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도 감정 있나, 설탕 먹은 벌 낙관적으로 행동
단것 맛본 뒤영벌은 더 낙관적이고 스트레스서 빨리 회복
꿀벌, 가재, 초파리 등서 원시적 감정 발견 잇따라…동물윤리 관심
» 꽃꿀을 따러 꽃에 날아드는 뒤영벌. 단물을 먹은 뒤영벌은 긍정적인 감정 비슷한 상태로 바뀐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Friedrich Haag, 위키미디어 코먼스
곤충 등 무척추동물도 기초적인 형태의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비관적으로 바뀌는 꿀벌, 불안감을 느끼는 가재, 방어상태로 빠지는 초파리 등이 보고돼 있다.
이번엔 뒤영벌이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된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사람은 우울할 때 초콜릿 같은 단것을 먹어 기분이 나아지게 만든다. 마찬가지 일이 벌에게도 벌어질까.
클린트 페리 영국 퀸 메리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30일 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뒤영벌을 이용해 곤충이 원시적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본 실험결과를 보고했다.
» 뒤영벌의 원시적 감정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장치. 클린트 페리
연구자들은 뒤영벌을 훈련해 다섯개의 작은 현관문 가운데 색지가 위에 붙은 현관문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 보상을 받도록 했다. 초록색 색지가 붙은 구멍으로 들어가면 맹물이 나오고, 파란색 색지 현관문에선 30% 농도의 설탕물을 먹을 수 있는 식이다.
이런 훈련을 받은 뒤영벌에게 이번에는 초록도 파랑도 아닌 어중간한 색깔의 현관문이 제시됐다. 들어온 벌 절반에게는 파란색 현관문 때의 곱절인 60% 설탕물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맹물을 제공했다.
실험결과 앞서 설탕물 맛을 본 벌은 어중간한 색깔의 현관문이 나타났을 때 그렇지 않은 벌에 견줘 들어갈 때까지 망설이는 시간이 짧았다. 다시 말해 단것을 먹은 벌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어 벌을 가볍게 눌러 마치 천적인 거미게에 붙잡힌 것 같은 스트레스를 주고 풀어놓은 뒤 얼마나 빨리 먹이를 찾아 나서는지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설탕을 먹은 벌일수록 회복속도가 빨랐다.
» 뒤영벌의 긍정적 감정 상태는 도파민 분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Paul Stein, 위키미디어 코먼스
벌의 이런 긍정적인 행동은 뇌의 보상 중추에서 분비하는 도파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이 벌에게 도파민 억제제를 투여하자 설탕 먹은 벌의 긍정적 행동은 중단됐다.
연구자들은 “뒤영벌에서 긍정적인 감정 비슷한 상태가 있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이런 감정은 환경에 관한 정보와 몸을 통합시켜 의사결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적응 기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무척추동물도 척추동물처럼 감정 비슷한 느낌을 지닌다는 사실은 동물윤리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다. <동물해방>을 지은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날 영국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연구결과를 언급하며 “다음부터 여러분은 파리약을 뿌리기 전에 망설이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 연구를 비롯해 무척추동물에 기초적 형태의 감정이 있다는 최근 일련의 연구가 이들에게 의식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곤충은 동물 종의 97%를 차지한다.
» 무척추동물이면서 포유류 못지않은 지적 능력을 보이는 문어. 유럽에서는 동물학대 방지 대상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무척추동물 가운데 문어 등 일부 동물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여 동물윤리 차원에서 논란이 제기됐고 영국은 1993년 문어에 대해, 유럽연합은 이후 두족류 모두에 대해 학대를 금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싱어는 앞으로 일부 곤충에 대해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이 글에서 내다봤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lint J. Perry et. al., Unexpected rewards induce dopamine-dependent positive emotion–like state changes in bumblebees, Science 30 Sep 2016: Vol. 353, Issue 6307, pp. 1529-1531
DOI: 10.1126/science.aaf445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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