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동족살해 포유류 6배, 영장류 본성 탓
인류의 동족 살해율은 포유류 평균의 6배, 폭력성은 영장류 계통의 특성
사회와 국가 조직의 진보로 살해율 급감…폭력적 본성을 문화로 극복
» 사회성과 세력권을 지닌 포유류일수록 동족 살해율이 높다. 영장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Yathin S Krishnappa,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는 국가의 필요성을 주창한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끊임없는 공포와 폭력적 죽음의 위험 속에서 외롭고, 역겹고, 상처투성이며 짧은 인간의 삶…”. 그러나 18세기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반대로 원시 상태의 인간을 “오염되지 않은 도덕성”으로 보았다. 폭력성은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문화적으로 타락한 결과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뿌리 깊다.
인간의 폭력성이 계통 유전학적으로 어떻게 기원했는지를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초의 인류가 수렵·채취 시대를 거쳐 문화의 지배를 받는 단계로 오기까지 폭력성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전체 포유류와 비교한 연구이다.
호세 마리아 고메스 스페인 그라나다대 진화생태학자 등 스페인 연구자들은 동족을 살해하는 폭력성이 포유류의 분류군 별로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알기 위해 3000여 개 과거 연구를 분석했다. 과학저널 <네이처> 29일 치에 실린 이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조사한 1024종의 포유류 가운데 동족 살해의 습성이 있는 종은 40%에 가깝다. 포유류의 평균적 동족 살해율은 0.3%로, 비율은 높지 않지만 꽤 광범한 현상이다.
» 동족 살해율이 높은 포유류 50종. 미어캣이 가장 높고 상당수 영장류가 상위권을 차지한다. 고메스 외 <네이처>
동족 살해는 고래나 박쥐에서는 드물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햄스터와 말 등에서도 벌어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자, 호랑이, 곰 등 사나운 동물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연구자들이 집계한 동족 살해율이 가장 높은 50가지 동물을 보면, 뜻밖에도 미어캣이 19%로 최상위에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협동과 헌신의 모습을 주로 그리지만, 이 사막 동물은 집단 안에서 제 새끼의 생존이나 지위 상승을 위해 다른 새끼를 죽여 동족 살해 비율이 5마리 가운데 1마리꼴에 이른다.
조사결과를 보면, 유아살해 습성이 있는 사자 등 고양이과 포식자와 늑대, 불곰 등이 보이지만 상위권을 독차지하는 것은 단연 영장류이다. 또 분류 계통상 가까운 동물들은 비슷한 수준의 폭력성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최고의 동족 살해율을 보인 미어캣. 5마리 중 1마리가 동족에 의해 살해된다. Charlesjsharp,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폭력성은 어디서 출발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동족 살해율이 사회성과 세력권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회성이 있고 세력권을 형성하는 포유류일수록 집단 안이나 집단 사이에 짝짓기, 먹이, 영역 등을 두고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사람의 폭력성이 어디서 기원하는가였다. 연구자들은 구석기인부터 현대인까지 600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동족 살해율을 계산했다. 살인, 식인, 전쟁, 유아살해, 처형 등이 모두 포함된 수치다.
그 결과 호모속의 동족 살해율은 2%로 포유류 평균의 6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장류 조상의 살해율은 2.3%, 유인원의 조상은 1.8%였다. “이 결과는 동족 살해가 영장류 계통에 깊이 뿌리내려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논문은 밝혔다.
인류의 조상도 수렵·채취를 하던 소규모 집단과 반쯤 정주생활을 하던 수렵·채취인 부족에서는 영장류 일반과 비슷한 살해율을 보였다. 그러나 더 규모가 크고 위계적인 부족의 살해율은 훨씬 높아진다.
인류의 동족 살해율은 국가가 등장해 폭력의 합법적 사용을 독점하면서 급격히 떨어진다. 그 이전 중세 때 살해율은 12%에 이르렀다.
» 포유류의 계통도에 나타낸 동족 살해 정도. 노랑에서 붉은색으로 갈수록 살해율이 높은 것이며 동족살해가 없는 종은 회색으로 표시됐다. 사람보다 높은 살해율은 붉은 점으로 표시됐다. 사람 위치는 붉은 세모이다. 고메스 외 <네이처>
연구자들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일정 수준의 동족 살해율은 인류가 특별히 폭력적인 포유류 분류계통에 속해 있었던 데서 기원한다”고 밝혔다. 홉스가 얘기한 대로 사람의 폭력성은 일정 부분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런 선사시대 수준의 동족 살해율은 그대로 유지돼 온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진보하면서 특히 사회·정치 조직이 바뀌면서 변했다”며 “문화는 계통 유전학이 인류에게 물려준 치명적 폭력성을 통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osé María Gómez et. al., The phylogenetic roots of human lethal violence, Nature, doi:10.1038/nature1975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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