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새끼와 먹이 뺏는 사자보다 굶주림이 더 무섭다

조홍섭 2016. 11. 28
조회수 23065 추천수 0

먹이 50%, 새끼 78% 잃기도 하지만 핵심 먹이터 확보가 더 중요

'공포의 무대' 떠나기보다 주력 믿고 그때그때 상황 따라 대응 전략


c1_James Temple.jpg » 나무 밑에서 쉬며 주위를 경계하는 치타 가족. 중간 포식자로 살아가기는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James Temple,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렝게티 평원에는 날마다 맹수와 초식동물 사이에 쫓고 쫓기는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추격전이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최상위 포식자와 하위 포식자 사이도 살벌하긴 마찬가지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중형 포식자인 치타가 기껏 잡아놓은 먹이를 사자나 하이에나에게 속절없이 빼앗기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먹이를 지키다가 자칫 큰 상처를 입느니 새로 사냥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여기는 것 같다. 


c4_Nick Farnhill.jpg » 치타는 빠르게 달리기 위해 날렵한 몸매로 진화했지만 그 바람에 덩치가 작아져 다른 포식자에게 종종 먹이를 빼앗긴다. 가젤을 사냥한 치타. Nick Farnhill, 위키미디어 코먼스


실제로 치타가 먹이의 25%를 빼앗기더라도 1.1시간만 더 사냥하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관련 기사: 한국인처럼 살려면 지구가 2.5개 필요하다). 치타가 잡은 먹이의 10~15%를 다른 포식자가 가로채며, 때로는 먹이의 절반을 다른 동물이 가져가기도 한다. 


먹이를 빼앗기는 데 그치지 않고 종종 치타는 다른 포식자에게 목숨을 잃는다. 특히 어린 치타의 사망원인 가운데 사자에 잡혀 죽는 비율은 매우 높아 78%에 이르렀다는 연구도 있다. 대형 포유류 가운데 이처럼 새끼 사망률이 높은 종은 없다.


c2_Schuyler Shepherd_Serengeti_Lion_Running_saturated.jpg »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암사자. 다른 포식자의 먹이 가로채기는 사냥 못지않게 사자에게 중요한 일이다. Schuyler Shepherd,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이유로 치타는 사자나 하이에나의 근거지를 피해 먹이 밀도가 낮은 주변부에 주로 서식하는 ‘피난처 동물’로 간주해 왔다. 이런 통념을 깨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양질의 먹이터를 최강자가 차지하면 다른 포식자는 주변의 질이 떨어지는 사냥터로 밀려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서로 간의 회피 행동을 통해 양질의 사냥터를 공존한다는 새로운 가설이 나왔다.


알렉산더 스완슨 미국 미네소타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225대의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사자, 하이에나, 치타가 어떻게 사냥하고 상대의 존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증적으로 조사했다.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생태학과 진화> 최근호에 실렸다.


Erik Damen.jpg » 치타는 사자에게 쉽게 먹이를 빼앗기는 약한 포식자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좋은 사냥터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Erik Damen, 위키미디어 코먼스


흥미롭게도 이들 차상위 포식자들은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훌륭한 먹이터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먹이가 풍부해 사자가 많은 곳에는 치타와 하이에나도 많았다. 사자가 득실거리는 본거지를 뺀 모든 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무인카메라를 분석한 결과 치타는 사자가 있는 것을 목격한 곳에는 12시간 동안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36~48시간만 지나면 그곳에서 정상적인 사냥활동을 했다. 


c5_Prof.Chen Hualin _A_group_of_lions_on_the_tree_in_the_Serengeti_prairies.jpg » 세렝게티 평원의 나무에 올라 휴식을 취하는 사자 무리. 이 나무는 치타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한데, 사자가 보이지 않으면 치타 차지가 된다. Prof.Chen Hualin, 위키미디어 코먼스


치타나 사자 모두 평원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무 밑에서 쉬기를 좋아한다. 치타는 사자가 없을 때는 사자가 자주 오는 곳이라고 피하지 않았다. 사자와 맞닥뜨리더라도 빠른 주력으로 도망칠 수 있으니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전략이다.


연구자들은 “최근 사자로 인한 치타의 사망률이 알려진 것보다 낮으며 사자가 늘어난다고 치타가 줄지도 않는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며 “좋은 먹이터라면 ‘공포의 무대’로부터 떠나기보다 그대로 눌러앉아 포식자를 회피하는 전략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c3_Marcel Oosterwijk.jpg » 하이에나가 누를 사냥해 물고가고 있다. 누는 사자와 하이에나 모두의 주 먹이이다. Marcel Oosterwijk,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자는 하이에나의 먹이를 단골로 가로챈다. 하이에나가 먹이를 먹을 때 내는 소리를 녹음기로 들려주면 사자가 재빨리 그곳으로 접근하는 사실이 실험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먹이뿐 아니라 곳에 따라 하이에나 사망의 71%가 사자에 의한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수가 우세할 때 하이에나는 사자를 쫓아내거나 먹이를 빼앗기도 한다.


c6.jpg » 수효가 우세한 하이에나가 사자를 공격하는 모습. 대부분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사자가 하이에나의 먹이를 뺏고 물어 죽이기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사자와 하이에나는 서로를 따라다니는 행동을 보였다. 사자가 있는 곳에는 하이에나가 있고 그 반대도 흔했다. 연구자들은 서로를 이끄는 것이 둘 다 청소동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두 누를 주요 먹이동물로 삼기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물론 포식자 사이의 이런 관계는 지역과 종에 따라 다 다르다. 아프리카야생개는 치타나 하이에나와 달리 사자 서식지를 멀찍이 회피하는 행동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또 “사자와 달리 매복하는 포식자에 대해서는 하위 포식자가 더 심한 회피 행동을 보인다”라고 논문에서 덧붙였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lexandra Swanson et al, In the absence of a “landscape of fear”: How lions, hyenas, and cheetahs coexist, Ecology and Evolution

2016;1-12, DOI: 10.1002/ece3.256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호주 최고 포식자는 나무 타는 사자였다호주 최고 포식자는 나무 타는 사자였다

    조홍섭 | 2018. 12. 14

    강력한 앞발과 꼬리 이용…150㎏ 몸집의 ‘잠복 포식자’초식동물서 진화한 ‘주머니사자’, 3만5천년 전 멸종10만년 전만 해도 호주에는 거대한 유대류가 득실거렸다. 키 2m에 몸무게 230㎏인 초대형 캥거루를 비롯해 하마 크기의 초식동물인 자이언트...

  • 지질학적으로 현세는 ‘치킨 시대’지질학적으로 현세는 ‘치킨 시대’

    조홍섭 | 2018. 12. 14

    50년대보다 5배 무게 ‘괴물’, 한해 658억 마리 도축해 화석 남기 쉬워옥수수 주식, 연중 산란, 골다공증 등도 특징…인류세 지표 화석 가치1950년대를 기점으로 지구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접어들었다는 논의가 지질학자 사이에 활발하...

  • 소가 풀 뜯을 때 진딧물은? 땅으로 뛰었다 업혀 복귀소가 풀 뜯을 때 진딧물은? 땅으로 뛰었다 업혀 복귀

    조홍섭 | 2018. 12. 12

    대형 초식동물 접근하면 80%가 ‘점프’로 먹힐 위험 피해새끼는 걸음 빠른 성체 등에 업혀 숙주식물로 돌아가진딧물이 포식자를 피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상대를 피해 잎이나 줄기 건너편으로 걸어 피하거나 아예 땅바닥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 ‘생존률 75%’ 보르네오 개구리…비결은 아빠의 헌신‘생존률 75%’ 보르네오 개구리…비결은 아빠의 헌신

    조홍섭 | 2018. 12. 11

    보르네오 개구리 수컷, 알 지키고 올챙이 업어 웅덩이 정착까지 ‘책임’ ‘성 역할 역전’…여러 암컷이 수컷 확보 경쟁, 암컷이 더 자주 울기도동물계에는 수컷이 ‘좋은 아빠’이자 ‘충직한 남편’ 노릇을 하는 종이 여럿 있다. 해마는 대...

  • 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

    조홍섭 | 2018. 12. 07

    수온 10도 상승, 신진대사 빨라지는데 산소농도는 낮아져 떼죽음적도보다 고위도 지역 멸종률 커…현재 지구온난화와 같은 메커니즘적도 바다의 수온이 10도나 높아졌다. 바닷속의 산소농도는 80%나 줄었다. 삼엽충 등 바다 생물들은 숨을 헐떡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