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참새 이야기

조홍섭 2012. 01. 10
조회수 19257 추천수 0

열두해 동안 인간과 참새의 종을 넘어선 우정과 사랑 그려

감상 떠난 절제 있는 기술…인간과 자연의 공존 위한 마음가짐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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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스 부인과 함께 책을 '읽는' 참새 클래런스.


휴전을 앞두고 한국 전쟁이 마지막 불꽃을 튀기던 1953년 4월25일치 과학잡지 <네이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의 하나인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디엔에이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한 쪽짜리 논문을 실었다. 전쟁 중이라 아마도 그 소식은 신문에 실리지 않았을 것이다.
 

평화시기라 하더라도 우리 언론은 묵살했겠지만, 그 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어느 참새에 관한 책이 출간됐다.
 

영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큰 인기를 모았고 유럽과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인도에서도 번역됐다. 일본에선 1956년에 이어 1994년과 2010년 세 번째로 번역본이 나왔다.
 

지난해 말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이 출간됐다. 처음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 책이 생명력을 잃지 않은 까닭은 인간과 참새 사이의 종을 넘어선 우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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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참새의 일대기>
클레어 킵스 지음·안정효 옮김/ 모멘토·9500원

 

이 책의 주인공인 참새 클래런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영국 런던 교외의 둥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피아노 연주가인 클레어 킵스에게 발견되는 행운을 맞는다.

 

발과 날개가 온전치 못한 이 수컷 참새는 킵스 부인의 헌신적인 돌봄 속에 열두 살까지 살았고, 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이 책이 공감을 주는 이유는 참새와의 관계를 유별나게 자상하고 감상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냉정한 과학적 관찰자에 가까운 시각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읽으면 자연히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과 맺은 기억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킵스는 “모든 동물과 조류의 내면에는 지능이 잠재하고, 그것은 인간이 그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보살핌의 정도에 비례하여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동물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인간과 다른 동물을 인간의 지능이란 일방적 잣대로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인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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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제 안 됐나요?" '공습 경보' 묘기를 보이고 있는 참새 클래런스.

 

지은이는 참새의 지능을 당시의 시대 환경에 맞춰 계발했다. 독일의 공습과 로켓 공격이 잦아짐에 따라 런던 시민들은 걸핏하면 방공호로 대피해야 했는데, 참새 클래런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었던 것이다.
 

가장 인기 있던 레퍼토리는 ‘방공호 묘기’였다. 킵스가 “공습 경보”를 외치면 밖에 나와있던 참새는 두 손을 맞붙여 만든 임시 방공호로 냉큼 숨어 몇 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혹시 공습경보가 해제되지 않았는지 알아보려는 듯 살그머니 머리를 내밀곤 하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은 손바닥 방공호를 만들어 제공하는 특전을 누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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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런스는 킵스로부터 자극을 받아서인지 꾸밈음을 사용해 노래를 하는 등 뛰어난 음악성을 과시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참새와 사람 사이의 우정은, 비록 일방적이지만 이성 간의 애정으로 발전한다.

 

옮긴이 안정효는 꼬리말에서 이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참새 클래런스는 양어머니에게 ‘연애’를 걸어 가장의 자리에 오르려는 속셈으로 몸매를 가꾸고, 동거할 집을 마련하고, 머리핀을 선물로 주면서 구애를 하기에 이른다. 때로는 남자답지 않게 앙탈까지 부려보기도 하지만, 물론 참새의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애완동물이 아닌 야생 조류와 인간의 정다운 관계가 한계를 극복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따뜻한 얘기다.(185쪽)
 

애완동물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깊어지면 우리는 그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자신이 기르는 동물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가 애완동물 비슷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킵스 부인은 그런 상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는 어른이 되었고, 아주 가끔 어린애 짓을 할 때만 제외하면 그는 자기가 주인이며 나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처신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할 점이라면, 나는 가구를 옮겨놓으면 안 되고 낯익은 물건들은 늘 있던 제자리에 그대로 둬야만 했다.(104쪽)


이제 인간을 떼어낸 자연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됐다. 세계 인구는 70억을 돌파했고 지구의 땅, 물, 바다, 공기 할 것 없이 대부분 인간만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오히려 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시민이 자연을 아끼는 대도시가 소품종의 농산물을 대량 생산하는 농촌보다 생물이 더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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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런스는 우유와 삼씨를 특히 좋아했다.

 

이 시대의 과제는 인간과 분리한 자연을 절대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야생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한 인간과 천수를 마칠 때까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은 참새를 불행하다고 할 이유는 없다.

 

어느 작은 참새의 이야기가 반세기 넘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자연과 공생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여기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모멘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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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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