를 비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작고 허약한 수컷은 몇 번의 짝짓기로 정자의 재고량이 동나는데 견줘 크고 건강한 수컷은 그런 부담을 너끈히 질 수 있다. 마치 공작 수컷이 포식자로부터 달아나는데 불리한 큰 꼬리를 유지하는 ‘능력’을 암컷에 과시하는 것과 같다.
 
뤼폴드는 “(공작 같은) 다른 동물 수컷의 여러 가지 과장된 성적 형질 가운데서도 초파리의 정자는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초파리 암컷은 다른 동물의 암컷처럼 현란한 장식과 춤 등을 복잡하게 인지할 필요도 없이 단지 더 긴 정자 보관 기관이라는 해부구조를 통해 성 선택을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정보:
 
Stefan Luepold et. al., How sexual selection can drive the evolution of costly sperm ornamentation, Nature, Vol 533, 26 May 2016. doi:10.1038/nature1800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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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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