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를 흉내 내는 물고기 발견

조홍섭 2012. 01. 07
조회수 63918 추천수 0

동남아 후악치, 바다뱀 등 맹독 동물 흉내 전문가인 흉내 문어를 의태

겁많은 물고기가 '흉내 달인' 곁에서 느긋하게 돌아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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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뱀 등 맹독 동물을 흉내 내는 문어 곁에서 헤엄치는 후악치(화살표). 사진=고데하르트 코프.


지난 1998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해안에서 특이한 신종 문어가 발견됐다. 길이가 60㎝까지 자라며 다리가 긴 이 문어는 놀라운 흉내 능력을 지녀, ‘흉내 문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통 의태라고 하면 몸을 부근의 지형지물과 비슷하게 만들어 포식자의 눈을 피하는 것이지만, 이 문어는 바다뱀, 쏠배감펭, 바다달팽이 등 맹독성을 띠는 동물을 흉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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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 문어의 여러 모습.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그 대상은 무려 15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무늬뿐 아니라 행동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
 

이 문어는 보통 갈색과 베이지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이지만, 예를 들어 그 지역의 포식자가 바다뱀이라면 다리 여섯 개는 감추고 나머지 두 개를 반대 방향으로 늘어뜨려 바다뱀처럼 움직이는 식의 행동을 한다.

 

흉내 문어를 흉내 내는 후악치 동영상(자료=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지난해 7월 고데하르트 코프 독일 괴팅겐 대 박사는 술라웨시 해안에서 잠수하면서 흉내 문어를 촬영하다 이상한 모습을 관찰했다. 흉내 문어를 감쪽같이 닮은 물고기가 문어를 따라 헤엄치고 있던 것이다. 다음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물고기와 문어를 구분하기는 매우 힘들다.
 

코프는 이 영상을 루이스 로차 미국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 박사팀에게 보냈고 물고기가 후악치(죠피시의 일종,  black-marble jawfish)이며 흉내 문어를 흉내 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은 관찰 결과는 국제학술지 <산호초> 온라인판 최근호에 실렸다.
 

후악치는 큰 입속에 새끼를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관상어이며 일본에서 호주까지 분포한다. 그러나 흉내 문어는 인도-말레이 지역에만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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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악치. 바다 밑에 구멍을 뚫고 숨는 겁많은 물고기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사실로부터 후악치가 처음부터 이 문어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이 문어 서식지에서 의태를 진화시킨 것으로 보고, 이를 ‘기회주의적 의태’ 사례로 들었다.
 

후악치는 원래 수영이 능숙하지 못해 모래에 구멍을 뚫고 그 근처에서 먹이를 먹다가 위험을 감지하면 잽싸게 물러나 꼬리부터 구멍에 숨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흉내 문어 곁에선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문어를 흉내 냄으로써 후악치는 굴로부터 더 먼 거리의 먹이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로차 박사는 “이 사례가 후악치의 흉내 대상이 또 다른 흉내라는 점에서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후악치의 의태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어서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구가 이뤄진 동남아의 산호초는 사람들에 의한 파괴로 인해 급속히 줄어들고 있어 우리가 그곳 생물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알기도 전에 그런 생물들이 멸종할지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Rocha LA, Ross R, Kopp G. 2011. Opportunistic mimicry by a jawfish. Coral Reefs. http://dx.doi.org/10.1007/s00338-011-0855-y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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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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