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호랑이와 그 사냥꾼의 적대적 교감, 최후를 나눴다

조성화 201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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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환경읽기 8. <대호> 
마지막 야생인 호랑이의 절멸은 야생의 종말 의미
동물은 이용 가치 떠나 그 자체로 존재 인정받지 못해 
  
05322609_R_0.jpg » 전남 목포 유달초등학교에서 전시중인 국내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조선(아무르)호랑이 박제. 불갑산에서 잡힌 이 맹수는 일본인 동물저술가 엔도 기미오에 의해 포획 과정이 밝혀졌다. 강재훈 기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호랑이가 죽어서도 가죽을 남겨 이로움을 주는 것처럼, 사람도 후세에 이로움이 되는 행동을 하라는 교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속담이다. 
   
하지만 필자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 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자에게는 이 속담이 다음과 같이 읽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명예) 때문에 죽는다.(영화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에게 계백 장군의 아내가 한 대사이기도 하다.)"
 
호랑이에 중요한 것은 가죽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이름이나 명예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님에도, 이 속담은 호랑이에게는 가죽이, 사람에게는 이름과 명예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이 속담을 따르기 위해 너무 많이 노력했기 때문일까? 이제 우리나라에 살았던 호랑이는 모두 가죽으로만 남아 버렸고,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명예와 이름 때문에 희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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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살고 있던 시대에 그 호랑이를 잡으려 했던 사냥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시대로, 당시 일제 군부 통치자들은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서 전리품으로 챙겨가곤 했다. 
 
그래서 많은 조선인 포수들이 반 강제적으로 호랑이를 잡는데 동원되었고 조직적인 사냥으로 인해 이 시기에 호랑이가 우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기록에 따르면 해로운 맹수를 제거한다(해수 구제)는 명분으로 1915년부터 1942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포살된 호랑이는 141마리에 이른다. 
 
tig3.jpg »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주민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자 일본인 순사가 조직한 포획대의 한국인 포수 이위우씨가 사살한 마지막 호랑이의 모습(왼쪽). 사진속 사람은 이씨의 동생 이복우씨이다. 이 호랑이의 가죽은 일본 왕실로 보내졌다. 엔도 키미오
 
공식적인 기록이 이 정도라면 이 기간에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를 잡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1943년 이후, 호랑이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모두 멸종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인 일본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일제강점기 시대 군부 통치자를 대표한다. 그는 조선에서 자신의 임기가 끝나고 일본으로 복귀해야 하는 시기가 되자, 지리산의 산군(山君)으로 불리는 호랑이 “대호”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잡으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에 따라 일본군과 조선의 포수들이 대거 동원되어 사냥에 나서게 되고, 영화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05483787_R_0.jpg » 1917년 한반도에서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을 벌였던 정호군의 기록. 정호군을 이끈 일본인 자본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왼쪽)가 호랑이를 포획한 뒤 조선인 포수 최순원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호군의 호랑이 사냥을 영화 <대호>가 많이 참고했다. 한국범보전기금 제공(출처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정호기>)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당시 이 땅에 살던 호랑이와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과거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최신의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서 멸종되어 버린 지리산 호랑이 모습을 복원해 냈고, 일제강점기 시절에 처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모습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느끼겠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지리산 호랑이의 사실감은 상당한 수준이다. 
 
대호 (이미지_02).jpg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리산 호랑이(실제 호랑이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 볼 부분은 호랑이가 아직 살아있던 시대에 인간이 호랑이를 대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조선 마지막 명포수로 등장하는 천만덕(최민식)은 일제 군부 통치자의 명령에도 지리산 호랑이를 잡는 일을 수락하지 않는다. 천만덕은 바로 그 호랑이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들을 잃었음에도 끝까지 사냥에 동참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지리산 호랑이를 잡으면 일본군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고, 아내와 아들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음에도 천만덕이 끝까지 호랑이 사냥을 주저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는 천만덕이 지리산 호랑이를 하나의 “독립적인 주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그들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그들의 방식과 영역(공간)을 존중해 주는 것처럼 천만덕은 지리산 호랑이를 그렇게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만덕은 지리산 호랑이가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고, 가급적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죽게 된 상황에서도 말이다.
 
05362312_R_0.jpg » 영화 <대호>의 한 장면. 천만덕은 지리산 호랑이 때문에 아들과 아내를 잃는다
 
그래서 극 중 천만덕과 지리산 호랑이가 대면하는 장면은 사람과 동물이 만나는 장면이 아니라, 오랜 인연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는 상황처럼 그려진다. 
 
호랑이가 일본군과 사냥꾼들에게 수 차례 공격을 받고,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 천만덕을 찾아왔을 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오랜 시간 바라보고, 뭔가 이해한다는 눈빛을 교환한 후에야 헤어진다. 
   
그리고 이 만남 이후에 천만덕은 자신의 집을 불태우고, 호랑이를 잡기 위해 나선다. 마치 호랑이가 “이제 당신이 끝내 주시오”라고 말하고, 천만덕이 “알았네”라는 답을 한 것처럼 말이다. 호랑이도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최후를 맡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05460721_R_0.jpg » 천만덕이 쏜 것은 마지막 야생이었는지 모른다. 영화 <대호>의 한 장면.
 
현대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동물을 독립된 가치를 가진 고유한 존재,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아이들은 호랑이와 같은 동물들이 동물원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동물이 살아가는 이유는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독립된 주체로 인식하고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었던 마지막 동물이 호랑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랑이를 끝으로 이제 우리는 영원히 인간 이외의 종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천만덕은 대부분의 조선인들조차 호랑이를 이용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이다.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이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럼에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고 이야기하던 마지막 사람이다. 
   
결국 천만덕은 지리산 호랑이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감독은 이러한 결말을 통해 우리나라의 상징인 호랑이가 영원히 죽었다는 것과, 동물을 그 자체로 인정해 주던 사람(생각)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조성화/ 환경과교육연구소 대표, 수원시 기후변화체험교육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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