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미네랄 섭취 위해 깬 돌이 석기 모양
돌가루 핥거나 몸에 발라…도구로는 쓰지 않아
결과적으로론 구석기인이 만든 석기 같은 찍개
» 브라질의 꼬리감기원숭이가 역암 암반에 박힌 규암 자갈에 다른 규암 조각을 내리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석기가 다량 생성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Michael Haslam
이제 더는 사람을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로 정의하지 않는다. 침팬지 등 영장류를 비롯해 까마귀 등 새들 가운데도 도구를 사용하는 종이 여럿 있다.
그렇지만 돌을 바닥에 놓고 단단한 돌을 위에서 거듭 내리쳐 돌조각이 떨어져 나가게 해 날카로운 날이 생긴 돌, 곧 석기를 만드는 건 다른 이야기다. 정교한 작업을 하기 위한 손의 형태와 손가락 사이의 조정 능력뿐 아니라 완성품을 머리에 그려 작업하는 인지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암(차돌) 같은 단단한 돌의 한쪽 면을 내리쳐 떼어내 날이 생긴 석기를 찍개라고 하고, 인류 최초의 돌 연장으로 여긴다. 의도적으로 만든 날카로운 날을 지닌 석기는 원시인류(호미닌)만의 특징으로 간주해 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원시적인 석기를 발견하더라도 혹시 원숭이가 만든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듯하다.
» 규암 자갈을 힘차게 내리치고 있는 꼬리감기원숭이. T. Falótico
영국과 브라질 과학자들은 꼬리감기원숭이의 일종(학명 Sapajus libidinosus)이 석기를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구석기인이 만든 석기와 구별하기 힘든 찍개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토모스 프로핏 영국 옥스퍼드대 고고학자 등은 과학저널 <네이처> 20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브라질 세라 다 카피바라 국립공원의 꼬리감기원숭이 행동을 관찰한 결과를 보고했다.
원숭이들은 규암 자갈로 역암층에 박힌 자갈을 세차게 여러 차례 내리치는 행동을 했다. 깨진 자갈로 다시 내리치기도 했다. 원숭이는 깨진 자갈의 돌가루를 핥거나 몸에 바르곤 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돌가루에 든 미네랄을 섭취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약용 성분이 든 지의류를 돌에서 떼어먹으려는 것 같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에서 생긴 날카로운 돌조각으로 무언가를 자르거나 긁는 행동은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원숭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111개의 돌조각을 회수했는데, 그 가운데 절반은 호미닌이 만든 석기의 특징인 여러 차례 내리쳐 깨진 날이 조가비 모양인 복잡한 형태를 띠었다. 연구자들은 “이들은 전통적인 분류법으로 외날찍개로 분류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렇게 많은 돌조각이 한 장소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런 곳은 원시인류의 석기 제작 장소로 간주된다.
» 꼬리감기원숭이가 우발적으로 만든 석기. 구석기 시대 끌개와 비슷하다. <네이처>
논문의 주 저자인 프로핏 박사는 “지난 10년 동안 날카로운 날을 지닌 석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직접 조상인 호모 속만의 특징이 아니라 더 넓은 원시인류인 호미닌의 특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호미닌이 만든 돌날·돌핵과 고고학적으로 동일한 것을 현생 영장류가 만들 수 있음이 드러났다.”라고 옥스퍼드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최초 인류의 석기도 호미닌이 아닌 원숭이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프로핏은 동아프리카 석기의 양과 복잡성 등에 비춰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로핏 박사는 “이 연구는 최초 인류의 고고학적 기록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석기 기술이 발달했는가에 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라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omos Proffitt et., al., Wild monkeys flake stone tools, Nature, doi:10.1038/nature2011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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