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널’ 속에 지구 있다
영화로 환경 읽기 14. <터널>
붕괴된 터널은 한정된 자원과 많은 인구가 경쟁하는 지구 떠올려
화석연료 취한 문명 벗어나 햇빛과 바람·물로 공존의 길 찾아야
» 오락성과 작품성 사이 균형을 잡은 재난영화라는 평을 받으며 올 여름 흥행에 성공한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쇼박스
700만명은 <터널>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영화 <터널>은 2016년 개봉 영화 중 5위에 오를 만큼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다. 710만명이 넘게 봤다고 하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도 상당수가 이 영화를 접했을 것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자동차 영업 일을 하는 정수(하정우)는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터널 안에 갇히고 만다. 그가 가진 것은 휴대폰, 생수 두 병, 생일 케이크뿐. 구조대와 통화하고 곧 터널을 나갈 것이라는 정수의 기대와 달리, 막힌 터널을 뚫는 게 쉽지 않다. 정수의 무사 귀환은 전 국민의 관심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이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진다.
사람이 터널 안에 갇힌 이야기를 126분 동안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그 안에는 꽤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었고, 생각해 볼 만한 요소도 적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부실공사 문제점을 떠올렸다고 하고, 누군가는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을 상기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생명을 다루는 태도를, 또 누군가는 정치인과 언론인의 민낯을 보면서 불편했다고도 한다. 그렇게 <터널>은 710만명의 관객들에게 다양한 생각 거리를 던진 영화였던 것 같다.
» 영화 <터널> 포스터. 쇼박스
터널은 지구다
영화를 보면서 지구를 떠올렸다. <터널>의 터널은 우리가 사는 지구와 흡사하다고. 주인공 정수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한정된 자원을 갖고 있다.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자동차 배터리와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78% 남은 휴대전화의 배터리, 가진 식량은 500㎖ 생수 두 병과 케이크이다.
게다가 이 한정된 자원을 써야 하는 존재는 정수뿐 만이 아니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여자와 개도 있다. 그것은 한정된 양의 물, 공기, 화석에너지, 광물 등의 자원을 남겨두고 73억명의 인구가 경쟁하고 있는 지구를 떠올리게 한다.
» 터널 속 상황은 닫힌 계인 지구를 떠올리게 한다. 우주에서 본 지구. 미 항공우주국
터널 안에서의 선택
어떻게 해야 할까? 터널이 무너지는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정수는 당연히 아무런 준비 없이 터널 안에 갇힌다.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그는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들이켠다. 구조대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후 그가 해야 하는 일은 물병에 눈금을 긋고 휴대전화를 끄고 케이크를 남겨두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자원이 들어오지 않는 한 닫힌 계(system)에 갇힌 생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 정수는 터널에 갇히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했을 것이다.
많은 자료는 지구 자원이 유한하며 어떤 중요한 자원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상당수의 사람은 자원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생활양식은 도저히 자원의 한계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구조원의 설명을 듣고도 정수가 물을 시원하게 마셔버리고, 휴대폰으로 긴 통화를 즐기는 것과 같다.
물론 정수는 그러지 않았다. 영화 속 정수는 상식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식적인 사람들인가? 우리는 지구의 자원이 한계에 이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 상황 파악 후 정수가 해야 하는 일은 물병에 눈금을 긋는 일이다. 쇼박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든 생존하고자 하는 정수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아낸다. 그러나 정수에게 닥친 또 하나의 시련은 그 자원마저도 혼자 다 소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여자에게 물을 건네야 하고 살아남은 개에게서는 케이크를 빼앗겨야 한다. 분노의 고함을 질러봤자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구 위 물 중 음용수는 2.5%뿐이고, 석유는 40~50년 쓸 정도가 남아 있으며, 천연가스도 그리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현재 사는 사람의 수만 해도 73억이다.
물론 현재의 자원을 73억명의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많이 쓰고, 누군가는 그 자원이 없어 죽어간다. 지나치게 많이 쓰는 누군가는 죽어가는 누군가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정수가 남은 물병을 움켜쥔 채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를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역시 정수는 그러지 않았다. 정수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인간인가?
» 지구의 73억명은 공평하게 자원을 사용하지 못한다. 국가별 국내총생산 액수로 재구성한 지도. (http://www.viewsoftheworld.net/?p=4822)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자원의 지구 상황은 종종 드넓은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선에 비유되곤 했다. 몇몇 승무원들이 타고 있는 우주선에는 공기, 물, 식량이 한정되어 있고, 외부로부터 어떤 보급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
우주선 안의 승무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주선 윤리’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에서는 모든 승무원이 동일하게 최대한 욕망을 억제하고 버티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우리의 터널은 희망이 있다
터널 안의 우리는 정수처럼 상식적이고 윤리적으로 살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살다가 천천히 소멸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터널은 정수의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불며 비가 내린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다. 지금까지 화석연료를 믿고 화려한 파티에 취해서 살았지만, 이젠 구조원의 경고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햇빛과 바람과 물을 통해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이웃과 미래세대가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선택해야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해피엔딩이 가능하다.
김희경/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경기도환경교육센터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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