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도 감정 있나, 설탕 먹은 벌 낙관적으로 행동

조홍섭 2016. 09. 30
조회수 18597 추천수 0

단것 맛본 뒤영벌은 더 낙관적이고 스트레스서 빨리 회복

꿀벌, 가재, 초파리 등서 원시적 감정 발견 잇따라…동물윤리 관심


Friedrich Haag.jpg » 꽃꿀을 따러 꽃에 날아드는 뒤영벌. 단물을 먹은 뒤영벌은 긍정적인 감정 비슷한 상태로 바뀐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Friedrich Haag, 위키미디어 코먼스


곤충 등 무척추동물도 기초적인 형태의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비관적으로 바뀌는 꿀벌, 불안감을 느끼는 가재, 방어상태로 빠지는 초파리 등이 보고돼 있다.


이번엔 뒤영벌이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된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사람은 우울할 때 초콜릿 같은 단것을 먹어 기분이 나아지게 만든다. 마찬가지 일이 벌에게도 벌어질까.


클린트 페리 영국 퀸 메리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30일 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뒤영벌을 이용해 곤충이 원시적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본 실험결과를 보고했다.


perry.jpg » 뒤영벌의 원시적 감정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장치. 클린트 페리


연구자들은 뒤영벌을 훈련해 다섯개의 작은 현관문 가운데 색지가 위에 붙은 현관문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 보상을 받도록 했다. 초록색 색지가 붙은 구멍으로 들어가면 맹물이 나오고, 파란색 색지 현관문에선 30% 농도의 설탕물을 먹을 수 있는 식이다. 


이런 훈련을 받은 뒤영벌에게 이번에는 초록도 파랑도 아닌 어중간한 색깔의 현관문이 제시됐다. 들어온 벌 절반에게는 파란색 현관문 때의 곱절인 60% 설탕물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맹물을 제공했다.


실험결과 앞서 설탕물 맛을 본 벌은 어중간한 색깔의 현관문이 나타났을 때 그렇지 않은 벌에 견줘 들어갈 때까지 망설이는 시간이 짧았다. 다시 말해 단것을 먹은 벌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어 벌을 가볍게 눌러 마치 천적인 거미게에 붙잡힌 것 같은 스트레스를 주고 풀어놓은 뒤 얼마나 빨리 먹이를 찾아 나서는지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설탕을 먹은 벌일수록 회복속도가 빨랐다. 


Paul Stein.jpg » 뒤영벌의 긍정적 감정 상태는 도파민 분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Paul Stein, 위키미디어 코먼스


벌의 이런 긍정적인 행동은 뇌의 보상 중추에서 분비하는 도파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이 벌에게 도파민 억제제를 투여하자 설탕 먹은 벌의 긍정적 행동은 중단됐다.


연구자들은 “뒤영벌에서 긍정적인 감정 비슷한 상태가 있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이런 감정은 환경에 관한 정보와 몸을 통합시켜 의사결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적응 기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무척추동물도 척추동물처럼 감정 비슷한 느낌을 지닌다는 사실은 동물윤리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다. <동물해방>을 지은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날 영국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연구결과를 언급하며 “다음부터 여러분은 파리약을 뿌리기 전에 망설이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 연구를 비롯해 무척추동물에 기초적 형태의 감정이 있다는 최근 일련의 연구가 이들에게 의식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곤충은 동물 종의 97%를 차지한다.


Octopus_macropus_-_The_Coral_Kingdom_Collection.jpg » 무척추동물이면서 포유류 못지않은 지적 능력을 보이는 문어. 유럽에서는 동물학대 방지 대상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무척추동물 가운데 문어 등 일부 동물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여 동물윤리 차원에서 논란이 제기됐고 영국은 1993년 문어에 대해, 유럽연합은 이후 두족류 모두에 대해 학대를 금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싱어는 앞으로 일부 곤충에 대해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이 글에서 내다봤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lint J. Perry et. al., Unexpected rewards induce dopamine-dependent positive emotion–like state changes in bumblebees, Science  30 Sep 2016: Vol. 353, Issue 6307, pp. 1529-1531

DOI: 10.1126/science.aaf445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수중 ‘밑밥 캠’ 1만5천대 깔았는데 “상어가 안보인다”수중 ‘밑밥 캠’ 1만5천대 깔았는데 “상어가 안보인다”

    조홍섭 | 2020. 08. 03

    세계 58개국 대규모 조사, 19%서 암초상어 관찰 못 해 산호초에서 평생 살거나 주기적으로 들르는 암초상어는 지역주민의 소중한 식량자원일 뿐 아니라 다이버의 볼거리, 산호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실태...

  • 바다거북은 엉성한 ‘내비' 의존해 대양섬 찾는다바다거북은 엉성한 ‘내비' 의존해 대양섬 찾는다

    조홍섭 | 2020. 07. 30

    “여기가 아닌가 벼”…때론 수백㎞ 지나쳤다 방향 돌리기도 아무런 지형지물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바다거북이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해변과 종종 수천㎞ 떨어진 먹이터를 이동하는지는 찰스 다윈 이래 오랜 수수께끼였다.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한 연구 ...

  • 파리지옥 풀은 어떻게 파리를 알아볼까파리지옥 풀은 어떻게 파리를 알아볼까

    조홍섭 | 2020. 07. 27

    30초 안 감각털 2번 건드리면 ‘철컥’…1번 만에 닫히는 예외 밝혀져 찰스 다윈은 파리지옥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식물”이라고 했다. 세계에 분포하는 식충식물 600여 종 대부분이 먹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수동적 방식인데 파리지옥은 유일하게 ...

  • 날개 치지 않고 5시간, 콘도르의 고효율 비행날개 치지 않고 5시간, 콘도르의 고효율 비행

    조홍섭 | 2020. 07. 23

    전체 비행시간의 1%만 날개 ‘퍼덕’…상승기류 타고 비상·활공 독수리나 솔개 같은 맹금류는 상승기류를 탄 채 날개 한 번 퍼덕이지 않고 멋지게 비행한다. 그렇다면 날개를 펴면 길이 3m에 몸무게 15㎏으로 나는 새 가운데 가장 큰 안데스콘도르...

  • 사람도 ‘귀 쫑긋’ 개·고양이와 마찬가지사람도 ‘귀 쫑긋’ 개·고양이와 마찬가지

    조홍섭 | 2020. 07. 17

    귀 근육 신경반응과 미미한 움직임 확인…새로운 보청기에 응용 가능 개나 고양이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려면 귀가 어느 쪽을 향하는지 보면 된다. 낯설거나 큰 소리, 중요한 소리가 들리면 동물의 귀는 저절로 그리로 향하고 쫑긋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