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려” 하면서 귀 세우고 즉석 토론도
‘야생화 분류과정’ 야외수업 동행기
강변 절벽이 강의실…고사리만도 예닐곱 가지
30~40대 주부가 대부분…“꼭 외국 온 것 같다”
"못 보던 식물이 많아 꼭 외국에 온 것 같네."
지난 11일 강원도 정선군 동강변에 야외수업을 온 '야생화 분류과정' 학생들은 처음 보는 석회암 지대 식물들로부터 호기심어린 눈길을 떼지 못했다.
신동읍 운치리의 강변 절벽이 첫 강의실이었다. 바위는 사초과의 동강고랭이로 덮여 있었다. 이제까지 정선황새풀로 알려진 이 식물은 최근 원로식물학자 이영노 박사가 타계 직전 한국 특산의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했다.
고산지대에 사는 희귀식물인 털댕강나무도 눈에 띄었다. 중국과 러시아에 분포하는 당양지꽃이나, 세계적으로 가장 남쪽 자생지에 해당하는 이곳의 층층둥굴레도 추운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토양이 척박한 석회암 지대라 되레 경쟁서 살아 남아
김진석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는 "석회암 지대는 토양이 척박하고 건조해 빙하기가 끝나면서 북쪽으로 퇴각하지 못한 북방계 식물이 이곳에 눌러앉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습하고 땅이 비옥했다면 참나무와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했을 희귀식물들이 동강 등 강원도 일대 석회암 지대에 오롯이 살아있다.
중부지방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고사리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잎 끝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듯 새순을 내민 낚시고사리, 잎 뒷면이 새하얀 부싯깃고사리, 겨울에 황금빛 인편이 남는 금털고사리, 바위틈에 말라붙은 듯 살아가는 돌좀고사리와 개부처손, 산토끼고사리 등….
식물이 독특하니 거기 기대 사는 곤충도 낯선 종이 많았다. 동행한 곤충전문가인 변해우 연구사는 은판나비, 왕오색나비, 대왕나비, 좀잠자리, 소요산매미를 확인해 줬다.
참가자들은 강사의 설명을 공책에 받아 적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저마다 모양이 다른 식물의 잎을 작은 비닐봉지에 담고 접착메모지에 이름을 적어 넣던 정명구(60)씨는 "자꾸 헷갈려 채집을 한다"며 "지난 한 학기 동안의 식물공부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책은 잎 모양이 예쁜 산조팝, 건조한 바위지대에 나는 털중나리, 이 일대에만 있는 교목 비슬나무, 들국화처럼 흰꽃이 화사한 참으아리 등 생생한 관찰기록들로 채워져 갔다.
30~40대 주부가 대부분인 참가자들은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강사의 설명에 집중했다. "진작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다면 다 일류대학에 갔겠다"는 말에 웃음꽃이 피었다.
“열의가 학부학생들보다 높아…식물 지킴이 주역 될 것”
'야생화 분류과정'은 국립생물자원관이 일반인들에게 전문적인 식물교육을 하기 위해 올해 처음 개설했다. 13명의 학생들이 이번 야외강의까지 11주의 1학기 강의를 마쳤다.
강의 책임자인 이병윤 국립생물자원관 박사(식물분류)는 "참가자들의 배우려는 열의가 학부학생들보다 높았다"며 "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준 분류학자가 되면 자기 지역 식물을 지키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자연을 좀더 전문적으로 보려는 사회적 수요는 높아가는데 대학은 오히려 분류학자 양성기능을 줄이고 있다"며 일반인 대상 전문교육의 의미를 평가했다.
시화호생명지킴이 활동가인 수강생 한미선씨는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지 몰랐다"며 "지역에서 생태기행 등을 조직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숲해설가인 김민숙씨는 "교통이 불편하지만 강의 수준이 높고 표본 등 시설을 활용해 유익했다"고 말했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도로변에 멎었다. 멸종위기종 2급인 층층둥굴레가 도로를 따라 길가 잡초밭에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었다. 층층이 난 잎새 사이로 열매가 맺혀 있었다. 법정보호종이지만 위태로와 보였다. 김진석 연구사는 "바로 위 고추밭에 제초제를 쳐, 죽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남면 귤암리의 동강할미꽃도 사람 손이 닿는 절벽 바위틈의 자생지는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동강할미꽃의 사진을 담은 안내팻말이 서 있었다.
"구절초가 맞냐, 기름나물이 맞냐"로 논쟁을 벌이던 '주부학생'들은 오후 3시께가 되자 아이들이 학원에 갔는지 전화로 챙기느라 부산했다.
이병윤 박사는 "어렵고 재미없기로 유명한 식물분류학을 바쁜 생활인이 잘 소화해내 대견하다"고 말했다.
2학기 야생화 분류과정은 9월부터 8주 동안 계속되며, 내년에는 곤충과 새 분야에도 전문교육과정이 마련될 예정이다.
정선/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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