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은 사람 것이 아니었네

조홍섭 2016.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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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사람세포 10배 ‘세균 생태계’, 가공식품 먹으면서 세균 다양성 낮아져
김홍표 교수의 최신 진화생물학, ‘내 몸 속 바깥’ 소화기관의 기원 탐구

m1.jpg » 인류는 더 부드럽고 영양이 농축된 음식물로 식단을 바꿔왔다. 공장은 이제 세포 밖 소화기관 구실을 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인류의 진화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사람은 찐빵과 도넛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울까. 생물학자는 도넛을 가리킨다. 입에서 위장과 창자를 거쳐 항문에 이르는 소화기관은 기다란 관이다. 도넛의 빈 곳처럼 소화기관은 내 몸속의 바깥인 셈이다.
 
사람의 몸을 관통하는 소화기관이 ‘통관’이라는 사실은 단세포 생물이 다른 세포를 둘러싸 잡아먹던 수십억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소화기관의 기본설계는 지구에 해면 같은 동물밖에 없던 캄브리아기 이전에 이미 완성됐다. 소화기관을 통해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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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으로 읽는 20억 년 생명 진화 이야기
김홍표 지음/궁리·2만3000원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은 이런 독특한 관점에서 생명의 진화사를 살핀 책이다. 지은이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기초 생물학, 진화생물학, 진화의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는 현장 연구자다. 아메바부터 인류까지 소화기관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추적하면서 세포의 탄생 이래 생명의 역사를 두루 짚었다.
 
먹는 일은 생명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정작 우리는 자신의 소화에 대해 잘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몰랐던 사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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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의 용량은 식사 전 50㎖로 요구르트 한 병보다 작지만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주름이 펴지면서 20배인 1ℓ로 팽창한다. 사람의 작은창자는 길이가 약 7m로 큰창자의 1.5m보다 훨씬 길고 비중이 커, 대장이 더 중요한 침팬지 등 유인원과 대조를 이룬다. 이는 사람의 조상이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뒤 불로 음식을 조리하면서 작은창자에서 영양분을 최대한 뽑아내도록 진화한 결과이다.

사람이 제 몸을 매일 먹는다는 사실도 놀랍다. 작은창자에서 떨어져 나가는 세포가 하루 30g인데 모두 소화돼 몸에 흡수된다. 마찬가지로 뱃속의 태아도 양수를 하루 500㎖꼴로 먹는데, 그 속에는 피부세포뿐 아니라 성장인자 등 태아의 소화기관 발생에 중요한 물질이 듬뿍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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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진화를 다룬 책이어서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달달 외던 미토콘드리아, 아르엔에이(RNA), 줄기세포 등 생물학 용어가 줄줄이 나온다. 이 책의 미덕은 생명현상의 최신 이론을 소개하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이야기체로 풀어놓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론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과학 독서가 요구하는 긴장을 놓을 수는 없다. 본문의 과학이론 설명 못지않게 잡다한 관련 이야기를 망라한 주석도 읽을 만하다.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실용적인 지식이라면, 음식물을 씹고 소화하는 데 10ℓ의 물이 필요하다거나, 맹장이 몸에 이로운 세균을 보관하는 장소라는 것 못지않게 사람의 몸이 실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몸은 세포 수의 10배에 해당하는 세균이 사는 하나의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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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창자에만 1조 마리의 세균이 산다. 이들은 단지 우리 몸의 더부살이가 아니라 다세포 생명체가 탄생했을 때부터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면서 살아온 동반자이다.
 
쥐를 이용한 이런 실험이 있다. 다른 많은 동물처럼 쥐도 병원체에 감염되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 병균에게 먹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감염된 쥐는 곧 작은창자 표면의 단백질에 푸코스라는 당을 곶감 매달듯 매달아 장내세균을 먹인다. 이 세균은 매달린 당을 끊어낼 수 있는 효소를 지닌다. 쥐가 감염에서 회복되는 데 장내세균이 큰 구실을 한다.
 
장내세균은 종의 개념도 바꿀 태세다. 장내세균이 다르면 같은 종인데도 교배가 안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떤 동물의 실체는 그 동물과 장내세균을 합친 유전체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물리적인 장벽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어떤 장내세균을 가지느냐가 종 분화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용 분야에서, 장내세균은 요즘 사람의 감염, 비만, 정신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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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관의 진화에서 인류는 특별한 사례이다. 인류는 ‘더 달고 더 부드러운’ 먹을거리를 선택했고 그에 따라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현대 가공식품은 과거 소화기관이 하던 일을 공장이 대신한다. 

우리의 소화는 상당 부분 공장에서 이뤄진다. 지은이는 인류가 건강하게 살아남으려면 “가공식품을 덜 먹고 트럭으로 먼 거리를 달려온 음식물을 줄이고 장내세균의 레퍼토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그림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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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언론인/ 자연작가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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