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10년,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은 아침에 눈 뜨는 일

안재정 2017.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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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환경읽기 16. <더 로드>

지구 시계가 멈추고 살아 남은 아버지와 아들이 떠난 길

희망은 고문일 뿐…어떤 욕망보다 ‘신발과 수레’가 필수

 

대재앙.jpg » 지구대재앙은 올 것인가?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대재앙>화면 갈무리
  
내가 지켜야 될 소중한 것들을 남겨둔 채, 어느 날 세상이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세기말보다 더 우울하고, 진짜 세상이 망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딱히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느낌은 이런 절망감을 부추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일부는 재앙에 저항할 것이고, 일부는 그러한 재앙을 인정하지 않으며, 일부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이러한 재앙 이후 희망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담담한 어조로 그리고 있어 더 현실적인 영화가 있다. <더 로드>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 망해버린 세상


2010년 1월 국내 개봉한 <더 로드>는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원작 소설 <더 로드>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인 코맥 매카시가 쓴 것으로,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코맥 매카시는 60대에 아들을 보았고, 자신의 어린 아들과 자기가 황량한 세상에 남겨진다는 가정 하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30대에 아들을 보았고, 그런 아들과 내가 황량한 세상에 남겨진다면 어떨지 고민하며, 이 리뷰를 쓰고 있다.
이 영화의 국내 관객수는 17만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다룬 영화가 그런 것처럼, 썩 유쾌하지 않은 무게감은 한 해를 시작하는 대중에게 매력적이진 못했으리라.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도 이러한 위험은 유효하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내 잘못은 아닌데 세상은 망해버린 것 같고, 어떤 희망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헛헛한 기분이 드는 시점에 이 영화와 소설이 주는 묘한 끌림이 있다.
 

더로드 11.jpg » 영화 <더 로드> 포스터
 
영화를 보지 못한 대부분의 독자를 위해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한다. 하루아침에 세상은 잿더미로 변해버린다. 이러한 세상 위에 아버지와 아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내를 뒤로한 채,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바다로 상징되는 남쪽으로 긴 여정을 떠난다. 대부분의 장면은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류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구성되며 모험, 스릴러, 어떤 기준으로는 공포 등의 장르에 위치시킬 수 있는 영화이다. 구성도 다양하다. 인간 사냥과 식인 풍습과 같은 잔혹한 장면으로 화면을 채우거나, 추격전을 내세워 스릴러와 같은 긴장을 유발하거나, 신파적 분위기로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리나 마지막까지 자제의 미덕을 잃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한다. 


운석 충돌로 잿더미가 된 미래의 어느 지점


이제 짧지만 긴 여정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으로 떠나보자. 영화는 남자와 아이가 깜깜한 동굴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세상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이후이고, 멸망 이전에 임신한 아이가 멸망 이후 태어나 10대로 성장 했으니, 대략 10여년의 시간이 흘러간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영화 속 아들이 아버지에게 살면서 가장 큰 용기를 내본 적이 언제였냐고 묻는 말에 아버지는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었어.”라고 답한다. 이 대사는 나를 포함한 오늘을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도 동일한 대답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우리는 이미 멸망해 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부류에 속할 뿐이다.
이처럼 황량한 미래를 만든 사건은 무엇일까? 

물론 이러한 질문은 일부 재난 영화에선 중요하나 <더 로드>에서는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중요한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 속 풍경으로 추측해 보자면 운석 충돌로 인한 지구의 먼지 돔, 지진과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농작물 및 동물의 흔적이 사라져 버린 미래의 어느 지점인 것 같다. 소설에 기반한 견해로는 시계가 동시에 멈추고, 창밖이 장미색으로 물들며, 땅이 녹고, 재가 세상을 뒤덮고, 온도가 내려가는 묘사로 보아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라는 것도 있다.
 

더로드 12.jpg » 카트리나 재해 지역에서 실제 촬영한 imax 소스를 활용한 장면


실제 제작진은 펜실베이니아의 폐쇄된 탄광, 모래 언덕 그리고 피츠버그 등의 황폐화된 지역 등이 주요 촬영지로 선택했다. 이후 더욱 사실적이고 충격적인 화면을 위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의 쇼핑몰과 오리건, 워싱턴, 캘리포니아 등 미국 전역을 돌며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물건을 먼저 챙기겠는가? 아마 우리가 지금 갖고 있거나, 갖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아닐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욕조에 물을 담는 일을 가장 먼저 했다. 아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임신을 하지 않았어도 욕조에 물을 담는 행동은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욕망(wants)에 눈을 뜬 것이 아니라 필요(needs)를 챙기는 것은 우리가 항상 놓치는 중요한 선택의 경계이다.
이제 어딘가 있을지도, 아니 없어도 다른 대안이 없는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나보자. 물론 이러한 결정은 쉽게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나 전쟁 영화들이 막연한 피난길을 재촉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끝은 언제나 비참했다. <더 로드> 영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요인은 배고픔과 추위이다. 현실적으로도 대부분의 재난이나 전쟁과 같은 인류 종말과 비견되는 상황 속에서 피난민은 이 두 가지 이유로 죽는다.


문명의 잔재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


<더 로드>의 남겨진 인류는 신발과 수레에 집착한다. 어찌 보면 이 두 가지 물건은 모두 이동과 관련된 것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들은 하나같이 맨발이고, 신발은 오래전에 누군가 훔쳐가 버린 경우가 많다. 이동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러한 이동을 위한 필수 장비가 신발이며, 다른 하나는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담을 수 있는 수레이다. <더 로드>에서처럼 가야 할 방향(남쪽)이 명확한 여행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들에게는 추위와 배고픔을 막아줄 물건들이 필요했고, 그들의 배낭만으론 부족했기 때문에 이동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수레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 즉, 어찌 보면 이러한 사건의 원인으로 상징되는 문명의 잔재인 길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 속 수레로 주로 쇼핑 카트가 등장하는데, 이는 현대 소비 생활의 상징인 쇼핑 카트가 그러한 생활이 멈추어 버린 시대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하다.
 

더로드 13.jpg » 잿빛으로 변해 버린 세상에서 카트에 의지하여 길을 떠나고 있다
 
생산이 멈추어 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중요하다. 지구상의 모든 종 중 거의 유일하게 인간만이 대사 에너지 이외에 화석 연료와 같은 외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간 이외에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자랄 수 없는 세상, 그것은 아마 태양 에너지의 부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영화 속 기후는 작물이 자라지 못하는 세상이다. 


살아남은 자의 유일한 소비는 그들 자신뿐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으며, 천연색이라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멈추어 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유일하게 소비하는 것은 그들 자체이다. 그들은 멈추어 버린 문명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자들을 노예로 부리고, 여자들을 임신시키며, 낳은 아이를 잡아먹는다. 소년들도 이러한 희생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악인이 되거나 겁쟁이가 되어 도망가는 것 밖에 없다. 실제 영화 속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살을 택한다.

 

더로드 14.jpg » 자살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
  
자살은 그러한 점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인 세상 버리기이다. 남겨진 이들에겐 세상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세상을 버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 것이다. 주인공의 아내(샤를리즈 테론)도 절망 속에 출산을 거부하기도 하였으며, 남편과 아이를 남겨두고 추운 밤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어둠 속에서 자살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지옥도로 제시되어 있는 첫 번째 지하 벙커 장면이다. 식량을 찾아 이동하던 주인공은 지하 벙커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선 사람들을 잡아 두고 팔과 다리를 조금씩 잘라 먹는 식인이 행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산채로 잘라 먹는 것은 전기가 끊긴 세상에서 먹거리를 보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살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인 세상 버리기


희망이 없을 때, 희망은 가장 숭고해진다. <더 로드>의 희망은 근처에도 가지 못한 따뜻한 남쪽 바다가 아니다. 실제 바다로 보이는 곳에 다다르긴 했으나, 희망과는 거리가 멀고 그곳 또한 주인공들이 겪어온 길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곳에서도 죽음은 존재 했으며, 주인공은 도둑을 맞아 모든 것을 잃는 위기도 겪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지키기 위해 행한 방식도 지금까지 여정과 비슷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도둑질을 한 흑인을 실오라기 하나 걸쳐두지 않고 길 위에 버려둔다.
 

더로드 15.jpg » 자신의 짐을 훔친 도둑을 알몸으로 내쫒고 있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희망은 무엇일까? 막연하긴 하지만, 그 희망은 목표(남쪽 바다)도 아니고, 구원 없는 세상을 구할 방법도 아니다. 영화 속 아버지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존재는 아들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잘못을 해도 원망하지 않고 감싸 안는다. 자신을 낳은 어머니도 자신을 버린 세상에서, 아이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정이 많은 인물로 그려진다. 

아이는 자신들의 음식을 다른 이와 나누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멸망 이후에 태어난 아이가 본 것이라고는 폐허가 된 세계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화함을 베풀 줄 안다.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남아있는 인간성을 끝까지 잃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 영화 속의 희망이란 선과 악의 개념이 사라져버린 세계에서도 남아있는 아들, 즉 모든 선을 대표하는 미래세대이다. 미래세대는 이러한 세상을 만든 책임이 없다. <더 로드>에서 재앙의 책임이 아들에게 없는 것처럼 말이다.
 

희망의 끈은 도착점이 아닌 과정과 이를 이어주는 관계


이러한 희망을 현실 속에 사는 우리들은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다. 사실 폐허로 변해버린 이 세계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오히려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은 부정하기 힘든 절망에 가까운 세계이고, 희망은 고단한 삶을 지속시키는 고문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진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아이가 선한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들의 결말에 대해선 다루고 있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희망의 끈은 도착점이 아닌 과정과 이를 이어주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희망의 시작은 영화 속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했던 사랑과 같이, 현세대가 미래세대를 바라보는 사랑에서 시작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환경문제 해결이나 기타 우리가 해결해야 될 많은 일들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부가하려고 한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태도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안재정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장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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