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치 전기요금 내준다면 직장동료라도…

김희경 2016. 07. 05
조회수 11474 추천수 0

영화로 환경읽기 9. <내일을 위한 시간>

일광욕과 개 산책 이면의 진짜 유럽 노동자의 삶

소비와 돈과 성장주의 너머 세상 보는 눈 가져야


05471862_R_0.jpg » 유럽의 한 직장인 샌드라가 겪은 이틀 동안의 일을 통해 우리가 사는 '구조'를 이야기한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한 장면.


나도 그들도 돈이 필요하다


샌드라는 아팠던 모양이다힘겹게 병세를 완화하고 직장으로 복귀하려고 하지만 회사와 동료들은 그녀를 원하지 않는다


그녀가 없는 동안에도 회사는 큰 어려움 없이 돌아갔다사장은 직원들에게 샌드라의 복직과 전 직원들에 대한 1000유로(약 130만원)의 보너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제안을 한다


직원들은 투표를 통해 “1년치 가스와 전기세에 해당하는 1000유로를 선택한다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two days one night)>은 이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투표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동료 줄리엣은 샌드라와 함께 사장을 찾아가서 재투표를 요구하고사장은 이를 허락한다그때부터 주말과 휴일이틀 동안 샌드라는 열여섯 명의 동료들을 한 사람씩 찾아다니며 자신의 복직에 투표해줄 것을 호소한다


내일_01.jpg » <내일을 위한 시간>의 포스터.


감독은 벨기에의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뤼크 다르덴이다우리나라에는 2015년에 개봉됐다


1시간 35분의 러닝타임 동안 샌드라가 보낸 힘겨운 이틀의 시간을 덤덤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어떤 특별한 사건도기교도음악도 없이 카메라는 샌드라를 따라갈 뿐이다


지독하게 단순한 구성과 형식과 내용이다아마도 감독은 이런 단순함을 통해서 관객들이 주제에 집중하고유럽 노동자들의 일상을 꼼꼼히 보게 하려고 의도했는지도 모른다그들이 어디서 사는지무엇을 먹고 입는지무슨 고민을 하는지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구조인지.


그들이 사는 세상의 구조는 돈에 기초하고 있다산드라의 복직이냐 1000유로의 보너스냐의 선택은 산드라의 돈이냐 동료들의 돈이냐의 선택과 마찬가지다


산드라의 복직은 곧 산드라가 필요로 하는 돈이기 때문이다영화는 직장이 갖는 다른 의미는 모두 제거한다자아 성취나 삶의 보람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산드라의 남편은 임대주택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힘들어하는 아내를 달래 기어코 동료의 집 앞에 데려다 놓고야 만다


돈은 다른 동료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현재의 봉급은 물론 1000유로의 보너스는 포기할 수 없는 선택지다


동료가 없어지고 자신에게 추가 근무의 기회까지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휴일이지만 사람들은 휴식하지 않는다타일을 모으고축구를 가르치고마트에서 물건을 정리하고골목에서 자동차를 수리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개를 데리고 느긋하게 산책하는우리가 동경해 왔던 유럽인의 모습은 없다아등바등 삶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노동자들이 있을 뿐이다


내일_02.jpg » 그들이 사는 세상의 구조는 돈에 기초하고 있다.


90분 정도의 시간이 계속 불편하다감독은 내 돈을 위해서 동료의 돈을 희생시켜야 하는정말 피하고 싶은 무안함의 자리에 관객을 동행시킨다


동료는 산드라를 피하고가족끼리 싸우며, “사람들 좀 그만 괴롭혀라고 힐난한다산드라가 힘든 만큼 관객도 견디기 어렵다


왜 이 힘든 상황을 꼭 이겨내야 하는 거지?” 라는 질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샌드라와 남편 마누는 복직 외에 다른 선택은 고민하지 않는다


노래하는 저 새들을 부러워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엔 좀 지나쳐 보이기도 하다


포기하려는 순간한 움큼의 약까지 먹으니 말이다정말 직장은 목숨만큼의 가치를 지니는 걸까?


내일_03.jpg » 감독은 정말 피하고 싶은 무안한 자리에 관객을 동행시킨다.


안에서 보기밖에서 보기


직장이 없으면 못 살아돈이 그렇게 중요해?” 팔짱을 끼고 산드라를 비웃으려는 것이 아니다그녀를 통해서 우리가 직장과 돈이 없으면 견디기 힘든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한번 실감해 보자는 것이다그리고 그 구조가 과연 지속가능한맞는 구조인지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정치사상가로 알려진 더글러스 러미스가 썼다.1)


그는 경제성장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지만 오늘날 그것은 상식 또는 상수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그렇기 때문에 현 사회는 이것이 채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보다 어떻게” 이룰 것이냐 만을 고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일_04.jpg


구조 속에 함몰되어 있으면 라는 질문을 미루고 어떻게라는 질문에만 빠진다는 점에 동의한다사실 우리는 많은 개념과 가치들을 특별한 고민 없이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풍요로운 생활의 추구는 상식이고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이다


그 정상적인 사고’ 속에서는 소비하기 위해 벌고버는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스펙을 쌓기 위해 다시 벌어야 하는 고리에 갇히게 된다


왜 그래야 하는가그것이 옳은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정상에 더 가깝다. (누군가가 만들었든 또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든현재의 구조는 그러한 상식을 확대 재생산하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짜여 있다시야를 그 구조 안에만 두면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러미스는 빙산을 향해 달려가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일상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던 타이태닉호에 비유한다타이타닉호 외에 세상은 없다고 생각하면 현재 타이태닉호의 방식이 상식이 된다


밖으로 나와 보자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만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자어떻게 더 풍요롭게 살고 있을까라는 고민 외에 다른 고민이 생겨날 것 같다


지금과 같은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을 욕구해도 될까그 욕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빙산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타이태닉호와 같은 궤적을 밟는 것은 아닐까


구조 밖에서 보면 지구의 자원과 자체 정화의 용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것은 수 십년의 지속성만을 기대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이 보일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될 것 같다밖에서 보면 말이다.


구조에서 걸어 나오기


내일_05.jpg » 결국 샌드라는 현재의 구조 밖으로 걸어 나온다.


카메라는 버스승용차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산드라의 모습을 자주 비춘다이틀 동안 그녀는 꽤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행복해라는 마지막 대사는 그래서 더욱 대견하고 상쾌하게 들린다


만약 힘들었던 이틀이 없었다면 산드라는 그녀가 살아왔던 구조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올 수 있었을까누군가를 밀어내고 그 구조 속에 안착하지 않았을까


이제 그녀는 노래하는 저 새들처럼” 살 수 있을지 모른다정해진 레인을 따라 맹목적으로 달리던 경주마가 레인을 벗어나 초원으로 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샌드라가 구조에서 걸어 나오기까지 힘들었던 이틀고민했던 이틀삶을 돌아봤던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세상의 구조 밖에서 보는 시야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이든 숙고와 성찰의 경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그리 힘들지 않은 경험만으로도 시야를 넓힐 수 있는그것이 가능한 성찰의 역량을 갖출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 교육의 역할이 있다지식과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세상을 바라보는 바른 눈과 성찰의 힘을 키우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시민으로 키우는 것


교육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 ‘이틀 후의 샌드라가 많아지는 사회는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사회일 것이다


김희경/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경기도환경교육센터 과장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남한산성’과 공론화, 우리 미래는 우리가 결정한다‘남한산성’과 공론화, 우리 미래는 우리가 결정한다

    김희경 | 2017. 11. 28

    영화로 환경읽기 25. '남한산성'영화가 슬픈 건 인조 굴욕 아닌 멋대로 정한 백성 운명공론화 결론 아쉽지만 엘리트 독점 깨뜨린 것 의미김훈이 쓴 ‘남한산성’을 영화화한 작품이 얼마 전 개봉해 화제를 모았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1636년 청...

  • ‘옥자’는 계속된다, “값이 싸면 다들 먹어”‘옥자’는 계속된다, “값이 싸면 다들 먹어”

    권혜선 | 2017. 09. 12

    영화로 환경읽기 24. <옥자>유전자 조작 돼지 ‘옥자’에서 사람과 동물의 관계 성찰값싼 고기 마음껏 먹는 우리는 가축의 고통과 무관할까옥자는 돼지이다. 그냥 돼지가 아니라 몸집이 하마만큼 거대한 슈퍼 돼지이다. 옥자는 늘 미자와 함께...

  • 무엇을 먹을 것인가, 제철 동네 음식이 답이다무엇을 먹을 것인가, 제철 동네 음식이 답이다

    김찬국 | 2017. 08. 25

    영화로 환경 읽기 23 <리틀 포레스트1: 여름과 가을, 2: 겨울과 봄>'어머니 음식'이란 재료를 얻고 손질하여 먹기까지 자신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음식언제 어디서 나는지 알아야 하고, 하나의 음식이 나오기까지 손이 많이 가야 좋은 음식스...

  • '녹조라떼’와 '미세먼지’로 그려질 우리 삶의 길'녹조라떼’와 '미세먼지’로 그려질 우리 삶의 길

    조성화 | 2017. 07. 28

    영화로 환경 읽기 22. <리버로드>급속한 도시화로 달라진 유목민의 삶을 그린 영화 <리버로드>우리가 가는 길은 재난영화나 공상화학 영화에 더 가까울 듯우리는 문명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이나 문명의 역사를 길...

  •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바꾼다고 이뤄지지 않는다‘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바꾼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안재정 | 2017. 06. 29

    영화로 환경 읽기 21. <딥워터 호라이즌>안전보다 돈 선택한 석유 메이저, 이제 태양광 투자에에너지 생산과 소비구조 바꾸는 일이 재생에너지보다 중요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9일 ‘탈핵 시대’를 선포했다.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 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