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꿀벌만 보면 덩치값 못하고 ‘벌벌’

조홍섭 2011. 11. 24
조회수 24721 추천수 0
‘붕붕’ 소리만 들어도 지레 겁먹고 줄행랑

케냐 농장 벌 울타리로 침입 막고 꿀 따고

 

African_Elephants_in_Kenya.jpg

▲케냐의 아프리카코끼리 떼. 코끼리 개체수와 인구가 급증하면서 농민과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이다. 사진=샘 스티어맨, 위키미디아 커먼스.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에 골머리를 앓는 농민들은 포식동물을 활용하는 묘안을 짜내곤 한다. 호랑이 배설물이나 녹음된 포효 소리로 멧돼지를 쫓는 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예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자극에 익숙해진 야생동물이 실제로 천적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순간 효력을 잃는다.
 

아프리카에서 농민과 코끼리 사이의 갈등은 훨씬 심각하다. 1970~1980년대 동안 상아를 채취하기 위한 밀렵으로 아프리카코끼리는 멸종위기에 몰렸지만 국제적인 상아거래 규제와 단속 덕분에 최근엔 개체수가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코끼리가 많이 늘어난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서 옛 이동 경로를 지나는 코끼리 무리가 영양가 풍부한 농작물을 탐내기 시작하고, 이를 막는 농민과 충돌해 사람과 코끼리 양쪽에서 죽거나 부상당하는 사태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갈등을 끝내고 코끼리와 농민이 상생할 해법이 나왔다.
 

beehive-fence1.jpg

 

elephant.jpg

▲옥수수 밭 주변에 설치한 '벌통 울타리'와 아프리카 꿀벌을 관리하는 모습. 사진=루시 킹 박사.

 

케냐의 코끼리 보호단체 ‘코끼리를 지키자(Save the Elephant)’에서 일하는 영국 생물학자 루시 킹 박사는 아프리카코끼리가 꿀벌 벌통이 달린 아카시아 나무는 꿀벌이 있건 빈 통이건 간에 피한다는 연구결과에 주목했다. 코끼리는 생쥐를 무서워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실은 더 작은 동물을 겁내는 것이다.
 

실제로 킹 박사의 연구를 보면, 코끼리는 벌들이 내는 ‘붕붕’ 소리를 듣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는데, 달리면서 동료에게 저주파 경고음까지 낸다. 코끼리는 두터운 피부를 지녔지만 눈, 코 뒤, 귀 밑 등이 취약해 벌에게 그런 부위를 쏘일까 전전긍긍한다.
 

문제는 꿀벌 소리만으론 곧 익숙해질 코끼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킹 박사는 코끼리가 자주 침범하는 농경지와 마을 둘레에 10m 간격으로 꿀벌 벌통을 설치하고 벌통끼리 줄로 연결하는 ‘벌통 울타리’를 고안했다. 코끼리가 줄을 건드리면 벌통이 흔들리면서 성난 꿀벌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한 것이다.
 

킹 박사는 지난 2년 동안 케냐의 17개 마을에서 현장 실험을 한 결과 아프리카코끼리가 90번 침범한 사례 가운데 6번을 빼고는 모두 벌통 울타리가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team-with-fence.jpg

▲케냐의 농촌에 벌통 울타리를 친 모습. 사진=루시 킹 박사.

 

케냐의 가난한 농민들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 고춧가루 뿌리기, 가시덤불 설치, 횃불 켜고 지키기, 냄비 두드리기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또 코끼리를 쫓는 과정에서 해마다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그만한 숫자의 코끼리도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당한다.
 

케냐의 아프리카코끼리는 1980년대 국제적인 보호조처 이후 곱절로 늘었지만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 사람과의 충돌이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가난한 농민은 꿀벌 울타리를 치고 코끼리를 쫓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꿀과 밀랍을 팔아 추가 소득을 올리고 농작물의 가루받이도 돕는 부수효과도 거두고 있다. 물론 코끼리는 안전하게 이동하는 혜택을 입는다.
 

king.jpg

▲루시 킹 박사. 사진=유엔환경계획.

 

킹 박사의 이런 노력은 국제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유엔환경계획은 22일 장거리 이동 야생동물 보전 협약(CMS)과 함께 킹 박사에게 3년마다 뛰어난 보전생물학 박사 학위 논문을 쓴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을 준다고 밝혔다. 킹 박사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 주제로 학위 논문을 했다.
 

아킴 슈나이더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은 “킹 박사의 연구는 자연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함으로써, 자연이 여러 나라와 공동체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올해의 ‘뚱보’ 곰, 640킬로 ‘747' 선정올해의 ‘뚱보’ 곰, 640킬로 ‘747' 선정

    조홍섭 | 2020. 10. 26

    브룩스강 연어 잡이 나선 2200여 불곰 대상 온라인 투표 결과점보기에서 이름을 얻은 이 거대한 수컷 불곰이 연어 사냥 명당에 나타나면 다른 불곰은 자리다툼은커녕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바쁘다. 미국 알래스카 캐트마이 국립공원 및 보호구역...

  • ‘3D 가짜 거북 알’로 불법 유통망 추적‘3D 가짜 거북 알’로 불법 유통망 추적

    조홍섭 | 2020. 10. 23

    코스타리카서 현장 시험 성공, 1시간마다 위치 정보 전송입체(3D) 프린터로 만들어 겉모습은 진짜와 똑같고 안에는 위성 위치추적 장치를 넣은 가짜 거북 알이 개발돼 불법 채취꾼을 잡고 유통망을 파악하는 데 쓰일 수 있게 됐다. 중미 코스...

  • 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

    조홍섭 | 2020. 10. 22

    늦가을엔 바이러스 감염 대응…‘겨울잠’ 단백질도 많아져온대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4계절은 가장 분명한 환경 변화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몸은 4계절이 아닌 2계절을 산다는 사실이 분자 차원의 추적 연구결과 밝혀졌다.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

  • 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

    조홍섭 | 2020. 10. 21

    더워진 봄 산란 앞당기면 새끼 굶주릴 위험 커져, 30년 장기연구 결과기후변화는 평균으로 오지 않는다. 봄은 일찍 찾아오고 평균기온은 오르지만 꽃샘추위는 잦아진다. 동물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장기 현장연구로 밝혀...

  • 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20. 10. 19

    인도보다 3천년 앞서 쌀 재배, 고혈당 막는 유전적 적응 일어나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오랜 벼농사 덕분에 고탄수화물 식사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등의 부작용을 막는 유전적 적응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오랜 목축 역사가 있는 유럽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