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파리가 꿀벌 집단 붕괴 불렀나

조홍섭 2012. 01. 09
조회수 165377 추천수 1

꿀벌 뱃속에 알 낳아, 벌통 포기 유도 드러나

북미 원산의 소형 기생 파리, 세계로 번지면 재앙 우려

 

 

 

 

honey_bee.jpg

▲꿀벌 배위에서 산란을 하고 있는 기생 파리(왼쪽 작은 개체). 사진=크리스토퍼 쿠오크.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에 확산하고 있는 꿀벌 집단 붕괴 사태의 새로운 원인으로 기생 파리가 지목돼 눈길을 끈다.
 

꿀벌 떼죽음의 원인으로 학계에선 진드기, 바이러스, 곰팡이 또는 이들의 조합을 꼽아 왔다. 하지만 일벌이 벌통을 버리고 떠나는 꿀벌 집단 붕괴의 독특한 행동은 이제까지 수수께끼로 남았다.
 

그러나 존 해퍼니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생물학과 교수 등 미국 연구자들은 벼룩파릿과의 아주 작은 기생성 파리가 꿀벌 집단 붕괴의 한 원인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들은 최근 온라인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 북아메리카 고유종인 기생 파리(학명 아포세팔라루스 보레알리스)가 꿀벌 집단을 광범하게 감염시키고 있으며 밤중에 둥지를 떠나 죽는 행동을 일으켰다고 보고했다.
 

560px-Adult_female_Apocephalus_borealis.png

▲벼룩파릿과의 기생 파리 모습. 사진=존 해퍼니크.

 

이 기생 파리는 뒤영벌이나 쌍살벌에 기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꿀벌을 숙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의 벌통을 조사한 결과 77%가 이 기생 파리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퍼니크 교수는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꿀벌은 세계에서 가장 잘 연구된 곤충의 하나”라며 “기생 파리가 꿀벌의 오랜 기생자였다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어야 했다”며 이번 발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험실에서 이 파리와 꿀벌을 함께 넣어두면, 기생 파리는 곧바로 꿀벌의 배 위에 앉아 2~4초 안에 산란관을 삽입해 알을 낳는다고 논문은 밝혔다. 감염된 꿀벌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한밤중에 벌통을 떠나 빛을 향해 날아가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기생 파리의 알은 1주일 뒤 깨어나 꿀벌의 목에서 최고 13마리까지 꾸물꾸물 기어나온다.
 

bee_parasite_fly_larvae.jpg

▲꿀벌의 목 부위에서 기어나오는 기생 파리의 애벌레. 사진=존 해퍼니크.

 

이 연구는 꿀벌 집단 붕괴에서 드러나는 벌통을 포기하는 독특한 행동이 기생 파리에 의해 빚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한밤중에 둥지를 떠나는 꿀벌의 행동을 기생 파리가 유도한 것인지, 아니면 동료 꿀벌에게 전염시킬 위험을 줄여 주기 위한 감염 꿀벌의 이타적인 행동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논문은 밝혔다.
 

또 기생 파리에 감염된 벌통에서는 다른 기생충과 바이러스가 함께 검출돼 기생 파리가 이들의 전파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생 파리는 뒤영벌보다 집단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고 1년 내내 활동하는 꿀벌을 숙주로 삼은 덕분에 크게 번창하게 됐다. 게다가 상업적 양봉이 밀집 형태로 이뤄져 이미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발견되는 기생 파리의 감염은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라고 논문은 밝혔다.
 

무엇보다 북아메리카 고유종인 이 기생 파리가 다른 대륙으로 건너간다면 세계적인 재앙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고 이 논문은 경고했다. “애초 이 기생 파리가 없던 곳에서 꿀벌은 더욱 쉽게 숙주가 될 것이고 새로운 숙주가 생겨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세계적으로 농업 생산과 생물다양성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부터 재래 꿀벌 유충에 악성 바이러스가 발생해 유충이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고사하는 낭충봉아부패병이 번져 한봉 농가의 90% 이상이 피해를 입고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Core A, Runckel C, Ivers J, Quock C, Siapno T, et al. (2012) A New Threat to Honey Bees, the Parasitic Phorid Fly Apocephalus borealis. PLoS ONE 7(1): e29639. doi:10.1371/journal.pone.002963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수중 ‘밑밥 캠’ 1만5천대 깔았는데 “상어가 안보인다”수중 ‘밑밥 캠’ 1만5천대 깔았는데 “상어가 안보인다”

    조홍섭 | 2020. 08. 03

    세계 58개국 대규모 조사, 19%서 암초상어 관찰 못 해 산호초에서 평생 살거나 주기적으로 들르는 암초상어는 지역주민의 소중한 식량자원일 뿐 아니라 다이버의 볼거리, 산호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실태...

  • 바다거북은 엉성한 ‘내비' 의존해 대양섬 찾는다바다거북은 엉성한 ‘내비' 의존해 대양섬 찾는다

    조홍섭 | 2020. 07. 30

    “여기가 아닌가 벼”…때론 수백㎞ 지나쳤다 방향 돌리기도 아무런 지형지물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바다거북이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해변과 종종 수천㎞ 떨어진 먹이터를 이동하는지는 찰스 다윈 이래 오랜 수수께끼였다.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한 연구 ...

  • 파리지옥 풀은 어떻게 파리를 알아볼까파리지옥 풀은 어떻게 파리를 알아볼까

    조홍섭 | 2020. 07. 27

    30초 안 감각털 2번 건드리면 ‘철컥’…1번 만에 닫히는 예외 밝혀져 찰스 다윈은 파리지옥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식물”이라고 했다. 세계에 분포하는 식충식물 600여 종 대부분이 먹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수동적 방식인데 파리지옥은 유일하게 ...

  • 날개 치지 않고 5시간, 콘도르의 고효율 비행날개 치지 않고 5시간, 콘도르의 고효율 비행

    조홍섭 | 2020. 07. 23

    전체 비행시간의 1%만 날개 ‘퍼덕’…상승기류 타고 비상·활공 독수리나 솔개 같은 맹금류는 상승기류를 탄 채 날개 한 번 퍼덕이지 않고 멋지게 비행한다. 그렇다면 날개를 펴면 길이 3m에 몸무게 15㎏으로 나는 새 가운데 가장 큰 안데스콘도르...

  • 사람도 ‘귀 쫑긋’ 개·고양이와 마찬가지사람도 ‘귀 쫑긋’ 개·고양이와 마찬가지

    조홍섭 | 2020. 07. 17

    귀 근육 신경반응과 미미한 움직임 확인…새로운 보청기에 응용 가능 개나 고양이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려면 귀가 어느 쪽을 향하는지 보면 된다. 낯설거나 큰 소리, 중요한 소리가 들리면 동물의 귀는 저절로 그리로 향하고 쫑긋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