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불공평해도 묵묵히 둥지 지키는 수컷의 운명

김성호 2011. 12. 20
조회수 13891 추천수 1

김성호 교수의 발로 쓴 조류 도감 ⑦ 딱따구리의 교대 의식

둥지 빼앗길라 한 순간도 비우지 않아

주고받는 애틋한 눈길 한 번으로 신뢰 이어가

 

새들은 어떤 방식으로 번식 일정을 치러낼까요? 번식에 참여하는 암수의 행동양식에 따라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암수가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친구들이 있고, 암수가 역할을 확실하게 분담하는 친구들이 있으며, 암수가 교대를 하며 번식 일정을 이어가는 친구들이 있고, 이 세 가지를 시기에 따라 혼용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짝짓기 이후로는 암컷이 번식 일정 전체를 홀로 감당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다른 새에게 번식을 위탁하기도 합니다. 모두 나름의 장단점이 있을 터인데 새들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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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의 교대 과정.

 

딱따구리는 ‘교대’의 길을 택한 친구들입니다. 둥지도 암수가 교대로 짓고, 알도 교대로 품으며, 먹이도 교대로 나릅니다.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까막딱따구리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모든 딱따구리 공통의 특징입니다.

 

그렇다고 밤에도 잠을 설치며 교대하지는 않습니다. 번식 둥지의 밤은 오직 수컷만 지키며, 암컷은 다른 둥지에서 잡니다. 이 또한 우리나라의 딱따구리 모두 그렇습니다.

 

번식 일정 중 알을 품는 시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시기는 정말 완벽하게 교대를 합니다. 한 쪽이 와야 다른 쪽이 나갑니다.

 

교대 간격은 딱따구리 종류마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크기가 작은 친구들은 하루에 6번, 몸집이 조금 큰 친구들은 하루에 4번 교대를 합니다.

 

다른 습성도 그런 것처럼 교대 횟수 또한 큰오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 사이가 경계입니다.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는 낮 12 시간을 2시간 간격으로 6번 교대하고, 청딱따구리와 까막딱따구리는 3시간 간격으로 4번 교대를 합니다.

 

둥지 지키는 시간 암컷 6시간, 수컷 18시간

 

암컷이 와서 이루어지는 첫 교대는 해가 뜰 무렵에 이루어집니다. 알을 품는 시기에 해당하는 4월이면 대략 6시 정도가 됩니다. 6번 교대가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8시, 10시, 12시, 오후 2시, 오후 4시에 교대가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교대인 4시 이후로 다음 날 아침 암컷이 와서 다시 첫 교대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수컷이 꼬박 둥지를 지킵니다. 4번 교대가 이루어지는 경우 9시, 12시, 3시가 교대 시간이 됩니다.

 

물론 2시간과 3시간의 간격이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횟수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6번 교대나 4번 교대 방식 모두 암컷은 하루에 6시간만 둥지를 지키는 것이며, 수컷은 밤을 포함하여 18시간 동안 둥지를 지키는 꼴이 됩니다. 결국 암컷의 몫은 하루의 1/4, 수컷의 몫은 3/4이므로 형식은 교대이지만 역할의 비중은 수컷 쪽으로 많이 치우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딱따구리는 왜 교대라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물론 교대라는 방식은 수고를 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무엇이 있어 보입니다. ‘한 쪽이 와야만 다른 쪽이 나가는’ 교대 양식의 가장 큰 장점은 둥지가 24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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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딱따구리의 교대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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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오색딱따구리의 교대 과정.

 

딱따구리의 둥지는 여러 면에서 완벽한 둥지입니다.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걱정이 없으며, 추울 때는 따뜻하고 더울 때는 선선합니다. 게다가 천적을 방어하는 데에도 으뜸입니다.

 

그러니 숲에서 나무를 파내 둥지를 지을 능력이 없는 뭇 생명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입니다. 문제는 이들 뭇 생명들이 딱따구리의 둥지를 동경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호시탐탐 노리며 빼앗으려 덤벼듭니다.

 

딱따구리로서는 지켜야 합니다. 낮은 물론이고 밤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딱따구리는 교대의 방식을 통해 24시간 둥지를 지키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딱따구리의 숲에서 벌어지는 둥지 전쟁은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교대 방식에는 몇 가지 작은 아픔이 있습니다. 한 쪽이 교대 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으면 다른 한 쪽은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알을 품을 때 교대 간격 2시간을 지키는 딱따구리 종류도 더러 6시간이 지나서 올 때가 있습니다.

 

교대 간격 3시간을 유지하는 까막딱따구리의 경우 9시간 만에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알을 품는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9시간을 기다리려면 힘도 들 터이고 배도 고플 터인데 저들은 절대 둥지를 비우고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애틋하고 독특한 교대의식

 

또 하나의 작은 아픔은 하루 중 암컷과 수컷이 만나는 시간의 전부가 그 짧은 교대의 순간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대의 순간은 무척 애틋하며, 저들만의 의식을 치릅니다. 특별한 용어가 없기 때문에 필자는 ‘교대 의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우선 둥지에 다가오는 쪽이 신호를 해 줍니다. 신호는 소리이며, 딱따구리마다 고유의 소리를 냅니다.

 

까막딱따구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주 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끼리리리링” “내가 교대해주러 가고 있어요.”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나의 귀에 막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순간, 둥지에 있는 쪽도 신호로 화답합니다. 둥지에 있는 쪽은 부리로 둥지 안쪽 벽을 두드려줍니다. “탁탁탁” “나도 둥지를 비우지 않고 지키고 있었어요.”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둥지로 접근하며 소리를 내는 것이니 “끼리리리링” 소리는 점점 커지며, 이에 따라 “탁탁탁” 소리도 점점 커집니다. “끼리리리링”, “탁탁탁”, “끼리리리링”, “탁탁탁” …

 

서로 소리로 소통을 했음에도 교대는 꽤나 신중합니다. 교대 시간이 많이 지연되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대를 하러 온 쪽이 둥지 안으로 고개를 넣어 두세 번 신호를 해주어야 둥지 안에 있던 쪽이 입구로 올라옵니다.

 

둥지 입구에서 드디어 얼굴을 마주하며 눈길을 주고받는 순간 특별한 몸짓을 합니다. “읏꿔엇” 소리를 내며 등과 목을 출렁이듯 움직여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교대를 하러 온 쪽이 몸을 옆으로 비켜주면 그 동안 둥지를 지켰던 쪽이 날개를 펴고 날아 둥지를 떠납니다.

 

번식 일정은 기본적으로 암수의 신뢰와 유대감에 기초하여 치러집니다. 그런데 딱따구리 종류는 하루에 몇 번, 둥지 입구에서 잠시 주고받는 눈길 하나로 서로의 신뢰를 이어가는 어찌 보면 한 수 위의 친구들입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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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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