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미네랄 섭취 위해 깬 돌이 석기 모양

조홍섭 2016. 10. 20
조회수 19917 추천수 0

돌가루 핥거나 몸에 발라…도구로는 쓰지 않아

결과적으로론 구석기인이 만든 석기 같은 찍개


c1_Michael Haslam_ Primate Archaeology Group.jpg » 브라질의 꼬리감기원숭이가 역암 암반에 박힌 규암 자갈에 다른 규암 조각을 내리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석기가 다량 생성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Michael Haslam


이제 더는 사람을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로 정의하지 않는다. 침팬지 등 영장류를 비롯해 까마귀 등 새들 가운데도 도구를 사용하는 종이 여럿 있다.


그렇지만 돌을 바닥에 놓고 단단한 돌을 위에서 거듭 내리쳐 돌조각이 떨어져 나가게 해 날카로운 날이 생긴 돌, 곧 석기를 만드는 건 다른 이야기다. 정교한 작업을 하기 위한 손의 형태와 손가락 사이의 조정 능력뿐 아니라 완성품을 머리에 그려 작업하는 인지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암(차돌) 같은 단단한 돌의 한쪽 면을 내리쳐 떼어내 날이 생긴 석기를 찍개라고 하고, 인류 최초의 돌 연장으로 여긴다. 의도적으로 만든 날카로운 날을 지닌 석기는 원시인류(호미닌)만의 특징으로 간주해 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원시적인 석기를 발견하더라도 혹시 원숭이가 만든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듯하다.


c3_T. Falótico.jpg » 규암 자갈을 힘차게 내리치고 있는 꼬리감기원숭이. T. Falótico


영국과 브라질 과학자들은 꼬리감기원숭이의 일종(학명 Sapajus libidinosus)이 석기를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구석기인이 만든 석기와 구별하기 힘든 찍개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토모스 프로핏 영국 옥스퍼드대 고고학자 등은 과학저널 <네이처> 20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브라질 세라 다 카피바라 국립공원의 꼬리감기원숭이 행동을 관찰한 결과를 보고했다.


원숭이들은 규암 자갈로 역암층에 박힌 자갈을 세차게 여러 차례 내리치는 행동을 했다. 깨진 자갈로 다시 내리치기도 했다. 원숭이는 깨진 자갈의 돌가루를 핥거나 몸에 바르곤 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돌가루에 든 미네랄을 섭취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약용 성분이 든 지의류를 돌에서 떼어먹으려는 것 같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에서 생긴 날카로운 돌조각으로 무언가를 자르거나 긁는 행동은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원숭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111개의 돌조각을 회수했는데, 그 가운데 절반은 호미닌이 만든 석기의 특징인 여러 차례 내리쳐 깨진 날이 조가비 모양인 복잡한 형태를 띠었다. 연구자들은 “이들은 전통적인 분류법으로 외날찍개로 분류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렇게 많은 돌조각이 한 장소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런 곳은 원시인류의 석기 제작 장소로 간주된다.


c4.jpg » 꼬리감기원숭이가 우발적으로 만든 석기. 구석기 시대 끌개와 비슷하다. <네이처>


논문의 주 저자인 프로핏 박사는 “지난 10년 동안 날카로운 날을 지닌 석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직접 조상인 호모 속만의 특징이 아니라 더 넓은 원시인류인 호미닌의 특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호미닌이 만든 돌날·돌핵과 고고학적으로 동일한 것을 현생 영장류가 만들 수 있음이 드러났다.”라고 옥스퍼드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최초 인류의 석기도 호미닌이 아닌 원숭이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프로핏은 동아프리카 석기의 양과 복잡성 등에 비춰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로핏 박사는 “이 연구는 최초 인류의 고고학적 기록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석기 기술이 발달했는가에 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라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omos Proffitt et., al., Wild monkeys flake stone tools, Nature, doi:10.1038/nature2011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나비는 어떻게 빗방울 충격을 피하나나비는 어떻게 빗방울 충격을 피하나

    조홍섭 | 2020. 07. 13

    표면의 나노 왁스층과 미세 둔덕이 빗방울 잘게 쪼개 충격 완화 나비에게 빗방울은 상대적인 무게로 비유한다면 하늘에서 쉴새 없이 볼링공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비가 쏟아진 뒤 숲 속에 곤충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일은 없다. 그...

  • 익산서 신종 ‘노랑배청개구리’ 발견익산서 신종 ‘노랑배청개구리’ 발견

    조홍섭 | 2020. 07. 10

    수원청개구리와 ‘사촌’, 군산·완주선 이미 절멸…북한에도 수원청개구리 살아 익산, 부여, 논산 등 금강 유역의 습지와 논에 분포하는 청개구리가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사는 신종으로 밝혀졌다. ‘노랑배청개구리’란 이름이 붙은 이 개구리의 발견 ...

  • 배설물로 발견한 열대 아시아 신종원숭이 2종배설물로 발견한 열대 아시아 신종원숭이 2종

    조홍섭 | 2020. 07. 08

    유전자 분석 결과 띠잎원숭이 실제론 3종 동남아열대림에 사는 띠잎원숭이는 숲의 은둔자이다. 검은 털로 뒤덮인 50㎝ 크기의 몸집에다 나무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과일, 씨앗, 어린잎 등을 먹는데, 인기척을 느끼면 황급히 사라지기 때문이다.1세...

  • 청둥오리가 잉어를 세계에 퍼뜨린다청둥오리가 잉어를 세계에 퍼뜨린다

    조홍섭 | 2020. 07. 06

    소화관 통해 배설한 알에서 새끼 깨어나…‘웅덩이 미스터리’ 설명 물길이 닿지 않는 외딴 웅덩이나 호수에 어떻게 물고기가 살게 됐을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물새가 깃털이나 다리에 수정란을 묻혀왔다는 것인데, 아직 증거는 없다.최근 유력하게...

  • 뻐꾸기는 개개비 알 개수 세며 탁란한다뻐꾸기는 개개비 알 개수 세며 탁란한다

    조홍섭 | 2020. 07. 01

    둥지에 알 1개 있을 때 노려…비교 대상 없어 제거 회피 여름이 되면 다른 새의 둥지에 슬쩍 자신의 알을 낳아 육아의 부담을 떠넘기려는 뻐꾸기와 그 희생양이 될 개개비 사이의 ‘전쟁’이 시작된다. 세 마리 가운데 한둘은 탁란을 당하는 개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