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서 거미 사냥하는 ‘암살자’ 벌레의 전략

조홍섭 2016.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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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진동 누그러뜨리면서 한 가닥씩 끊어 거미에 접근, 체액 빨아먹어

사냥 도중 거미에 잡아먹히기도…친척 종은 위장 진동으로 거미 유인도


a1_Fernando Soley.jpg » 암살자 벌레(앞쪽)가 거미를 사냥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Fernando Soley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열대지역에는 놀라운 사냥꾼 벌레가 산다. 침노린재 과의 곤충으로 이름이 ‘암살자 벌레’(학명 Stenolemus giraffa)이다. 


생김새부터 독특하다. 몸길이 2㎝, 다리 길이 5㎝로 제법 큰 몸집에 목이 몸집만큼 길다. 앞다리에는 사마귀의 앞다리처럼 날카로운 돌기가 나 있다. 


a2.jpg » 암살자 벌레의 앞발. 사마귀처럼 날카로운 돌기가 나 있다.


노린재과 곤충답게 입 끝에 탐침이 달려 있는데, 침에 톱니가 달려 있어 먹이의 살점을 자르고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탐침을 통해 소화액을 분비한 뒤 먹이의 체액을 빨아먹는다. 물 밖으로 나온 물장군 같다.


놀랍게도 이 벌레의 주 먹이는 거미줄을 치는 거미다. 거미는 대부분 포식자이고 또 독을 지닌 것들도 적지 않다. 만만한 먹이가 아니다.


물론, 거미를 사냥하는 동물도 있다. 교묘한 비행술로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거미줄 한가운데 앉아있는 거미만 낚아채는 박쥐와 실잠자리가 있고, 꽁무니에 거미줄을 매달고 내리뛰어 거미를 잡아채는 깡충거미도 있다.


그러나 암살자 벌레는 이런 비행술이나 거미줄도 없이 오로지 발로만 접근해 거미줄 한가운데 앉아있는 거미를 잡는다. 거미줄은 거미의 몸을 확장한 것과 같다. 접근하는 포식자나 붙잡힌 먹이를 예민하게 감지하기도 하고, 또 상대를 꼼짝달싹 못하게 붙들어 매는 죽음의 덫이기도 하다.


암살자 벌레는 대담하고도 유연한 포식자다. 강·온 사냥전략을 모두 구사한다. 거미줄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기다란 목을 늘여 거미에 접근한 뒤 주둥이를 박아넣는 것이 선호하는 사냥법이다.


Steno_giraffa eating.jpg » 거미에 체액을 빨아먹는 암살자 벌레. 매콰리대


그러나 언제나 이렇게 거미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미줄 건너편에 거미가 앉아있거나 거미 정면으로 접근해야 하는 위험이 도사릴 가능성도 크다. 


이 암살자 벌레와 같은 속인 또 다른 암살자 벌레는 위장 진동 수법을 동원한다. 앞다리나 더듬이로 거미줄을 적당한 강도로 튕겨 마치 먹이가 걸린 듯한 신호를 낸다. 먹이를 잡으러 뛰어나온 거미는 암살자의 표적이 된다.


이런 기법을 쓰지 않는 암살자 벌레는 멀리서부터 조용하고 느리게 접근하는 스텔스 전략이 장기이다. 페르난도 솔리 오스트레일리아 매콰리대 곤충학자는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과학> 28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거미의 감각을 무력화시키는 암살자 벌레의 새로운 사냥 행동을 보고했다.


Steno_giraffa.jpg » 암살자 벌레의 목은 몸통 만큼이나 길다. 매콰리대


그는 이 벌레가 거미에게 들키지 않고 공격 거리까지 거미줄 위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그 비밀을 찾기로 했다. 실험실에 거미줄과 함께 거미줄의 미세한 진동을 관측할 수 있는 레이저 장치를 한 뒤 암살자 벌레가 사냥하도록 했다.


암살자 벌레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거미에 접근하려면 거미줄을 끊으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팽팽하던 거미줄을 끊으면 그 진동이 고스란히 거미에 전달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거미는 바로 옆의 거미줄이 끊어지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비밀은 암살자 벌레의 놀라운 조심성에 있었다. 벌레가 앞다리로 거미줄을 끓을 때 끊어진 거미줄이 튕겨 나가지 않도록 양쪽 끝을 수초에서 수분 동안 붙잡아 진동을 누그러뜨린 뒤 내려놓는 것으로 밝혀졌다. 


Steno_escarp.jpg » 암살자 거미가 서식하는 호주 북부의 열대림 지대. 매콰리대


거미줄마다 팽팽한 정도도 다르다. 그러나 레이저 관측기에는 거미가 감지할 만한 진동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암살자 벌레는 거미줄 하나하나 장력을 고려해 끊으면서 거미로 향했다


바람을 이용하기도 했다.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리면 거미의 감각도 둔해지기 마련이다. 이때를 노려 거미줄을 끊어 나가는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포식자가 포식자를 잡아먹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암살자 거미의 거미 사냥 성공률은 약 20%에 그친다. 게다가 끝까지 조심하지 않으면 잡아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처지가 뒤바뀌기도 한다. 암살자 벌레의 사냥 시도에서 약 10%는 자신이 먹이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Fernando Soley3.jpg » 끈질긴 사냥 기법으로 거미를 사냥하는 암살자 벌레의 일종. Fernando Sole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도 있었다. 종종 암살자 거미는 끈질기고 조용한 접근방식을 내던지고 난폭하게 거미줄을 끊어버리곤 한다. 당연히 놀란 거미는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솔리 박사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바람으로 오인케 하려는 연막전술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런 행동 직후 거미에 덤벼들지 않는 데 비춰 설득력이 없다. 분명한 건 이런 행동이 앞을 가로막던 여러 가닥의 거미줄을 한꺼번에 제거하는 효과는 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어쩌면 암살자 벌레는 진동을 죽이며 거미줄을 한 가닥씩 끊어 가는 고단한 일에 지쳐 스스로 폭발했는지도 모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oley FG. 2016 Fine-scale analysis of an assassin bug’s behaviour: predatory strategies to bypass the sensory systems of prey. R. Soc. open sci. 3: 160573. http://dx.doi.org/10.1098/rsos.16057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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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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