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모성, 심해 오징어 메뉴의 42%는 동족

조홍섭 2016. 08. 26
조회수 29649 추천수 0

짧은 평생 단 한번 알주머니 낳고 9개월 지키다 죽는 북태평양 심해 오징어

번식 쓸 에너지 비축 위해 자기보다 큰 심해어, 동족 가리지 않고 포식


mbari_s.jpg » 심해 오징어의 일종인 고나투스 베리이(오른쪽)가 자기 몸집보다 큰 동종을 잡아먹는 모습. 무인 잠수정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NOAA/ MBARI


북태평양의 찬 바다에 사는 갈고리흰오징어과 심해 오징어는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바다 표면부터 4500m 심해까지 서식하는 이 오징어는 워낙 수가 많은 데다 플랑크톤에서 물고기를 거쳐 상어, 새, 물개로 이어지는 생태계 먹이그물의 중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 심해 오징어의 생태에 대해서는 중요성만큼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가장 기초적인 정보인 심해 오징어가 뭘 먹고 사는지가 그런 예다. 이제까지는 주로 그물이나 낚시에 걸린 심해 오징어의 위장을 해부해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정보가 과연 자연상태를 반영하는지에는 의문이 있었다. 이 오징어는 그물에 갇힌 상태에서도 포식성을 늦추지 않는다. 또 낚시에 걸린 심해 오징어가 곁을 지나가는 다른 오징어나 다른 낚시에 걸린 오징어를 포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Wusel007_800px-ROV_Ventana_on_Point_Lobos.jpg » 미국 몬테레이만 수족관연구소의 무인 잠수정 벤타나호. 심해 오징어 생태 연구에도 이 잠수정이 촬영한 영상이 쓰였다. Wusel007, 위키미디어 코먼스


결국 깊은 바다 밑에서 자연상태의 심해 오징어 행동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최선인데, 마침 원격 조정 무인잠수정을 활용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헹크-얀 호빙 독일 지오마르 헬름홀츠 해양연구센터 연구원과 브루스 로비슨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 연구원은 과학저널 <심해연구 파트1>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그 결과를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무인잠수정이 1995~2015년 동안 수심 160~2056m에서 촬영한 영상 가운데 심해 오징어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찾아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심해 오징어 가운데 이 지역에 많은 고나투스속의 오닉스와 베리이 등 2종을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심해 오징어의 포식 행동을 109번 찾아냈다. 오닉스 종은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36번 촬영됐는데, 놀랍게도 15번은 그 대상이 동족인 오닉스 종 심해 오징어였다. 9번은 심해어인 샛비늘치과 물고기였다.


mbari2_s.jpg » 심해오징어 고나투스 오닉스(오른쪽)가 동족을 잡아먹고 있다. NOAA/ MBARI


다른 심해 오징어 종인 베리이는 17번의 포식 행동에서 다른 베리이를 잡아먹은 것이 2번이고 오닉스 종이 3번, 나머지 10번은 물고기였다. 어떤 심해 오징어 종인지 구분이 안 되는 56번의 포식 행동에서 먹이가 오징어인 경우는 약 4분의 1이었다.


고나투스속 심해 오징어는 포식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기회가 오면 상대가 동종이든 아니던 무엇이든 잡아먹는 만능 포식자이다.


sq.jpg » 심해 오징어인 고나투스 베리이가 지방이 풍부한 심해어를 잡아먹고 있다. NOAA/ MBARI


이번 연구에서 오닉스 종은 특히 동종 포식 비율이 높아 전체 포식 행동의 42%가 동종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연구에서 이 오징어는 갑각류를 주로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에서 오닉스의 위장에서 주로 갑각류를 확인한 까닭은 그물에 걸린 오닉스 종이 소형 개체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 심해 오징어는 어릴 때 갑각류를 주로 먹지만 자라면서 팔에 고리와 흡반이 생기면서 포식성이 강해진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특히, 다 자란 심해 오징어는 점점 더 크고 영양가 많은 먹이를 사냥하는데, 때로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상대도 잡아먹는다. 입보다 큰 먹이를 먹지 못하는 물고기와 입의 구조가 다른 데다 팔로 먹이를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이를 가능하게 했다.


심해 오징어가 자기 몸보다 큰 심해어를 사냥하는 모습 동영상



그렇다면 왜 심해 오징어는 동료와 자기보다 큰 상대까지 공격하는 탐식성을 보이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이 오징어의 번식 방식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심해 오징어는 수명이 짧은 데다 평생 단 한 번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지키다 죽는다. 번식에 삶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구조이다.


어미 오징어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낳은 알주머니를 9개월 동안 지킨 뒤 부화 뒤 죽는다. 그동안 필요한 에너지는 소화관에 축적한 지방으로 충당한다.


NOAA_MBARI_ Gonatus_onyx.jpg » 무인잠수정으로 1300m 심해에서 촬영한 고나투스 오닉스의 모습. 어릴 때는 바다 표면에 살다 성체가 되면 깊은 바다로 이동한다. NOAA/ MBARI


두족류 가운데도 가장 대사율이 높은 축에 드는 이 심해 오징어는 이런 지방을 확보하기 위해 동족을 가리지 않는 탐식성을 보인 것이다. 이 오징어가 주로 잡아먹는 심해어도 피부 조직에 지방 함량이 높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자 자연상태에서 심해 오징어의 포식 행동을 처음으로 관찰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잠수정의 빛과 소음이 교란을 일으켰고, 먹이를 사냥한 개체가 둔해져 잠수정을 잘 피하지 못하는 등 완전한 자연상태는 아니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J.T. Hovinga, B.H. Robisonb, Deep-sea in situ observations of gonatid squid and their prey reveal high occurrence of cannibalism, Deep Sea Research Part I: Oceanographic Research Papers, Volume 116, October 2016, Pages 94–98, http://dx.doi.org/10.1016/j.dsr.2016.08.00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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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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