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 색깔은 보호색 아닌 개미 취향

조홍섭 2016. 09. 08
조회수 13913 추천수 0

한쪽 옆구리 비늘만 떼어먹는 아프리카 물고기 등 다형성 진화의 미스터리

진딧물의 색깔은 공생 협력자인 개미가 결정해…포식자 결정 통념 깨


Watanabe et al. Sci. Adv. 2016; 2 _ e1600606_2.jpg » 붉은색과 초록색이 섞여있는 꼬마수염진딧물속의 진딧물과 풀개미속의 개미. 공생 협력자인 개미가 진딧물의 색깔 구성을 좌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Watanabe et al. Sci. Adv. 2016


‘다형성(polymorphism)’이란 생물학 용어가 있다. 한 종 가운데 여러 형태의 개체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또 어떻게 그런 상태가 유지되는지는 논란거리다.


아프리카 동부 탕가니카 호수에는 아주 독특한 식성을 지닌 물고기가 산다. 다른 물고기 뒤로 슬그머니 접근해 옆구리의 비늘을 떼어먹는 페리소두스 속 물고기가 7종이나 있다.


Henrik Kusche_Perissodus_microlepis_1.jpg » 다른 물고기의 비늘을 뜯어먹는 쪽으로 전문화한 시클리드인 페리소두스 미크로레피스 종. Henrik Kusche


이 물고기는 입이 한쪽으로 비뚠 구조로 진화해 쉽게 드러낸 이로 상대의 옆구리를 물어뜯기 쉽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입이 오른쪽으로 비뚤어진 개체와 왼쪽으로 비뚤어진 개체가 한 종 안에 분포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미치오 호리 일본 와카야마 의대 생물학자가 탕가니카 호에서 11년 동안 비늘을 떼어먹는 물고기를 채집하면서 조사한 결과가 과학저널 <사이언스> 1993년 4월 9일 치에 실렸다. 그는 여기서 다형성이 ‘확률 의존 선택’에 의해 나타남을 현장 데이터로 증명했다.


페리소두스 미크로레피스란 물고기는 비뚤어진 방향이 오른쪽인 형질과 왼쪽인 형질을 모두 갖고 태어나는데, 멘델의 완두콩처럼 오른쪽 형질이 왼쪽 형질보다 우성이다. 오른쪽으로 기운 입을 가진 물고기는 언제나 상대의 왼쪽 옆구리를 공격하고, 왼쪽 입으로는 늘 오른쪽 옆구리를 물어뜯는다.


A Meyer2.jpg » 다른 물고기의 비늘을 뜯어먹고 사는 종인 페리소두스 미크로레피스의 오른쪽으로 기운 입(오른쪽)과 왼쪽으로 기운 입을 한 개체. 각각 한쪽 방향으로만 공격할 수 있다. A Meyer


공격당하는 물고기 처지에서 보면, 처음엔 주로 오른쪽으로 비뚤어진 입을 가진 포식자가 많으니 왼쪽 뒤를 조심한다. 시간이 가면 당연히 공격 성공률은 떨어진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왼쪽으로 비뚤린 입을 타고난 포식자는 상대가 방심하는 오른쪽 배를 공격할 수 있어 먹이를 넉넉히 확보하고 자손이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점차 왼쪽 비뚤린 입을 가진 물고기가 늘어나면 다시 처음 오른쪽 비뚤린 입을 지닌 물고기처럼 먹이 확보가 힘들어질 것이다.


호리의 조사 결과 11년 동안 이 물고기 가운데 오른쪽과 왼쪽으로 기운 입을 지닌 개체는 반반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균형은 5년에 15%씩 진동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왼쪽으로 기운 입을 가진 개체가 늘어나면 피식자들은 오른쪽을 더 경계하게 되고 그 결과 공격 성공률이 떨어지면 다시 오른쪽으로 입이 기운 포식자가 득세하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01503926_P_0.JPG » 무당거미. 사진처럼 다양한 줄무늬가 있는 개체가 있는가 하면 환경에 따라 검은 빛깔을 띠기도 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다형성의 원인으로는 이 밖에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거나 포식자의 포식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도 설명한다. 무당거미 가운데 초록·검정·흰·노란빛 줄무늬를 한 개체와 검은 개체가 있는 것은 환경요인이다. 다채로운 색깔은 자외선을 잘 반사해 먹이 곤충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고 검은색은 햇볕을 잘 흡수해 추운 날씨에도 견디게 해 준다.


포식자가 다형성을 이끄는 사례는 민수염진딧물속에서 보인다. 이 진딧물에는 붉은색과 초록색 두 가지가 있는데, 무당벌레는 붉은색을, 기생벌은 초록색 진딧물을 즐겨 잡아먹는다. 두 종류의 포식자가 이 진딧물 색깔 비율을 조절한다.


다형성의 원인에 관한 이제까지 없던 가설이 나왔다. 포식자가 아니라 공생하는 협력자가 다형성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Ryota Kawauchiya.jpg » 개미와 진딧물은 대표적인 공생 관계이다. 그러나 개미가 진딧물의 색깔 변이까지 일으킨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Ryota Kawauchiya


사오리 와타나베 일본 홋카이도대 생물학자 등 일본 연구자들은 8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서 진딧물의 색깔 분포가 공생자인 개미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진딧물과 개미의 공생은 잘 알려져 있다. 진딧물은 식물에서 즙을 빨아 먹고 자신을 포식자로부터 지켜 주는 개미에게 단물을 분비해 보답한다. 쑥에 서식하는 꼬마수염진딧물속 진딧물에는 붉은색과 초록색 개체가 섞여 있다.


이 진딧물을 돌보는 것은 풀개미속 개미이다. 이 진딧물은 보호 개미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개미를 떼어놓으면 진딧물은 곧 사멸하고 만다. 돌보는 개미 수가 많을수록 진딧물은 번성한다.


연구자들이 색깔이 여러 비율인 진딧물 집단으로 실험을 했더니 붉은색이 전체의 65%일 때 돌보는 개미 수가 가장 많았다. <사이언스 어디밴시스>는 “이 연구결과는 다형성이 포식자가 아닌 공생자 상대 때문에 이뤄진 첫 사례”라고 밝혔다.


Sanjay Acharya.jpg » 진딧물은 양질의 당분을 분비해 개미의 보호를 받느냐, 아니면 더 많은 에너지를 번식에 기울여 자손을 늘리느냐의 딜레마에 빠진다. Sanjay Acharya


개미가 어떻게 진딧물의 색깔 분포를 결정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앞의 비늘 먹는 물고기 사례에서처럼 두 색깔의 진딧물 사이에 동적인 균형을 이루는 무언가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개미가 그 과정을 주도할 것으로 추정했다. 개미는 그저 수동적으로 진딧물 꽁무니에서 단물을 빨아먹지는 않는다. 농도가 진한 양질의 단물을 생산하는 진딧물을 잘 보살피지만 생산량과 질이 떨어지는 진딧물은 잡아먹어 버린다. 가축을 기르는 농부와 비슷하다.


진딧물 처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양질의 단물을 생산하려면 번식에 지장을 받는다. 예컨대 번식력이 왕성한 한 가지 색깔의 진딧물이 전체 무리를 장악한다면 단물의 질이 떨어져 개미로부터 버림을 받고 무리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연구자들은 양질의 단물을 생산하는 초록 진딧물과, 번식력이 뛰어나지만 단물의 질은 떨어지는(그리고 쑥의 개화를 막아 진딧물의 월동을 가능하게 할 가능성이 있는) 붉은 진딧물 사이에 개미가 동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chio Hori, Frequency-Dependent Natural Selection in the Handedness of Scale-Eating Cichlid Fish, Science, Vol 260, 9 April 1993.


S. Watanabe, "Color polymorphism in an aphid is maintained by attending ants," Science Advanceshttp://advances.sciencemag.org/content/2/9/e160060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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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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