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도 '흙수저' 있다, 곰베 국립공원 40년 관찰

조홍섭 2016. 10. 17
조회수 15409 추천수 0

수컷은 젊을 때 정상 도전 뒤 지위 하락, 암컷은 차례 기다리기 장기 전략

모녀 연대 암컷은 다른 출발선, 이주 암컷 누르며 안정적 지배질서 굳혀


go_Ikiwaner.jpg » 어미의 존재는 어린 암컷이 어떤 사회적 지위로 사회에 편입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Ikiwan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침팬지 사회에서 사회적 서열은 중요하다. 높은 서열일수록 양질의 먹이를 먹고 건강상태가 좋아 많은 자식을 남길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방법이 암컷과 수컷 사이에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이 야생 침팬지에 대한 장기간의 관찰결과 드러났다.


스티픈 푀르스터 미국 듀크대 영장류학자 등 이 대학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14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야생 침팬지 100여 마리를 40여년 동안 매일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자의 한 명인 앤 퓨지 교수는 저명한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과 함께 1970년부터 침팬지 연구에 참여했다.


go_Christopher S. Walker.jpg » 오랜 기다림 끝에 최상위 지위에 오른 암컷 침팬지. Christopher S. Walker


침팬지가 성체가 되려면 수컷은 15살, 암컷은 12살이 돼야 한다. 이곳의 수컷 침팬지는 21살쯤 되면 최고 지위에 도전한다. 그러나 영광은 잠깐, 머지않아 다른 젊은 수컷의 도전을 받아 지위는 하락한다.


반대로 암컷의 지위는 나이가 들면서 상승해 그 상태로 평생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컷 침팬지의 이런 독특한 지위 획득 방식에 대해 푀르스터는 “성체의 위계질서에 진입한 뒤 암컷들 사이에는 지위 획득을 위해 도전하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이를 “엄격한 줄서기”라고 표현했다.


마치 연공서열이 강한 회사처럼 암컷은 나이가 들면서 차츰 지위가 올라간다. 낮은 지위에서 묵묵히 기다리면 연장자가 죽으면서 차츰 사다리를 타고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 


go_Ian C. Gilby.jpg » 낮은 지위의 어린 암컷이 암컷의 사회적 위계질서에 들어가려다 공격당해 부상당한 모습. Ian C. Gilby


그러나 여기에 변수가 있다. 모든 암컷이 똑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이 아니다. 젊은 암컷은 어미가 있으면 위계질서의 바닥이 아니라 중간 서열부터 시작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어떤 지위로 사회적 위계에 진입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바닥부터 시작하지 않고 중간에 편입되면 최상위에 도달하는 기간이 짧고 당연히 평생 번식능력도 높을 것이다. 최상위 암컷이 죽는 등 변수가 없다면 나이에 따라 지위가 오르기 때문에 다른 암컷에게 추월당할 염려도 없다.


다른 무리에서 이주해 온 암컷이나 어미가 없는 어린 암컷은 낮은 지위로 출발한다. 어미가 있는 암컷은 어미와 강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어미의 좋은 먹이터를 공유하고 낮은 지위의 다른 암컷과 다툼이 벌어졌을 때 도움을 받는다. 외부에서 이주해 온 암컷에게 모녀 침팬지는 강한 공격성을 보이곤 한다.


go_Caelio.jpg » 수컷 침팬지들이 정상 지위를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Caelio, 위키미디어 코먼스


침팬지 암컷이 수컷과 달리 싸움보다는 차례를 기다리는 전략을 택한 이유는 뭘까. 퓨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수컷이 잠깐 높은 지위에 오른다 해도 많은 암컷을 수태시킬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높은 번식 성공률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암컷은 한 번에 자식 하나씩만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번식 성공을 위해서는 가능하면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결국, 암컷이 싸우지 않는 건 치러야 할 대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자칫 싸우다가 상처라도 입으면 새끼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암컷 침팬지에게는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안정된 계급 관계를 보이는 예로 나이가 들수록 덩치가 커지는 아프리카코끼리와 수컷끼리 동맹을 이루는 점박이하이에나를 들었다. 그러나 곰베의 침팬지 암컷은 여기서 나아가 싸움 능력이 지위를 결정하고, 높은 지위는 덩치에 달렸으며, 지위가 높은 개체는 지위가 낮은 개체의 덩치가 커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가로막는 순환고리로 설명했다.


곰베의 침팬지 암컷은 지위가 높을수록 양질의 먹이터를 차지하고 그 결과 덩치가 커지고 기근 때 생존 확률을 높여 장기간의 안정적인 지배체제를 유지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흙수저’에게 출발선부터 달라 결코 만회할 기회가 없는 인간 사회는 어쩌면 침팬지 사회와 비슷한지도 모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impanzee females queue but males compete for dominance," Steffen Foerster et. al., Scientific Reports, Oct. 14, 2016. DOI: 10.1038/srep3540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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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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