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가 변한 거북 등딱지, 애초 보호 아닌 땅파기 용

조홍섭 2016.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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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2억6천만년 전 원시 거북 화석서 강력한 앞발 등 증거 확인

걷기, 숨쉬기 불편 불구 갈비뼈 늘여 땅속 생활 적응…페름기 대멸종 생존


tur_3_ANDREY ATUCHIN.jpg » 2억 6000만년 전 건조한 환경이던 남아프리카의 말라버린 연못가에서 굴을 파고 있는 거북의 조상 상상도. 튼튼한 앞발로 흙을 파내고 넓어진 갈비뼈가 받침 구실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Andrey Atuchin


거북은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느린 축에 들지만 등딱지라는 강력한 무기로 자신을 지킨다. ‘걷는 요새’로 자신의 몸 형태를 바꾼 동물은 따로 없다.


그렇다면 거북은 왜 이런 변신을 했을까. 고생물학자들 사이의 이 오랜 논쟁거리에 불을 붙일 새로운 가설이 나왔다. 거북은 자신의 보호가 아니라 땅을 파기 위해 등딱지를 진화시켰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타일러 라이슨 미국 덴버 자연 및 과학박물관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7월 25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화석 연구를 바탕으로 이런 견해를 밝혔다.


거북의 가장 오랜 조상 가운데 하나인 에우노토사우루스는 2억 6000만년 전 고생대 페름기에 출현했다. 손바닥 크기의 이 생물은 오늘날의 거북과는 전혀 닮지 않아, 옆으로 뚱뚱한 도마뱀 비슷했다. 갈비뼈가 특이하게 넓고 평평해 생긴 모습이었다. 


이 화석은 100년도 더 전인 1892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됐지만 그리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그런데 2008년 중국 연구자들이 발견한 2억 2000만년 전 화석은 화제가 됐다. ‘이 달린 반 등딱지 거북’이란 이름이 붙은 이 고대 거북은 갈비뼈가 넓어져 등은 그대로 노출되고 배만 가리는 등딱지만 있었다.


연구자들은 중국의 화석이 거북 등딱지가 형성되는 중간 단계를 보여준다고 보고 남아프리카에서 최초 거북의 화석을 찾아 나섰다. 결정적인 화석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 케이프에 사는 8살 난 소년이 발견했다.


tur-1.jpg » 거북의 등딱지가 보호가 아닌 땅파기 용이란 가설의 결정적 증거가 된 8살 소년이 남아프리카 농장에서 발견한 원시 거북 에우노토사우루스 화석. 주거처럼 생긴 강력한 앞발의 발톱 등 땅을 파기에 적합한 구조가 드러나 있다. 타일러 라이슨


그는 아버지 농장에서 손과 발이 완벽하게 보존된 15㎝ 크기의 에우노토사우루스 화석을 발견해 지역 박물관에 가져다주었다. 라이슨 박사는 “소년의 화석이 없었다면 이 연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덴버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거북 등딱지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설명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심각한 약점이 있다. 거북의 등딱지가 어디서 왔냐의 문제가 그것이다.


악어나 아르마딜로 등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피부를 변화시켜 뼈 성질을 지닌 비늘을 고안했다. 그런데 거북의 등딱지는 피부가 바뀐 것이 아니다.


Daderot _800px-Museum_of_Science,_Boston,_MA_-_IMG_3254.JPG » 거북의 해부구조. 등딱지가 주로 넓어진 갈비뼈가 변형돼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Daderot, 위키미디어 코먼스


거북의 등딱지는 주로 갈비뼈가 확장해 만들어진다. 거북 배아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면 갈비가 등딱지로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북의 등딱지는 갈비뼈와 등뼈 등 60개의 뼈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만화에서 보듯 껍질을 벗고 알맹이만 빠져나올 수 없다.


피부가 아니라 갈비뼈로 등딱지를 만드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숨쉬기와 걷기라는 핵심적 동작이 불편해진다. 갈비뼈는 허파가 쉽게 호흡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해 준다. 유연한 갈비뼈는 네발짐승이 몸을 좌우로 굽히면서 빠르게 나아가도록 돕는다.


tur1.jpg » 현재의 도마뱀과 원시 거북(오른쪽)의 갈비뼈 구조와 그로 인한 보행 능력 비교. 원시 거북의 갈비뼈가 확장돼 몸의 유연성이 사라지면 한 걸음의 길이가 훨씬 줄어든다(막대 비교 참조). 라이슨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그런데 갈비뼈가 넓적하고 평평하게 바뀌면서 몸통이 뻣뻣해지고 한걸음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아지는 치명적인 불편을 거북 조상에게 안겨줬다.


라이슨 박사는 “갈비뼈가 보행과 숨쉬기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노릇을 하는가는 동물 사이에서 갈비뼈의 형태에 거의 변이가 없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며 “갈비뼈는 고래, 뱀, 공룡, 사람 등 거의 모든 동물에서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거북은 유일한 예외인데, 등딱지의 대부분을 형성하도록 변형됐다.”라고 말했다.


이런 불이익을 무릅쓰고 거북이 갈비뼈로 등딱지를 만든 이유는 뭘까. 연구자들은 원시 거북의 갈비뼈가 확장하고부터 등딱지가 완성되기까지 5000만년이나 걸렸다는 데 주목했다. 원시 거북은 주요 부위인 머리와 목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다. “보호가 목적이라면 피부를 단단 변화시키는 쪽이 훨씬 쉽고 호흡과 이동이 힘들어지는 값비싼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tur-2.jpg » 갈비뼈가 확장되기 시작한 2억 6천만년 전 에우노토사우루스의 화석(왼쪽)과 현생 거북. Luke Norton


결정적인 단서는 남아프리카 소년이 발견한 온전한 원시 거북 화석이었다. 앞발은 뒷다리보다 강하고 강력한 어깨와 연결돼 있었다. 넓적해진 갈비뼈는 앞발로 땅을 팔 때 바닥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구실을 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현생 땅파기 동물들도 넓적한 갈비가 강력한 앞발 움직임을 돕는다”라고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밝혔다.


혹시 이런 강력한 앞발이 물속 생활을 위해 진화한 것은 아닐까. 연구자들은 앞발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과 두꺼운 뼈가 수영 목적이 아니라 땅을 파내기 위한 증거라고 밝혔다. 이 고대 거북이 살던 남아프리카는 건조한 환경이었다.


진화는 재활용의 천재다. 땅속을 파고들기 위해 고안한 강력한 앞발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반 거북 일부가 바다로 진출할 때 고스란히 이용됐다. 


Sea turtle at Henry Doorly Zoo, Omaha NE.jpg » 땅을 파기 위해 큼직하게 변형된 거북의 앞발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반 일부 거북이 바다로 진출할 때 요긴하게 쓰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원시 거북은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속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기치 않은 큰 행운으로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육상 생물의 90%가 멸종한 페름기 말의 대멸종 사태 때 거북이 살아남은 것은 바로 땅속 생활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거북 등딱지의 가장 큰 기능은 보호이다. 애초 특정 기능을 위해 진화했지만 환경이 바뀌면서 다른 기능으로 쓰이는 일이 진화 역사에서는 흔하다.


라이슨 박사는 “새의 깃털이 처음에 날기 위해 출현한 것이 아닌 것처럼 거북의 등딱지의 시작도 보호가 아니라 남아프리카의 거친 환경을 피해 땅굴을 파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새의 깃털은 비행 이전에 보온이나 장식용이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yson et al., Fossorial Origin of the Turtle Shell, Current Biology (2016), http://dx.doi.org/10.1016/j.cub.2016.05.02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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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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