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만 수수께끼투성이 된장잠자리

윤순영 2016. 08. 23
조회수 17190 추천수 0
윤순영의 자연 관찰 일기

1000m 고도로 최대 1만8000㎞까지
세대 이어 대륙에서 대륙으로
 
쉭~쉭~, 순식간에 상하좌우로
관성법칙 무시하듯 자유자재
 
우리나라 전역 4월 하순께 나타나
10월까지 4세대 알 낳고 살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니면 겨울 나는지 아무도 몰라


크기변환_DSC_1076.jpg » 비행중인 된장잠자리의 정면 모습. 네 날개를 따로 움직이며 정교한 비행술을 자랑한다.
 
여름철 가장 흔한 잠자리는 이름마저 구수한 된장잠자리다. 머리가 크고 몸이 전체적으로 누런 된장 색이어서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소박한 무늬와 질리지 않는 색깔을 지녔다.
 
된장잠자리는 어린 시절 잠자리채로 휘두르며 쫓는 목표 1순위였다. 무리를 지어 날아 손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동작이 빠르고 민첩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크기변환_DSC_8018.jpg » 주로 앉는 다른 잠자리와 달리 된장잠자리는 비행에 최적화한 몸 구조를 갖고 있다. 영어 이름은 방랑하는 글라이더, 홍콩 이름은 태풍을 타고 온다고 해서 태풍 잠자리이다.

주로 앉아 있는 고추좀잠자리 등 다른 잠자리와 달리 된장잠자리는 온종일 하늘을 열심히 날아다닌다. 어쩌다 나무나 풀에 앉더라도 아주 조심스럽고 꼬리는 아래로, 머리는 위로 향해 매달린 자세를 취하는 것도 독특하다.
 
앉은.jpg » 된장잠자리가 앉아 있는 모습. 몸을 아래로 내려뜨려 수직으로 풀에 매달린다.

날아다니는 된장잠자리를 7월3일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송촌리에서 촬영했다. 속도가 빠르고 방향 전환이 갑작스러워 비행 모습을 찍기는 쉽지 않았다. 

마치 공중 부양을 하거나 글라이더를 날린 것처럼 매끄럽고 손쉽게 공중에 떠 있다. 그러다가 순간적인 역회전이나 갑자기 높게 솟구치는 등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다양한 비행술을 자유자재로 선보인다.
 
비행1.jpg » 나뭇가지 등에 즐겨 앉는 다른 잠자리에 견줘 된장잠자리는 늘 날고 있고 속도와 방향전환이 빠르기 때문에 촬영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세히 보니 4장의 날개를 제각각 조종해 이런 정교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뒷날개의 밑부분이 다른 잠자리에 견줘 크게 확장된 모습도 특이하다. 가슴 속에 공기를 보관하는 기관이 넓은 것과 함께 이런 넓은 뒷날개 덕분에 된장잠자리는 지구 최고의 장거리 이동 곤충이 됐다.
 
된장잠자리는 수천㎞ 떨어진 대양을 건너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에선 인도양을 건너 동아프리카에 건너갔다 돌아오는 최고 1만8000㎞에 이르는 대장정을 해마다 한다(■ 관련기사잠자리, 1만4000~1만8000㎞ 바닷길 오간다)

shiamal_PantalaFlavescensTalakaveri.jpg » 인도와 동아프리카를 이동하다 중간 기착지에서 잠시 휴식 중인 된장잠자리. shiamal,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대를 바꾸면서 여행을 완성하는 것이 그 비결이다. 태풍 등 열대기류의 변화를 감지한 수백만 마리의 된장잠자리는 1000m 고도에서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 

중간에 공중 플랑크톤이나 소형 곤충을 포식한다. 그러다 섬에 빗물로 생긴 웅덩이가 보이면 내려가 번식한다. 알과 애벌레는 한두 달이면 성체가 돼 이동 대열에 합류한다.

된장잠자리의 짝짓기

알 낳은 뒤 파문 (4).jpg » 짝짓기를 하는 된장잠자리 암수.

알 낳은 뒤 파문 (5).jpg » 암컷을 배끝으로 고정시킨 채 알을 낳을 곳으로 향하는 된장잠자리 암수.

알 낳은 뒤 파문 (6).jpg » 암컷이 배를 물속에 잠궈 알을 낳고 있다.

알 낳은 뒤 파문 (7).jpg » 된장잠자리 짝이 물위에 알을 낳으며 이동한 자리에 파문이 일고 있다.

열대지방이 주된 서식지인 된장잠자리가 어떻게 우리나라까지 오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4월 하순께 처음 나타난 된장잠자리는 번식을 거듭해 8월께 많은 수가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는다. 10월까지 4세대가 알을 낳지만 이들이 겨울을 나는지 아니면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새로운 된장잠자리들이 기류를 타고 날아오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크기변환_DSC_9870.jpg » 몸에 비해 날개가 크고 뒷날개 밑부분이 두툼해 활공에 적합한 된장잠자리.
 
아시아, 아메리카, 인도의 된장잠자리는 대륙은 달라도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3월2일치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실렸다. 대니얼 트로스트 미국 럿거스대 생물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한국, 일본, 인도, 미국, 캐나다,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등에서 채집한 된장잠자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대양을 넘어 서로 교배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크기변환_DSC_9841.jpg » 우리나라의 여름을 대표하는 잠자리의 하나이지만 된장잠자리의 생태에 대해서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된장잠자리는 ‘지구 종’인 셈이다. 한여름 흔한 된장잠자리에는 엄청난 자연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 

글·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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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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