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꿀벌만 보면 덩치값 못하고 ‘벌벌’
케냐 농장 벌 울타리로 침입 막고 꿀 따고
▲케냐의 아프리카코끼리 떼. 코끼리 개체수와 인구가 급증하면서 농민과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이다. 사진=샘 스티어맨, 위키미디아 커먼스.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에 골머리를 앓는 농민들은 포식동물을 활용하는 묘안을 짜내곤 한다. 호랑이 배설물이나 녹음된 포효 소리로 멧돼지를 쫓는 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예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자극에 익숙해진 야생동물이 실제로 천적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순간 효력을 잃는다.
아프리카에서 농민과 코끼리 사이의 갈등은 훨씬 심각하다. 1970~1980년대 동안 상아를 채취하기 위한 밀렵으로 아프리카코끼리는 멸종위기에 몰렸지만 국제적인 상아거래 규제와 단속 덕분에 최근엔 개체수가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코끼리가 많이 늘어난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서 옛 이동 경로를 지나는 코끼리 무리가 영양가 풍부한 농작물을 탐내기 시작하고, 이를 막는 농민과 충돌해 사람과 코끼리 양쪽에서 죽거나 부상당하는 사태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갈등을 끝내고 코끼리와 농민이 상생할 해법이 나왔다.
▲옥수수 밭 주변에 설치한 '벌통 울타리'와 아프리카 꿀벌을 관리하는 모습. 사진=루시 킹 박사.
케냐의 코끼리 보호단체 ‘코끼리를 지키자(Save the Elephant)’에서 일하는 영국 생물학자 루시 킹 박사는 아프리카코끼리가 꿀벌 벌통이 달린 아카시아 나무는 꿀벌이 있건 빈 통이건 간에 피한다는 연구결과에 주목했다. 코끼리는 생쥐를 무서워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실은 더 작은 동물을 겁내는 것이다.
실제로 킹 박사의 연구를 보면, 코끼리는 벌들이 내는 ‘붕붕’ 소리를 듣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는데, 달리면서 동료에게 저주파 경고음까지 낸다. 코끼리는 두터운 피부를 지녔지만 눈, 코 뒤, 귀 밑 등이 취약해 벌에게 그런 부위를 쏘일까 전전긍긍한다.
문제는 꿀벌 소리만으론 곧 익숙해질 코끼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킹 박사는 코끼리가 자주 침범하는 농경지와 마을 둘레에 10m 간격으로 꿀벌 벌통을 설치하고 벌통끼리 줄로 연결하는 ‘벌통 울타리’를 고안했다. 코끼리가 줄을 건드리면 벌통이 흔들리면서 성난 꿀벌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한 것이다.
킹 박사는 지난 2년 동안 케냐의 17개 마을에서 현장 실험을 한 결과 아프리카코끼리가 90번 침범한 사례 가운데 6번을 빼고는 모두 벌통 울타리가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케냐의 농촌에 벌통 울타리를 친 모습. 사진=루시 킹 박사.
케냐의 가난한 농민들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 고춧가루 뿌리기, 가시덤불 설치, 횃불 켜고 지키기, 냄비 두드리기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또 코끼리를 쫓는 과정에서 해마다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그만한 숫자의 코끼리도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당한다.
케냐의 아프리카코끼리는 1980년대 국제적인 보호조처 이후 곱절로 늘었지만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 사람과의 충돌이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가난한 농민은 꿀벌 울타리를 치고 코끼리를 쫓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꿀과 밀랍을 팔아 추가 소득을 올리고 농작물의 가루받이도 돕는 부수효과도 거두고 있다. 물론 코끼리는 안전하게 이동하는 혜택을 입는다.
▲루시 킹 박사. 사진=유엔환경계획.
킹 박사의 이런 노력은 국제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유엔환경계획은 22일 장거리 이동 야생동물 보전 협약(CMS)과 함께 킹 박사에게 3년마다 뛰어난 보전생물학 박사 학위 논문을 쓴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을 준다고 밝혔다. 킹 박사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 주제로 학위 논문을 했다.
아킴 슈나이더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은 “킹 박사의 연구는 자연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함으로써, 자연이 여러 나라와 공동체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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