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이익 위해 수천명 사상' 참사 막으려면

이동수 2017.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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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만 빠져나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제로 사전예방 이끌어야


05670748_P_0.JPG » 가습기 살균제 세퓨피해자모임 대표 김대원씨가 지난해 11월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한 뒤 기자들에게 심정을 말하다 울음을 참고 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기 위해선 사전예방이 필수적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 사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의 하나는 먼저 사고 책임자를 분명히 가려내 배상과 처벌 등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사고의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여 재발방지에 필요한 변화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때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책임자를 가려내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정치권과 검찰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또한 법적 혹은 과학적 분야의 전문가들도 종종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가습기 참사에서 이들은 어떤 일을 했으며 수천 명의 사상자 피해를 낸 뒤 도입된 중요한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정치권은 왜 신속히 피해자를 돕지 못했나?


201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2013년 더불어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과 정의당이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 화학 물질에 의한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을 비롯한 총 4건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에는 환경부 내 피해 대책위원회 설치, 구제급여 지급, 재원 확보를 위한 피해구제기금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으로 이후 3년 동안 본회의로 넘어가지 못했는데, 정부와 새누리당이 예산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새누리당 환노위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교통사고’에 빗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특별법 제정에 대해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거나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라며 계속 반대했다. 


05649437_P_0.JPG »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0월 6일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모임 대표자들 면담한 뒤 국정조사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유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가습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3년이나 가로막았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그러나 이 문제의 여파가 급속히 커지자 2016년 5월 새누리당도 갑자기 입장을 바꿔 적극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나섰다. 이에 따라 2016년 5월, 여야는 이 문제를 20대 국회의 최우선 논의 과제로 정하고 6월에는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결정했다. 


국정조사 이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 제정안이 2017년 1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통과됐다. 2011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발생을 인정한 지 무려 6년만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징벌적 손해 배상제 조항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3년 4, 5월 당시 야당의 관련 법안 발의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가 좀 더 속히 시작될 수 있었음에도 국가의 책임을 무시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대로 적극적인 구제가 3년 이상 지체된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짓이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세월호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교통사고” 운운하며 피해자를 “염치없는”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일을 벌여 공분을 샀다. 


전문가를 믿어도 되나?


05579286_P_0.JPG » 서울 내자동 김앤장법률사무소 안내와 경비 담당자들이 지난해 5월 17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민주노총,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이 "가습기살균제 독성 은폐에 가담한 의혹과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한 의혹을 밝혀야 한다"라며 연 '김앤장 규탄 기자회견'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법률사무소 1층 로비를 유리문 밖에서 촬영하려고 하자 손으로 카메라를 막는 등 제지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 참사의 수습과정에서 나타난 전문가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의 변호를 맡은 김앤장은 옥시에 불리한 실험결과를 제외하고 의견서를 법정에 제출했다는 강한 의혹을 받고 있다. 만일 불리한 내용을 통째로 빼는 등 결과의 적극적 조작에 가담했다면 도덕적 비난뿐만 아니라 증거인멸 교사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도 특별히 놀랍지 않은 것은 변호사는 승소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얘기와 경험에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대학교수, 그것도 ‘과학자’인 대학교수에 대한 기대는 일반적으로 좀 다른 것으로 느낀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밝힌 한국 역학회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처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일을 한 전문가도 있다. 


05679154_P_0.JPG » '제4회 리영희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 청암홀에서 지난해 11월 30일 수상자인 백도명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 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시상식을 마친 뒤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백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밝혀 피해자 배상과 가해자 처벌의 길을 열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반대로 옥시가 의뢰한 조명행 서울대 교수와 유일재 호서대 교수의 독성실험은 처음부터 옥시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들이 실험에 필요한 돈 말고도 별도로 거액의 자문료를 받은 것이 그런 의혹을 더 키운다. 


돈을 대가로 돈 주는 이가 원하는 결과를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내놓는 것을 ‘청부 과학’이라 한다. 사실 돈이나 권력을 위해서 기꺼이 ‘청부 과학자’ 노릇을 하는 부도덕한 전문가는 우리 사회에 매우 많다. ‘과학’이나 ‘과학자’ 혹은 ‘전문가’란 이름을 그저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이번 사고에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났다. 


책임자들은 모두 처벌을 받았나?


책임자 처벌과 관련된 검찰의 대응과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자. 검찰은 피해자들의 고소에 대해 독성 확인이나 역학조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3년이나 미적거리다 엄청난 피해규모가 드러난 2016년에야 비로소 특별수사팀을 꾸려 기업들의 책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주요 책임자인 옥시 신현우 전 대표와 옥시 연구소 관계자 2인이 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2016년 5월 말에 재판에 넘겨졌다. 또 허위광고 행위로 옥시와 버터플라이이펙트 2곳을 법정 최고형인 벌금 1억 5천만원에 각각 약식기소했다. 


검찰은 이러한 광고 행위가 단순 허위·과장 광고 수준을 넘어 소비자들을 속인 것이라고 보고 향후 사기죄를 추가할 방침이다. 더불어 2001~2011년 10년간 가습기 살균제 판매로 거둬들인 이익이 5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 옥시를 사기범죄액이 확정되는 대로 특정 경제범죄 가중 처벌법상 사기혐의로 추가 기소할 계획이다. 


05563968_P_0.JPG » 신현우 전 옥시 대표이사가 지난해 4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수사를 받기 위해 소환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올 1월 1심에서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검찰의 기소 결과 2017년 1월 1심에서 신현우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더불어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와 김원회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 매입 본부장에게는 각각 금고 4년과 징역 5년이 선고됐다. 


2011년 정부가 폐 손상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며 이 문제가 공론화된 지 5년만에 처음으로 가해 업체 관련자가 재판에 회부됐고 무려 6년 만에 판결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애경과 이마트 등 CMIT/MIT를 성분으로 하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들은 아직도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검찰은 또한 옥시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독성실험을 한 것으로 의혹을 사고 있는 조명행 서울대 교수를 수뢰 후 부정처사 및 증거조작 혐의로, 유일재 호서대 교수를 사기와 배임수재 혐의로 각각 2016년 5, 6월에 기소했다. 그 결과 1심에서 서울대의 조 교수에게는 징역 2년에 벌금과 추징금 각각 2500만원과 1200만원이 선고됐으며, 호서대의 유 교수에게는 징역 1년 4개월에 추징금 2400만원이 선고됐다.


한편, 검찰은 이 사태와 관련하여 정부의 책임을 조사하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는데 그 때문에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2016년 7월 초로 예정했던 수사 결과 발표를 미루고 8월에 가습기 살균제 제조부터 최근 피해 원인까지 정부의 역할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형사책임을 따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관리·감독 의무의 소홀을 들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하여 정부와 정치권은 미비한 법이나 제도와 그를 적법하고 신속하게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무슨 변화가 약속됐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정부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의 도입을 약속했다. 아직은 약속에 불과하며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약속을 끌어낸 것은 거짓말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기업도 정부도 정치권도 아니었다.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참사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한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같은 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 


우선 눈에 띠는 가장 큰 변화는 생활화학제품을 위주로 한 화학물질 관리제도의 변화이다. 정부는 2016년 11월 29일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화학물질 유출 가능성이 큰 공산품을 포함하여 유통 중인 생활화학제품을 2017년 상반기까지 전수 조사해서 인체에 특히 해롭다면 즉시 퇴출조처를 취할 계획이다. 


05706088_P_0.JPG » 지난달 17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류필무 화학제품티에프 과장이 세정제, 합성세제, 섬유유연제, 접착제 등 위해우려제품 15종을 조사한 결과 28개 제품이 안전기준을 위반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또한 생활화학제품 관리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인체나 식품에 직접 적용되는 제품(의약외품·화장품·위생용품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살생물제와 화학물질의 유출 가능성이 큰 제품은 환경부, 유출 가능성이 낮은 제품은 산업자원통상부가 관리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더불어 앞으로 살생 성분 함유제품의 관리체계를 기존의 사후관리 방식에서 안전성 입증을 우선하는 사전관리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살생물질과 살생물질 함유제품(소독제, 방부제 등)을 별도로 관리하는 법률(살생물제 관리법(가칭))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에 생활화학제품 관리에 사각지대가 있었으며 그것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중요한 한 원인이 됐기 때문에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엄청난 생명과 건강피해를 대가로 치른 후에야 이런 변화가 도입된다는 것은 안타깝다. 또한 이런 제도의 도입 약속과 그 실효성이 말 잔치에 그치지 않고 기대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징벌적 손해 배상제’의 도입 약속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인명·신체에 고의로 중대한 손해를 입힌 제조물 사업자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 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실제 피해 범위 안에서 배상 책임을 물어왔고, 징벌적 손해 배상제는 하도급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일부 영역에만 도입돼 있었기에 이 제도의 도입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본래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다. 우선 3배의 배상 한도는 너무 작기 때문에 충분한 예방 효과를 위해서는 배상 한도를 최대 피해액의 10배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미국에서는 피해액의 수백 배를 물리는 판결도 있다고 한다. 


또한 ‘고의적’으로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로 제한한 점도 큰 한계로 지적된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해도 고의성이 입증되어야 하고 어떤 것이 ‘중대한’ 손해인지를 놓고 다툴 여지도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집단소송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들 일부가 소송에서 이기면 다른 피해자들도 소송 없이 동일한 배상을 받는 제도이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 배상제가 가지는 예방 효과를 크게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방이 최선이다


05647888_P_0.JPG »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인 CMIT/MIT 성분이 검출된 치약 149종을 전량 회수한다고 발표한 뒤 지난해 10월 3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 고객센터에서 고객들이 치약을 반품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 참사의 전개과정을 보면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기관은 어디이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수백 명 이상이 죽고 수천 명이 다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움직이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우리는 사는 걸까? 기업, 정부, 정치가, 전문가 모두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상식적인 사회를 상상해 본다. 


그러나 그런 사회에서조차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는 회복을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긴 시간과 많은 사회적 자원을 지불하게 된다. 2001년~2011년 사이에 기업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팔아서 올린 수입은 모두 100억~200여억 원대 규모로 추정되는데, 이 때문에 수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우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사전예방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막을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도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무쪼록 이 참사를 계기로 도입된 변화가 유사한 사고의 예방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수(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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