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거미 수컷 처음이자 마지막 섹스 뒤 암컷 먹이로

조홍섭 2016. 10. 14
조회수 12496 추천수 0

짝짓기 도중 심장 멈추고 암컷 먹이 자청, 수컷 먹은 암컷 새끼 2배

덩치 큰 암컷 피하기 힘들고, 첫 수컷 정자 수정 가능성 커 도망 포기


ana1_Karina I. Helm.jpg » 새끼를 위해 짝짓기 뒤 자신의 몸을 암컷(왼쪽)에 제공하는 닷거미 일종. Karina I. Helm


덩치 작은 수컷이 커다란 암컷의 눈치를 보며 접근해 구애하다, 또는 용케 짝짓기를 마친 뒤 암컷의 먹이가 되는 성적 동종포식이 종종 벌어진다. 이런 행동은 거미를 비롯해 사마귀 등 곤충과 복족류, 요각류에서 꽤 흔하게 나타난다.


이런 행동이 진화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어 선택되었는지는 과학자들의 오랜 논란거리다. 수컷 처지에서는 암컷에게 정자를 건네주고 무사히 빠져나와 다른 암컷을 만나는 것이 이득이다. 이를 위해 수컷은 짝짓기를 한 뒤 죽은 척하기, 암컷을 달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기, 거미줄로 암컷을 감싸 덤비지 못하게 하기, 선물을 주어 환심 사기 등 다양한 전략을 동원한다.


ana2_M.Krumbholz_Wikimedia Commons.jpg » 짝짓기 때 암컷을 달래고 주의를 돌리기 위해 죽은 파리를 선물로 주는 닷거미 일종. M.Krumbholz, 위키미디어 코먼스


닷거미의 일종(Pisaura mirabilis)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를 보면1), 수컷은 암컷에 구애할 때 죽은 파리를 선물로 가져가곤 한다. 연구자들은 선물을 주는 수컷과 안 주는 수컷의 동종포식 비율을 비교해 봤더니 선물을 주었을 때 수컷이 잡아먹힐 확률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6분의 1이었다. 게다가 암컷이 굶주리든 배부르든 이런 행동에는 차이가 없었다.


과부거미도 짝짓기 후 수컷을 잡아먹기로 유명하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수컷 과부거미는 미성숙 암컷과 짝짓기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암컷 거미는 마지막 탈피 2~3일 전 이미 정자를 보관하는 기관을 갖추고 있다. 수컷은 송곳니로 암컷 복부에 있는 정자 보관 기관의 껍질에 구멍을 내어 수정한다. 연구자들은 과부거미 암컷은 3분의 1은 이처럼 성체가 되기도 전에 수정된다고 밝혔다.2)


Toby Hudson.jpg » 짝짓기 때 수컷을 잡아먹기로 유명한 과부거미의 일종. Toby Hudson,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렇지만 정반대의 전략을 펴는 수컷 거미(Dolomedes tenebrosus)도 있다. 기회를 노려 도망치기는커녕 닷거미의 일종인 이 거미는 짝짓기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중에 암컷의 먹이가 된다.


스티븐 슈바르츠 미국 네브래스카-링컨대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거미 수컷의 자기희생 행동이 어떤 진화적 이유를 갖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수컷의 몸을 섭취한 암컷이 낳은 자손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질과 양 모두 월등한 것으로 드러났다.


ar9.jpg » 닷거미는 물가에 살면서 사냥을 한다. 때로는 물고기처럼 큰 동물을 공격하기도 한다. 에콰도르의 닷거미가 물고기를 사냥했다. Ed Germain 등 <플로스 원>


연구자들이 짝짓기 뒤 수컷을 먹게 한 암컷과 먹지 못하게 한 암컷의 새끼를 비교한 결과 전자가 새끼의 수는 2배 많고, 크기는 14~20% 더 컸으며, 생존 기간은 44~63% 더 긴 것으로 밝혀졌다. 또 죽은 수컷 대신 비슷한 크기의 귀뚜라미를 먹이로 주었을 때는 암컷의 번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런 실험 결과를 토대로 “수컷 거미의 몸에 암컷의 산란과 새끼 성장에 꼭 필요하지만 달리 구하기 힘든 영양분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수컷은 짝짓기만 하고 도망쳐 다른 암컷을 만날 수 있다면 훨씬 득이 될 텐데 왜 이런 번식행동을 선택했을까. 연구자들은 수컷이 처음 만나는 암컷과 처음이자 마지막 섹스를 한 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편이 유전자를 남기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Apple2000.jpg » 짝짓기 뒤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 암컷. 성적 동족포식의 진화적 이유는 과학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Apple2000,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거미의 암컷은 수컷보다 10배가량 크다. 도망치려 해도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붙잡힐 가능성이 크다. 다른 암컷과 다시 짝짓기를 할 확률이 낮은 상황이라면 아예 자신의 몸을 자손을 위한 먹이로 제시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또 이번 연구에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 거미에 첫 수컷의 정자가 우선권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처음 짝짓기한 수컷의 정자가 난자를 수정할 확률이 높다면, 힘들게 도망쳐 다른 암컷을 찾아 다시 짝짓기를 시도할 가치도 떨어진다. 그 암컷이 처녀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teven K. Schwartz et. al., Males Can Benefit from Sexual Cannibalism Facilitated by Self-Sacrifice, Current Biology, http://dx.doi.org/10.1016/j.cub.2016.08.01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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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언론인/ 자연작가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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